88살 아녜스 바르다와 33살 JR
광부·파업하는 항만노동자 등
트럭 이끌며 다양한 인물 만나
제각각 사연 담은 얼굴들 촬영
건물 외벽에 붙이는 작업 기록

프랑스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와 프랑스 사진작가 JR은 시골 마을을 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사진을 찍는다. 한눈에 봐도 사진기 기능이 있을 것처럼 보이는 트럭을 이끌고 둘은 곳곳에 다닌다. 잠시 머물며 그들의 삶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커다란 흑백 사진으로 인쇄해 건물 벽에 붙인다.

다큐멘터리인 영화는 둘의 공동작업이다. 영화 속 88살의 아녜스 바르다와 33살의 JR는 서로 작품 세계를 공유하며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나간다.

즉흥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우연히 알게 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아녜스 바르다와 치밀하게 계산하고 구도를 잡는 JR는 서로 존중하면서도 양보할 수 없는 각자의 작업을 침해하지 않는다.

캔버스가 된 벽에는 다양한 얼굴이 내걸린다.

광산촌에 마지막으로 남은 주민 자닌. 철거 위기에 놓인 그녀의 집과 많은 빈집에는 이 마을에서 땀 흘리며 일했던 광부의 모습이 되살아났다. 이들은 나의 할아버지, 아버지였다. 시커먼 얼굴을 깨끗이 씻도록 물을 주는 할머니. 아버지가 먹다 남긴 시커먼 빵을 기다리는 아이들.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스틸컷.

JR는 사진을 붙이며 말한다. "광부를 기리고 자닌의 저항을 예우하기."

영화는 프랑스 시골 마을을 비춘다. 이제는 컴퓨터로 1인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농부를 만나고 염소를 키우는 농장을 방문한다.

장소를 옮겨다니며 이들이 찍는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둘의 시선이 드러난다.

염소의 뿔을 잘라버리지 않는 농부에 마음이 가고 항만노동자의 파업을 지지한다. 또 항만에서 만난 노동자 아내의 목소리를 담아낸다. 이때 아녜스 바르다가 더 적극적인데 페미니스트 실천의 모범으로 평가받는 진중한 영화를 많이 만들었던 그녀의 진지함을 엿볼 수 있다.

커다란 컨테이너에 붙여진 전신사진 가운데 앉아 있는 아내들을 보자니 속이 시원하다. 해방, 자유가 자연스레 떠올려진다.

둘은 이외에도 빈민, 이민자 등을 비추며 야외의 초상화랑을 이어나간다.

그러면서 노동이 자신들이 하는 예술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온몸을 다해 종을 움직이는 청년 종지기의 팔과 다리, 온갖 것을 주워 만든 늙은이의 집을 보여주며 자신도 무언가 줍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아녜스 바르다와 사진을 붙이려고 풀칠을 하는 JR의 모습이 이질적이지 않다.

둘은 사진으로 영화로 많은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속삭이지만, 현실은 쓸쓸하기도 하다. 노르망디 해변에 떨어진 벙커에 붙인 아녜스 바르다의 옛 사진이 다음날 없어진다. 파도에 휩쓸려 흔적만 남아있는 벙커는 사라짐을 말하는 듯하다.

이는 계단을 오르기 힘겨워하고 옛 추억에 종종 잠기는 아녜스 바르다의 모습과 겹쳐져 애틋하다.

JR는 내내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아녜스 바르다가 집요하게 선글라스를 지적하지만 JR는 그저 웃는다. 그렇다고 그녀의 눈에 선글라스가 많이 거슬리지 않는다. 점점 시야가 흐릿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JR가 그녀에게 묻는다. "흐릿하게 보이는 게 좋으세요"라고.

아녜스 바르다는 "아주 어둡게 보는 걸 좋아하잖아요.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어요. 올려다보느냐, 내려다보느냐…."

영화 막바지 그녀의 오랜 친구인 장 뤼크 고다르(프랑스 영화감독)를 만나러 간 둘은 굳게 잠긴 문을 보고 상심한다. 슬퍼하는 아녜스 바르다를 위해 선글라스를 벗는 JR. 흐릿한 그의 얼굴은 곧 호수 앞에 앉은 둘의 뒷모습으로 바뀐다.

영화 중간 JR가 정성스레 찍었던 아녜스 바르다의 눈과 손, 발이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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