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처럼…응달진 지역 문화 텃밭의 거름으로
김종영 생가서 태어나
모연 김영규 후손답게
문화예술에 많은 관심
예총 경남도지회 등서
한평생 그림자처럼 헌신

팔촌이 한 정지(부엌)서 난다. 지금은 김종영 생가인 창원시 소답동 김씨 고가를 두고 하던 이야기다. 이곳은 소답동 일대에 살던 김해 김씨 일가의 큰집(종가)이다. 이들은 구한말 선비이자 지주 모연 김영규의 후손이다. 집안 장손인 조각가 김종영 선생을 포함해 김영규의 증손자 여럿도 김종영 생가 본채에서 태어났다. 김종영 선생의 사촌 동생 김종하(金鍾夏·1936~2002)도 그중 한 명이다. 김종하는 1970년대 가족을 데리고 김씨 고가 별채인 사미루·구문정에 들어와 30년 가까이 살기도 했다. 지금 김종영 생가에서 도로 바로 건너 있는 고택이다. 김종하는 1960년대에서 1980년대 경남 지역 문화예술 실무자로 일했다. 특히 그가 창원 문화예술 청년들과 함께 추진했던 창원문화제를 통해 그동안 조명되지 못한 지역 문화예술사 한 장면을 살펴보자.

◇지역 문화예술 주도

김종하는 일제강점기에도 학문과 풍류를 중시하며 조선 사대부 가풍을 유지한 모연 김영규의 후손답게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그 자신이 예술가는 아니었기에 문화예술사에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행적이 별로 없다.

김종하는 평생 창원, 마산, 진해를 떠난 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해군본부에서 복무한 게 유일한 타지 생활이었다. 제대 후 고향 창원 소답동으로 돌아와 지역 청년들과 향토문화 활동을 주도했다.

김종하가 신혼시절 아내 최옥자와 함께 창원 소답동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김세욱

창원문화원이 1991년 발간한 <창원문화지> 창간호에 그가 직접 쓴 '창원 문화의 태동, 창원문화제 역정'이란 글에 당시 활동 기록이 담겨 있다. 이 글에 그는 '전 창원 향토문화협의회장'으로 돼 있다. 예총 같은 문화예술 단체가 없던 1960년대 창원 지역 문화 활동을 주도하던 단체다. 회장도 했지만, 그는 주로 사무국장, 총무·기획 등 실무적인 부분을 많이 맡아서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당시 국영기업이던 진해화학 제4비료공장에 취업해 진해에서 살았다. 이곳에서 결혼을 하고 아들 둘을 낳았다. 1970년대 초반에는 노조지부장을 했는데, 노사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다시 창원으로 돌아온 그는 새마을지도자에도 참여하고, 마산실내체육관 신축공사 사무소장, 창원 구획정리사업조합 이사 등을 맡아 일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문화 예술 활동에 열심이었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헌신

다른 기록을 보면 1983년 3월 창립한 한국예총 경남도지회(경남예총) 초대 집행부 사무국장으로 김종하의 이름이 보인다. 이를 통해 1960년대 이후에도 지역 문화 일꾼으로 꾸준히 활동했고, 그 능력과 공로를 인정받았던 것을 알 수 있다.

"1980년대 초반, 경남예총 사무국장 시절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후배 한 분이 아버지 추천으로 문화상을 받았어요. 당시 마산MBC에 가셔서 수상자와 함께 인터뷰를 하신 적이 있어요. 그때 텔레비전에 나온 아버지를 본 기억이 나요. 당신께서는 여러 가지 지역사회 문화활동을 열심히 하셨는데, 정작 자신은 상을 한 번도 받으신 적이 없으세요. 매일 신문과 못 쓰는 종이에 한자를 적으시며 공부를 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꼿꼿하다 못해 때로 부러지는 성격으로 주위 사람들과 불편함도 있었던 분이셨어요."

1965년 창원문화제 사진, 사진 오른쪽 양복 입은 남성이 김종하다. /<창원의 옛모습 사진집>

김종하의 작은아들 김세욱(49·사천시) 씨의 회고다.

김종하는 말년에 다발성골수종이란 일종의 혈액암을 진단받는다. 평생 고향을 떠나지 않던 그가 조금씩 외국 나들이를 하던 것도 이때다. 이렇게 8년을 투병한 그는 2002년 67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고 한평생 묵묵하게 지역 문화 발전에 힘쓴 그의 노력은 아들들에게 남긴 사진 몇 장에 담겨 겨우 전해지고 있다.

만년의 김종하(가운데). 오른쪽이 조각가 문신의 아내 최성숙 화가, 왼쪽은 한국 1세대 구상조각가 백문기 선생. 1995년 소답동 김씨 고가 앞에서 찍은 것이다. /김세욱

※참고문헌

<창원문화지 창간호>(창원문화원, 1991) <경남문예총람)(경상남도, 1993) <창원의 옛모습 사진집>(창원시,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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