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하루 시작 알리는 모차르트 '터키행진곡'
일본 여성 피아니스트 미쓰코 우치다 연주 추천
여인 그리는 장면서 쇼팽 피아노협주곡 '로망스'
낭만·몽환적 선율로 인기…치메르만 음반 탁월

무릎을 칠 정도로 상상력이 빛나는 영화를 만났을 때 감동은 배가 된다. <죽은 시인의 사회>를 연출한 피터 위어의 작품이 그렇다. 그는 놀라운 상상력으로 또 한 번 새로운 명작을 만들어낸다. 영화 <마스크>에서 천가지 표정을 만들던, 영화 <덤 앤 더머>에서는 바보들인 두 주인공 중 하나였던 짐 캐리를 주연으로.

자신이 태어난 섬에서 30년간 살아가는 주인공 트루먼. 그에게는 따뜻한 이웃, 어머니, 친구, 그리고 어쩐지 불편한 느낌의 아내가 있으며, 여느 이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가 살아가는 세상은 우주에서도 관측할 수 있는 거대한 TV프로그램의 세트장이며, 그의 일생은 태어날 때부터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말이다. 트루먼만 그 사실을 모를 뿐 주변의 모든 이들은 이 거대한 프로그램을 지탱하는 스태프거나 연기자들이다. 어머니와 아내, 심지어 7살부터 함께했던 친구마저 말이다.

주인공 트루먼은 자신이 가보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로 떠나기를 시도한다. /스틸컷·캡처

그의 하루는 행복한 웃음을 머금은 이웃과의 인사로 시작한다. "굿모닝, 나중에 못할 수도 있으니 굿애프터눈, 굿이브닝, 굿나잇." 그러고는 모차르트의 '터키행진곡'이 흘러나온다. 이 음악이 영화 <트루먼쇼> 배경음악인지 TV프로그램 <트루먼쇼> 시그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침의 시작을 알린다. 그의 반복적인 하루를 나타내려는 의도인지 바뀌지 않고 흘러나온다.

모차르트의 총 18개의 피아노소나타 중 제11번 k.331의 제3악장 '터키풍으로'. 너무나 유명한 멜로디라 누구나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모차르트는 이 작품 외 바이올린협주곡 제5번에서도 터키풍의 양식을 사용한다. 베토벤의 작품에도 '터키행진곡'이 있으니 터키의 양식과 문화가 당시에 얼마나 유행했는지를 보여준다 하겠다. 모차르트가 작곡한 피아노소나타들은 처음 배울 땐 쉬우나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들 한다. 피아니스트이자 모차르트 연구가인 슈나벨은 '모차르트는 어린이가 치기는 쉬우나 어른이 치기는 힘들다'라는 말을 했다고 하니 전문가마저 인정한 사실인가 보다. 아마도 그의 천진스러운 선율에 서려 있는 슬픔의 감정을 표현하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연주에서는 잉글리드 헤블러, 릴리 클라우스, 마리아 조앙 피레스, 미쓰코 우치다 등 여성 피아니스트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가운데, 일본이 자랑하는 피아니스트 우치다의 연주가 자아내는 그 영롱한 음색이 모차르트와 어울려 추천할 만하다.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자란 그녀는 일본인 최초로 쇼팽콩쿠르에 입상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잉글리시 체임버오케스트라와의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전집으로 입지를 확고히 한다. 그녀의 '터키행진곡'은 최근에 LP로 재발매되었다.

잡지 사진을 모아 사랑하는 실비아의 사진을 만들어낸 트루먼.

아내 역할을 맡을 여인과 트루먼을 엮기 위해 온갖 상황이 만들어지는 가운데 정작 트루먼은 실비아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라는 사람으로부터 '우리는 피지섬으로 간다'는 말만 들은 채 그녀는 사라져 버리고 만다. 아내 역할의 배역이 아닌, 엑스트라였던 그녀는 그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에게 진실을 알리려 하나 실패하고 역할에서 쫓겨난 것이다. 그런 그녀와의 짧은 데이트 장면과 잡지에서 오려낸 사진으로 그녀의 모습을 완성해 나가는 장면에서 흐르던 음악, 바로 폴란드 작곡가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1번 2악장 '로망스'다. 마치 영화 <닥터지바고>에서의 라라의 테마처럼 그녀의 등장 장면에서 흐른다. 실비아의 테마인 것이다. 실제 작곡 당시 쇼팽은 연모하던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곡에 스며 있을 것이다. 하니 절묘한 선곡이다.

이 곡은 쇼팽이 사랑하던 조국 폴란드에서의 마지막 연주회에서 초연되었으며 이후 '죽음을 향해 떠나는' 심정으로 떠난 후 다시는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쇼팽의 피아노협주곡은 그의 관현악법에서의 불균형으로 인하여 평가절하되는 경우가 많다.

갇혀 있던 세상에 안녕을 고하는 트루먼.

그럼에도 영화에 등장하는 '로망스'는 그 낭만적이고 몽환적인 선율 덕분에 대중으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연주로는 크리스티안 치메르만(Krystian Zimerman)의 음반을 추천할 수 있겠다. 1975년 쇼팽 콩쿠르에 우승한 폴란드 출신의 그는 지휘자 줄리니의 지휘 아래 음반(DG)을 남겼으며 이후 자신의 지휘와 반주로 두 번째 음반(DG)을 남긴 바 있다. 특히 폴란드 축제악단과 함께한 두 번째 음반은 기존의 연주 해석을 벗어나 새로운 해석을 보여준 예로서 쇼팽 음악에 있어서 그의 안목을 보여준다. 낭만적인 연주의 끝을 보여주는 듯한 해석으로 제목 그대로 멋진 로망스(낭만적)이며 폴란드 피아니스트와 악단의 폴란드 작곡가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연주에 있다.

바다(세트)에서 아버지(역할 배우)를 잃은 후 물에 대한 공포를 지니고 살아가는 트루먼. 이 또한 새장 안에 그를 가두려는, 감독의 의도된 연출이었으나 이제 그는 자신이 가진 거대한 트라우마를 뚫고 배에 올라 자신이 가보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로 떠나기를 시도한다. 사랑하는 실비아의 사진을 품에 안고서. 이에 만들어 낸 폭풍으로 그를 막아서는 감독. 하지만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과 실비아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한 그를 결코 막아내지 못한다. <트루먼쇼>의 주인공이 떠나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끝(세트장의 끝)에서 서버린 배, 그는 두꺼운 벽을 부술 듯 두드리며 울부짖는다. 그러곤 마침내 찾아낸 출구. 문을 열고 새장을 벗어나려 할 때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바로 프로그램의 감독 '크리스토프(Christof)'. 그는 트루먼이 살던 세상의 신이다. 트루먼을 창조했으며 그를 구원했다고 믿는 그는 이 세상은 거짓으로 가득하니 자신이 만들어 놓은 평화롭고 진실한 세상에 있으라고 말한다. 그러곤 자신이 만든 피조물이니 떠날 수 없을 것이라, 자신의 품 속에 있으리라 믿는다. 이에 세상의 모든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용기와 웃음으로 답한다.

세상의 끝에서 찾아낸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계단.

'나중에 인사할 수 없을 것 같으니 미리 합니다. 굿애프터눈, 굿이브닝, 굿나잇.'

그러고는 자신의 세계를 한정하던 벽을 넘어 사라진다. 모든 시청자들의 환호 속에 쇼는 끝났다. 나는 어떤 세트장에 서 있는가. 어차피 모든 것이 새장 안이다. 그렇다면 주인공 트루먼처럼 용기를 내야 한다. 위험에 대한 경고와 편안한 일상에의 유혹에 '굿바이'를 고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다른 나를, 또 다른 세상을 맞이하기 위하여. 이미 두 주인공의 이름에서 이 영화는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트루먼(TRUE Man), 크리스토프(CHRIST of)." /시민기자 심광도

※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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