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그리고 대자연을 이해하는 자세
최근 야외 레포츠로 인기
"인내 배우고 여유 즐겨"
환경파괴 등 부작용 속
서퍼들 자정 움직임도

한때 하와이 왕족 전유물이었던 서핑은 '현대 서핑의 아버지' 듀크 카하나모쿠를 거쳐 전 세계로 퍼졌다. 지금도 하와이 해안 곳곳에서는 세계 정상급 서핑 대회가 열리지만, 서퍼들은 파도만 있다면 어디든 찾아나선다. 설령 그곳이 매서운 추위로 무장한 곳이라도.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에서 제공하는 다큐멘터리 <북극 하늘 아래서(Under an Arctic Sky)>는 이들에게 한계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크리스 버커드 감독 다큐에 등장하는 서퍼들은 극한의 아이슬란드에서도, 6000명가량만이 사는 웨스트 피오르로 향한다. 지도와 감각에 의존한 이들은 이곳에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파도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 하나로 여정에 나선다.

목숨을 담보로 파도를 찾아나서는 이들을 일반적인 시선으로 이해하는 일은 무척 어렵다. 케이스 말로이가 감독한 파타고니아 다큐멘터리 <피시피플(FishPeople>은 서퍼를 포함한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크리스 버커드 감독 다큐멘터리 <북극 하늘 아래서> 한 장면.

48분짜리 영상에 등장하는 여섯 명은 깊이와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장대한 자연 속에서 살아간다. 때로는 두려움과 마주하지만, 이들은 대자연과 상생하는 법을 체화한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마음가짐이 곧 무모함으로 연결되는 셈이다.

물을 두려워하는 이에게 바다는 공포의 대상일지 모르지만, 바다는 기본적으로 생명의 근원이다. 다큐멘터리 <작전명 서핑>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리는 퇴역 군인을 조명한다. 이들은 끈질긴 전쟁의 기억 속에서 고통스러워 한다. 이들을 치유하는 것은 바다와 파도. 서핑은 이들에게 생명의 가치를 일깨우는 치료제로 쓰인다.

이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서핑은 단순한 레저 활동의 모습이 아니다. 인간 삶을 고찰하는 방법이자, 넓게는 자연을 이해하는 삶의 방식이다.

동부 대평양 제도에 분포한 수천 개 섬, 고대 폴리네시아를 기반으로 파도를 타던 문화는 1만㎞가량 떨어진 한국 대중문화에도 스며들었다. 고대 서핑을 차치하더라도 최초의 하와이 서핑 기록은 1779년. 하와이에서 한국으로, 서핑 문화의 이식에 걸린 시간은 200년이 넘는 셈이다.

그러나 이처럼 매력적인 야외 활동이 한국 대중의 마음을 뺏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현재 한국의 한 온라인 서핑 카페 가입자는 4만 7000명이 넘고, 강원도·부산시·제주도는 계절을 잊은 서퍼들의 안식처로 발돋움했다.

1㎞ 남짓 길이의 부산 송정해수욕장 곳곳에는 이미 많은 서핑 관련 숍이 자리를 잡았다. 지리적으로 경남과 가까운 서부산 다대포 해수욕장에도 서핑 숍이 들어섰다.

"하고 싶다고 무조건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자연이 도와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 서핑이죠. 파도는 매일 들어오지 않아요. 그래서 자연과의 교감이 중요하죠."

2015년께 다대포에 서핑 숍 '서프버디'를 차린 서퍼 강민석 씨는 스노보드 선수 출신이다. 2012년 스노보드와 유사한 여름철 활동을 찾다가 서핑을 접했다. 당시 집과 비교적 가까웠던 송정 바다에 거의 매일 뛰어들었다.

서퍼들은 '바다 사용료는 쓰레기 줍기'라는 기치 아래 자신이 즐겨 찾는 바다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기도 한다. 사진은 최근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벌인 '비치 클린' 행사 모습. /서프버디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찾다 시작한 서핑은 강 씨 가치관을 바꿔놓았다. 그는 "서핑을 시작하고 비로소 인내를 배우고 여유를 즐기게 됐다"고 말한다.

서퍼들은 자연의 흐름을 잘 읽어야 한다. 이들은 바닷물의 거센 흐름과 방향, 파도의 높낮이를 꾸준히 확인한다. 다양한 방법으로 바다의 움직임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자연과 교감한다. '서퍼는 게으르다'는 오해는 서퍼가 지닌 여유에서 비롯한다. 자연이 주는 선물은 다그쳐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한국에서 서핑이 인기를 끌면서 상업적 접근도 잦아졌다. 유행의 순환이 빠른 한국에서 상업적 방식의 접근은 우려를 낳기도 한다.

최근 한국 겨울 바다에서 서핑을 즐기는 다섯 명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를 공개한 영상 제작 전문 프로덕션 '38 프로덕션' 수장은 김동기 서퍼다.

그는 지난 2014년 자신이 운영하는 온라인 누리집 'Yesisurf.com'에 '서핑의 인기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라는 글을 올리고 서핑에 쏠리는 상업적 접근을 일찍이 경계하기도 했다.

"끝까지 순수한 서핑의 맛에 제대로 한번 빠져보지 못하고 그저 서핑을 단순한 유행이나 돈벌이 수단으로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서퍼들은 이러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상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맑은 연못을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로 만들어버리듯 우리가 이들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으면 분명 한국의 서핑 연못은 금세 흙탕물로 변해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이런 미꾸라지들이 서핑 연못을 떠나버리더라도 다시금 연못을 맑은 물로 만들려면 원래의 물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물(노력)이 필요합니다. 결국 처음부터 맑은 물을 계속 맑은 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서퍼들이 벌이는 '비치 클린' 활동은 큰 의미가 있다. '바다 사용료는 쓰레기 줍기'라는 기치 아래 서퍼들은 자신이 즐겨 찾는 바다에 버려진 쓰레기를 몸소 줍는다. 강민석 서퍼는 이 활동을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를 자처하는 파타고니아의 접근도 눈에 띈다. 작은 등반 장비 제조 회사에서 시작한 파타고니아는 서핑 제품도 생산한다. 이들은 이윤에 앞서 노동자 복지와 지역사회 이익을 추구하는 '공정 무역 인증' 생산과 더불어 천연고무, 재활용 소재로 제품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 특별하다.

최근 태국에서 죽은 바다거북 뱃속에서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견됐다. 매년 약 800만t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에 버려지는 점에 미뤄 바다거북의 비극적인 죽음은 단편에 불과하다. 서퍼들의 '비치 클린' 활동이나 파타고니아의 철학은 사회적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