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상황을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
서로 다름 인정하고 간격을 좁혀가야

며칠 전 한 도반의 초청과 배려로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세계 자연문화유산으로 보호받는 야쿠시마 숲 걷기 프로그램이었다. 제주도의 절반은 돼 보이는 큰 섬이었지만 인구는 5만여 명에 불과했다. 유락시설도 거의 없이 자연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치유의 숲 관광지였다. 곳곳에 삼나무 고목이 즐비했다.

수령이 최고 7000여 년 되었으리라 추정되는 조문스기, 3000년 되었다는 기원스기 등등 천 년 묵은 고목들을 다 헤아리기 어려웠다. 숲에 사는 사슴과 원숭이 개체수가 섬 인구와 비슷할 거라고 했다. 사람이 지나가도 두려워하지 않고 피하지 않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걷는 내내 탄성과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탄성은 손대지 않은 자연 스스로 위대함과 아름다움 때문이었다면 탄식은 전쟁의 상흔으로 망가진 우리나라 숲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산행을 마치고 즐거운 식사자리에서 감상을 자연스럽게 말하는 자리가 있었다. 다들 감동의 연속이었다. 차례가 되자 나 역시 산행의 감동을 전한 후 전쟁으로 유실된 우리 숲의 안타까움을 말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전쟁이 없어야 한다, 사람도 그렇지만 숲을 보아서라도 더 이상 전쟁이 없어야 한다고 목청 높여 말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모처럼 찾아온 한반도 평화기회를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런데 그중에 한 분이 반론을 제기했다. 요지는 이런 거였다.

'전쟁은 평화를 말한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은 억지력이 있어야 합니다. 북한사람들은 믿을 사람이 못됩니다. 지금의 남북 평화 분위기는 거짓일 가능성이 90%입니다. 전 정권들이 남북 화해한다고 퍼 주기 해서 북쪽이 핵 개발했지 않습니까? 두고 보십시오. 국민이 깨어있지 않으면 대한민국 공산화됩니다.'

이게 무슨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인가? 순간 짜증이 욱! 하고 올라왔다. 내 반론이 이어졌다. 상대도 물러서지 않았다. 옆에 있던 일행들이 '그런 정치 이야기는 그만하자'며 서둘러 진화했다.

문제는 나였다. 짜증 섞인 감정이 미운 감정으로 변했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산행의 감동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불쾌한 감정이 나를 지배했다. 남북 평화에 대한 기대감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암울한 생각에 빠져 있는 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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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다양성이랬는데…. 평화에 대한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미워하는 나를 들여다본다. 내 생각을 고집해서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규정짓는 내 독선을 본다. 그래…. 평화를 말한답시고 독선적이고 배타적이면 안 되겠구나. 진정한 평화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그 다름의 간격을 의견 교환을 통해서 좁혀가는 것이지. 새로운 남북관계에 이어 여야관계가 재편되는 상황에서 서로 다른 상대의견을 경청하고 배려하며 협력하는 평화를 기도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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