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걸레질 등 작은 일부터
가부장제 문화 가정부터 탈피해야

나는 집안의 분위기 브레이커다. 오랜만에 동생 가족과 만난 자리, 아이들은 신나게 놀고 어른들은 소주잔을 부딪쳤다. 아이들의 고른 성장이 기분 좋은 안줏거리가 되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한 사람이 눈에 밟혔다. 조카를 보느라 제대로 먹지 못하는 올케다. 남편이 눈치를 채고 "좀 드세요" 하며 음식을 밀어줬지만, 상냥한 말에 불과할 뿐 식사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쌍둥이를 보던 내가 나서서 한마디 했다. "말만 하지 말고, 당신이 애들을 봐." 찬물 끼얹은 듯 분위기가 싸해졌다. "형님, 괜찮아요" 하고 올케가 어색하게 웃었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남동생이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누나, 뭐 안 좋은 일 있어?"

집을 나서며 동생은 정말 걱정된다는 눈빛으로 "오늘 안 좋은 일 있었나?" 재차 물었고, 나는 애써 불행한 일을 떠올려야 했다. 처음으로 불편한 상황에 태클을 걸었던 것인데, 모두가 불편해 하는 것을 보니 고민에 빠졌다. 내가 잘못한 건가? 나는 왜 부조리한 것에 먼저 센서가 작동하지? 사회 부적응자인가?

그나마 친정의 상황은 낫다. 시댁에서 마주하는 상황들에 대해서 발언권이 거의 없다. 암묵적인 위계질서와 명절 때의 편파적인 상 차리기 노동량은 매년 겪어도 면역이 되지 않는다. 비평이론 연구가 로이스 타이슨은 가부장제를 '전통적인 성 역할을 조장함으로써 남성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문화'라고 말한다. 어떻게 하면 이 지독한 가부장제를 깨부술까, 웬만하면 같이 살아야 할 가족이기에 과격한 시위는 금물이다. 투쟁은 장기전, 지능전을 요구한다. 그동안 나의 보이지 않는 노력은 이러하다.

식사 후, 설거지하겠다 일어서는 아버님을 만류하지 않고 칭찬해드린다. 공감할 수 없는 어른의 말은 웃으며 침묵할지언정, 긍정하지 않는다. 남편의 걸레질을 흔들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어머님께 동조하지 않는다. 심각한 직장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남성들의 대화를 비집고 들어가 구성원 모두가 말할 수 있는 주제를 던진다.

이게 무슨 투쟁이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낡은 관습과 익숙한 생활을 조금이라도 바꾸는 것이 내게는 혁명이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착한 며느리이자, 아내다. 내가 이토록 치열하게 고민하고 혼자 속을 썩이는지 대체 누가 안단 말인가.

가사와 돌봄 노동에 있어서 남편과 대립각이 설 때마다 나는 눈물로 호소했다. 급기야 이번에는 "여기서 더는 양보할 수 없다!"라고 선언했다. 이제 당신이 배우고, 잘할 차례야. 내 생각이 삐딱하다고 말하는 남편에게 딱 잘라 말했다. 가족 구성원이 느끼는 불만과 고통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건의할 수조차 없다면 대체 가정은 왜 존재하나.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같이 살아갈 이유도 없다고 완강하게 말했다. 남편은 더 잘하겠다고, 최근에는 추천해주는 페미니즘 책을 읽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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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 해체, 탈가족을 말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한편으로 해방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실은 그도 가족 부양의 책임이 일방적으로 큰 가장이라는 무게가, 힘으로 무장한 권위적인 사내들의 세계가 숨 막힌 것이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남편이 진정한 동지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함께 가부장제를 야금야금 깨부수고 싶다. 너무 크게 부수면 야단나니까 조금씩.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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