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 둘러싼 갈등 여전, 진상 규명은 시작도 못해

밀양 765㎸ 송전탑 반대 주민을 폭력으로 진압한 행정대집행이 4년을 맞았지만 주민이 요구하는 사과는커녕 진상 규명이 더디다.

한국전력공사는 지난 2014년 6월 11일 밀양시청 공무원과 경찰을 앞세워 송전탑 반대 주민 농성장을 강제철거했다. 그해 말 신고리 핵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보내는 765㎸ 송전선로(90.5㎞) 공사는 마무리됐다.

시간이 흘렀지만 상처받은 주민은 치유받지 못했고, 마을공동체는 무너졌다. 경과지 주민은 지금도 보상문제 등을 두고 찬반으로 갈려 갈등을 빚고 있다.

송전탑 반대 주민은 지난해 5월 '촛불의 힘'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대한 기대를 걸었다. 응답이라도 하듯 경찰청은 지난해 8월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를 발족했다. 조사위는 독립성 보장을 위해 조사위원 9명 가운데 6명을 인권단체 관계자 등 민간위원으로 구성했다. 조사위가 맡은 사건은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과 밀양송전탑 건설 반대 농성,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운동, 평택 쌍용자동차 진압, 용산 화재 참사 등 5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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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송전탑 사태 당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막으려다 경찰에 의해 길 밖으로 끌려나간 후 경찰에 2중 3중으로 포위 당한 밀양 주민들./경남도민일보DB

진상 규명은 시작도 못 했다. 밀양765㎸송전탑반대대책위는 "밀양 사건은 우선 조사 대상으로 지정됐지만, 아직 조사조차 시작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백남기 농민 사건, 용산 화재 참사 등 3건을 먼저 조사하고 있다"며 "3건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면 밀양 사건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민들은 직접 자료를 모으고 조사한 22건을 지난 2월 감사원에 공익감사 청구도 했지만 감사 여부 답변을 듣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은 상처받는 일을 또 당했다. 지난 5월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밀양 방문을 하루 앞두고 돌연 취소했다. 정부와 주민은 마을공동체 파괴·재산피해·건강피해 조사단을 꾸리기로 약속했다. 대책위는 산업부가 갑자기 위원을 추가하자고 제안했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장관 방문이 취소됐다고 주장했다.

송전탑 반대 주민은 "6·11 행정대집행 4년이 흘렀지만, 사과도 없다.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며 송전선로 건설과정에서 벌어진 국가폭력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거듭 촉구했다.

대책위는 11일 성명을 내고 "밀양 주민은 지난 13년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그러나 아직 그토록 상식적이고 당연한 조처는 시작조차 되지 못했다"며 "밀양 주민의 주장은 매우 단순하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공식 사과와 '제2의 밀양'을 만들지 않을 법과 제도에 대한 개혁"이라고 밝혔다.

대책위는 △에너지 적폐 청산 △신고리 4·5·6호기 건설 중단, 장거리 송전선로 건설 계획 철회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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