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분권이다] (21) 주민자치 현실
1999년 시작된 주민자치위
지방자치 주체 역할로 출범
실상은 행정말단 수행 그쳐
경남도주민자치회 앞장서
주민자치회법 제정 운동
예산·주민총회 보장되면
읍면동장 임명 현실 극복

경상남도주민자치회 안창희 공동회장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지방분권에서 주민자치가 핵심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은 비중이 10%도 안돼요."

"도내 읍면동별 주민자치회 조직률이 80%가 넘어요. 형태는 갖춰져 가는데 문제는 기능과 예산입니다. 읍면동 사무소 하부기관 비슷해요. 주민자치위원을 읍면동장이 임명할 정도니까요."

맞는 말이다. 지금 읍면동 주민자치위원들이 하는 일이 뭔가.

읍면동별 주민자치센터에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운영한다. 기타·색소폰, 에어로빅, 한글공부, 붓글씨….

올해 2월 열렸던 경상남도주민자치회 총회. /경상남도주민자치회

1999년 주민자치위원회가 생길 때 취지는 달랐다.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생활상의 불편, 민원, 이런 과제를 수렴하고 건의하기 위해서 생겼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노산동 주민자치위원장이기도 한 안창희 공동회장이 실상을 설명했다.

"보통 20~25명 정도 주민자치위원이 있어요. 동에서 위원모집 공고하고, 서류심사해서 뽑고, 동장이 임명을 해요. 보통 한 달에 한번 회의를 해요. 그때 밥값이 2만 원 나와요. 동네 축제나 행사가 있으면 위원들이 오히려 돈을 내요. 예산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요."

경상남도주민자치회 유인석 회장.

◇주민자치회 이게 문제다

그런데도 그는 왜 지방자치에서 주민자치가 핵심이라고 했을까?

흔히 읍면동마다 있는 주민자치위원회를 언급하긴 하지만 자치위원이 누군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게 현실 아닌가.

이론대로라면, 지방자치는 단체에 의한 자치와 주민에 의한 자치 두 측면으로 구분한다. 공무원에 의한 것은 단체 자치이고, 주민자치회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이 주민자치다. 주민들이 잘 살고 잘 먹고 잘 놀고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주민자치다.

전국에는 226개 기초자치단체가 있다. 인구는 천차만별이다. 수원시가 120만, 창원시가 110만에 고양시가 100만 넘는다. 가장 적은 기초단체는 경북 울릉군으로 1만 명이다. 관할 범위가 넓고 인구가 많으니까 시군구청장과 의회를 통해 대의민주주의를 하는 것이고, 그 한계를 보완하는 것이 주민자치다.

경상남도주민자치회 안창희 공동회장.

결국 지방자치를 땅바닥에 뿌리내리게 하는 주춧돌 역할을 하는 게 주민자치다. 하지만, 안창희 회장의 푸념 속에서 현재 주민자치의 실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경상남도주민자치회 유인석 대표회장은 핵심적 문제점과 대책을 이렇게 제시했다.

"주민자치회가 실질적인 지역·주민·사업 대표로 행정의 말단이 아니라 지역의 리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읍면동사무소 업무 보조나 하위 개념이 아니라 협력자로서 위임·위탁·협의 사무 같은 자치단체의 행정에 참여해야 해요."

"주민자치위원 선출제도부터 바꿔야 합니다. 지금처럼 읍면동장이 임명할 게 아니라 우선은, 시장이 임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읍면동에서 역할을 할 수 있어요. 그 다음에 주민자치회법이 생기면 주민총회에서 직접 선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입법이 안 된 입장에서는 주민총회가 어렵거든요. 주민자치회법이 생기고 주민총회가 만들어지면 총회에서 주민자치위원과 회장을 선출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래야 독립된 지위를 가지고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지요."

"나아가 주민자치회 입법권은 주민자치회가 가져야 합니다. 시군구 의회는 주민자치회 입법권의 한계만 설정하면 돼요. 행정권·재정권 역시 주민자치회가 갖도록 해야 합니다."

주민자치회가 주민자치의 출발이요 귀결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헌법-법-조례 형태의 주민자치회 체계가 정착돼야 한다는 것이 유 회장의 결론이었다.

그래서 경상남도주민자치회는 현재 주민자치회법 제정 운동을 벌이고 있다. 가칭 '주민자치회에 관한 법률'에는 주민자치회의 법적 지위와 성격, 기능, 위원 및 위원장 선임 등 조직구성 방안을 담고 있다. 물론, 핵심인 예산편성도 규정했다. 기존 지방행정체제와의 관계와 행정·재정적 지원체계 등의 실체적 요소를 담은 것이다.(표 참조)

경상남도주민자치회 임병무 상무이사.

◇도내 주민자치회 활동

현재 전국에는 3490개의 읍면동이 있다. 주민자치회는 김대중 정부 때 시작됐다. 동은 1999년부터 주민자치센터로 변경을 하면서 주민자치위원회를 의무적으로 만들었다. 읍면 단위에는 선택을 하게 했다. 이렇게 해서 전국 2300곳에 주민자치위가 있고, 주민자치위원들이 5만 명 정도 된다.

2013년에는 '주민자치회'가 시범 운영됐다. 주민자치위원회가 주민자치센터의 부속에 그치는 '사이비 주민자치'를 벗어나자는 것이었다.

주민자치 일부 요소가 보완됐지만, 실제로는 이전 조직-인력을 그대로 유지했다. 주인인 주민은 빠져있고, 읍면동장과 기초의회 의원과 주민자치위원 간의 묵시적인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다.

도내 주민자치위원회 상황은 어떨까? 경상남도주민자치회 임병무 상무이사가 답했다. 그는 창원시 성주동주민자치위 고문을 맡고 있다.

"도내에 308개 읍면동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주민자치위원회가 278개 결성돼 있어요. 한경호 권한대행이 작년 11월 도내 부단체장 회의에서 주민자치위 구성 비율을 대폭 높이자고 제안하고, 읍면동에 발전위원회를 전환하게 하면서 대폭 늘었습니다. 그중 창원시내에는 58개 읍면동이 있고, 주민자치위가 100% 구성됐지요."

"읍면동 주민자치위원장들이 모여 각 시군별로 협의회를 구성했습니다. 창원시와 김해시, 진주시, 거제시 협의회 등 시군협의회 활동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이를 포괄하는 조직이 경상남도주민자치회죠. 창원시 용지동과 거창군 북상면에는 주민자치회가 시범 운영되고 있어요."

"가장 큰 문제는 관련 법령이 없다는 것입니다. 각 지역별로 조례로 운영됩니다. 하물며 각 아파트에도 주택법 및 주택법 시행령에 근거한 공동주택관리규약이 있어서 입주자대표회의가 운영됩니다. 그러다 보니 주민자치위가 행정기관 하부 보조기관에 그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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