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역은 근대입니다"
지난 1905년 영업 시작한
근대사의 상징 '삼랑진역'
등록문화재 급수탑도 있어
주변엔 일제강점기 건물도
영화세트장 같은 모습 간직

기차가 출발합니다. 창원중앙역에서 밀양 삼랑진역으로 가는 길입니다. 25분 정도 걸리는 여정이네요. KTX가 서지 않기에 이제 삼랑진으로 가는 기차는 무궁화호뿐입니다. 노선도 서울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순천과 포항을 오가는 열차가 1회, 순천과 부산을 오가는 열차가 2회, 목포와 부산을 오가는 열차가 1회, 이렇게 하루 4번, 왕복으로는 8번 이 구간을 오갑니다. 여기에 S-트레인이라고, 보성과 부산을 오가는 관광열차가 하루 한 번씩 지납니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연결하는 경전선의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비둘기호를 기억하시나요

오랜만에 무궁화호를 탔습니다. 대학에 다니던 1990년대 초반에는 서울과 마산을 오가며 자주 탔지요. 5시간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는 새마을호가 일종의 고급열차였습니다. 대학 MT(엠티·일종의 단합회)로 자주 타던 경춘선도 무궁화호였던 것 같습니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에서 강원도 춘천에 이르는 노선입니다. 그 중간에 있는 역들 대성리, 가평, 강촌 등 모두 유명한 MT 장소였습니다. 돌이켜 보니 추억 많은 이름들입니다. 지금은 경춘선이 전철화되었습니다. 요즘 대학생들은 이 전철과 함께 또 나름의 추억을 쌓아가겠죠.

고등학교 때는 합창동아리 나들이로 기차를 탔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산역에서 출발했는데, 기차 좌석이 마치 지금 지하철처럼 마주 보는 방식이었습니다. 아이보리색 페인트에 녹색 의자. 그게 바로 비둘기호였던 것 같네요. 합창동아리 아니랄까 봐 우리는 좌석을 버리고 바닥에 둘러앉아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차장 아저씨가 몇 번이나 와서 주의를 줬습니다. 하지만, 낭만이 규칙을 이기는 시절이었으니까요. 어느 역에서 내린 우리는 조금 걸어 곧 강변 모래사장에 닿았습니다. 거기서 한나절 신나게 놀았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바로 낙동강역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이 역에는 이제 기차가 서지 않습니다. 낙동강역을 지나자마자 곧 밀양시 삼랑진읍 송지리 삼랑진역입니다.

▲ 삼랑진역. /이서후 기자

◇역 이름을 지명으로 쓰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삼랑진역 주변은 꼭 영화세트장 같다고. 실제로 일제강점기 이전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영업을 시작한 아주 오래된 역입니다. 물론 수탈의 아픈 흔적이지요. 일제는 삼랑진역을 기점으로 서쪽으로 철로를 뻗어나갑니다. 1927년 마산역이 생기면서 경전선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일제강점기에 삼랑진역은 그 의미가 컸던 것 같습니다. 역 이름을 지명으로 삼을 정도였으니까요. 삼랑진읍의 옛 이름은 하동면(下東面)입니다. 아래에 있고 동쪽에 있다는 간단한 의미였죠. 그러다 삼랑진역이 중요해지고 이름이 나기 시작하면서 1928년 하동면이 삼랑진면으로 바뀝니다.

하지만, 삼랑진(三浪津)이란 이름 자체는 조선시대에도 있던 것입니다. 한자 그대로 세 물결이 만나는 나루입니다. 밀양강, 낙동강 상류, 역류한 바닷물이 섞인 낙동강 하류 이렇게 삼랑(三浪)입니다. 조선시대 삼랑진은 낙동강에 있던 큰 포구였습니다. 밀양, 현풍, 창녕, 영산, 김해, 양산 등 주변 여섯 고을에서 걷은 토지세와 대동미를 수납, 운송하던 곳이었지요.

춘원 이광수가 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한 <무정>이란 소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 현대소설이라고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에 주인공들이 삼랑진역에서 음악회를 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처럼 삼랑진역은 우리나라 근대 역사의 상징 같은 곳입니다. 그리고 근대의 흔적이 아직도 구석구석 남아있으니 영화세트장 같다는 표현이 나올 만합니다.

▲ 근대문화제 급수탑. 1923년 경부선을 운행하던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이서후 기자

◇관사촌에서 옛 영광을 상상하다

삼랑진역을 나섭니다. 도로 좌우편으로 야트막한 건물들, 오래된 간판들은 여전하네요. 그래도 몇 해 전 찾았을 때보다는 제법 변한 느낌입니다. 정면에 보이던 빨간 간판의 백마다방은 건물이 헐리고 없네요. 홍익회라고 아시죠? 객차 내 판매, 구내매점을 하는 재단법인입니다. 철도공상자나 순직자 유족 생활보조를 위해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홍익회 전신이 강생회입니다. 1936년 설립됐고, 1967년 홍익회로 바뀌기 전까지 이 이름을 썼습니다. 백마다방 건물이 바로 강생회 사무실이 있던 곳입니다. 건물마저 사라져 아쉽네요. 서쪽으로 방향을 잡고 250m 정도 걸으면 '필프라이스'라는 마트가 나옵니다. 원래 철도병원 자리라네요. 마트가 있는 골목으로 쑥 들어가면 무언가 비슷한 모양으로 가지런한 옛 주택가가 나옵니다. 삼랑진역 옛 관사촌입니다. 역무원들이 살던 곳이죠. 동서로 230m, 남북으로 260m 규모 부지에 1927년에서 해방 때까지 계속 관사를 지었습니다. 주택은 대부분 일제강점기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동네 한가운데 가로세로로 난 도로도 일반적인 2차로 도로보다 훨씬 넓습니다. 북쪽으로 산자락에 원불교 삼랑진 교당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신사가 있던 자립니다. 구석구석 둘러보니 당시에는 아주 선진적인 주택가였지 싶습니다. 여러모로 삼랑진역의 옛 영광을 상상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 옛 모습을 간직한 삼랑진역 주변 풍경. /이서후 기자

◇소박한 변화들

역으로 돌아오는 길 유명하다던 수제햄버거 가게를 지납니다. 온통 파랗게 칠한 건물에 심플한 하얀 간판. 역 주변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입니다. 이렇게 삼랑진역 주변에는 소박하지만 나름 오밀조밀하고 예쁜 곳이 한둘씩 생기고 있습니다. 옛 모습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렇게 개성 있는 공간들이 늘어나면 좋겠네요. 삼랑진역은 그 분위기만으로도 여전히 매력적인 곳이니까요.

창원·마산으로 가는 기차를 타는 3번 플랫폼. 이곳에서는 그 유명한 근대문화재 '급수탑'을 가까이서 볼 수 있습니다. 1923년 세워졌는데, 증기 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시설입니다. 굵은 덩굴나무가 급수탑을 감싸고 잎을 틔우고 있습니다. 마치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역사처럼 말입니다.

▲ 옛 관사촌. 주택 대부분 일제강점기 모습을 유지했다. /이서후 기자

※참고문헌

<밀양·삼랑진읍에 있어서 철도관사의 형성과 변용>(박중신, 대한건축학회, 2006)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