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 지음
여성혐오·4대 강·성소수자 등
가치관 담은 34편의 산문 엮어
불편하지만 필요한 주제 통해
올바른 방향 위한 '사색' 강조

당신을 위한 시를 써 처방을 내리는 시인, 바로 김현 작가다. 그는 출판사 창비와 함께 SNS를 통해 '시요일과 함께하는 김현 시인의 시 처방전'을 하고 있다.

그의 시가 아니어도 소화제를 먹은 듯 속이 뻥 뚫리고 손이 닿지 않아 토닥이지 못했던 나의 마음 한구석 어딘가가 아문다.

바로 김현 작가의 산문집 <질문 있습니다>다. 시인의 34편 산문을 묶어 낸 책 속의 서른네 가지 이야기는 마치 나를 위한 맞춤형 처방전처럼 읽힌다.

먼저 동명의 산문 '질문 있습니다'는 문단 내 여성 혐오와 성폭력 문제를 고발한 글이다. 작가는 글 끝에 자신은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며 문단의 페미니스트들에게 문단에서 벌어진 여성 혐오, 범죄기록물을 '독립적으로' 만들어보면 어떠하냐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해 글은 책장을 넘기는 순간 예고 없이 찾아온다. 작가는 4대 강, 성소수자 등 예민하고 무거운 주제와 연애, 여행처럼 가볍고 사적인 글을 섞어 놓았다. 글들은 서로 제 차례를 잘 알고 인내심 있게 기다리다 방심 없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온다.

작가는 최근 발표하는 모든 지면의 약력에 '페미라이터'라고 적고 있다. 그는 '자수하세요'라는 제목의 산문에서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 증언 운동을 어떤 방식으로든 기억하고 싶은 심정에서 시작했다고 밝혔다. '페미라이터'가 작가의 정체성을 나타내며 작가의 권력을 질문하는 것으로 작동하길 원한다는 시인.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지면에서 발견되는 페미라이터라는 말에 끊임없이 주눅이 들길 바라며,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페미라이터라는 말 때문에 계속해서 지지받는 느낌을 받길 바란다'는 작가의 글에서 격하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작가의 산문은 직설적이지만은 않다. 추함을 말하려고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 또한 힘겹지만 해내고 있다.

바로 4대 강이다. 낙동강 일대를 걸으며 누군들 고발하고 싶은 그 오만을 강의 서사로 풀어냈다.

'강의 원본' 산문 속 '달의 뿌리'에서 '실은 밤 물결 위에 뜬 달은 물고기들의 아가미에서 빠져나온 둥근 숨소리다'를 읽으니 더는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낙동강 사업 39공구라고 불리는 그곳의 밤 풍경이 달의 뿌리가 되어 아른거린다.

작가는 쓰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 강정에 관한 글을 '애쓰는 일'이라고 제목 붙였고, 2016년 7월 28일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린 '균형법 제92조의 6'을 규탄하는 시를 써야겠다고 말한 '견본세대 2'는 묵직하게 읽힌다. 관련 법은 '합의한' 성관계를 문제 삼아 동성애자 병사를 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인데 시인은 2015년 동성애 관련 시를 쓰기도 했다.

<질문 있습니다>는 페미니스트이자 인권활동가로서, 작가이자 시인으로서 그의 생각과 가치관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일상과 삶에 묻어나온다. 그래서 그의 팬이라면 더욱더 열광하게 될 것이고 반대 부류라면 첫 장조차 읽히지 않을 것이다.

앨리스 메이넬의 산문 '삶의 리듬'에서 그녀는 말한다. "삶이 늘 시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최소한의 운율은 있다"라고. 이런 문장을 앞에 두는 일이 바로 사색일 것이다. 작가는 이를 소개하며 먹고살기도 무서워서 사색하기 어려운 시대지만, 사색해야만 하는 수상한 시절이라고 강조한다.

자신이 앞으로 쓸 글이 '다수가 싫어하는 것이겠구나'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던 시인.

하지만 그는 읽고 쓰는 삶을 사는 사람 누구라도 그러하듯 이 한 권의 책은 항상 두렵지 않은 방향으로, 헛되지 않은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비록 당도하지 못할지라도….

작가는 말한다.

"그렇다고 문학이 무슨 인권 보고서입니까? 문인이 무슨 인권 활동가입니까? 물을 수도 있겠지요. 그럼 문학이, 대체 그런 게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질문 있습니다>가 참 고맙다.

서랍의 날씨 펴냄, 207쪽, 1만 2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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