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루트 따라 떠나다] (8) 어느 하늘에나 북극성은 뜬다
인구 120만 방사형 구조 '팔라디오의 도시'로 유명
그가 남긴 건축물 29개소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건축기법 유럽 전역 전파 백악관 등 유명건축 모본

한 인간의 죽음은 또 다른 세계의 연장선상에서 그 인간을 보게 하는 프리즘이다. 죽음 그 자체만으로도 삶보다 더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분명히 인간은 다른 피조물들에 허락되지 않은 영원성이 부여된 존재다.

한 권의 소설이지만 단지 허구적 얘기들만이 아니었던 괴테의 초기 명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한 여백에 나는 이렇게 메모를 해 놓았던 적이 있다.

"우리가 무엇을 표현하는 방법 중 죽음이라는 방식은 하늘이 준 최고의 방식이다. 그 어느 피조물도 따라 할 수 없는, 오로지 인간에게만 부여해 준 하늘의 선물이다. 베르테르는 그 선물을 십분 활용했으니, 이것보다 극적이거나 호소력 있는 방식은 아직은 없어 보인다"

괴테는 베르테르라는 인간을 죽음으로 인도하여 신분 질서와 문화적 카르텔 속에 갇혀 있던 그를 자유로운 몸이 되게 만들어 버렸다.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죽음이라는 것이 자발적이든, 자연적이든, 타의에 의한 것이든 그럴 수 있다.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내가 오늘 온 이곳 비첸차에도 안드레아 팔라디오(Andrea Palladio·1508~1580)라는 거장의 숨결이 살아 있으니 500년 전에 그가 죽었다는 것이 그 어디에서도 실감 나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 이후에 더 영속성을 지닌 그의 도시로 살아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인간은 죽기 전까지는 아직 살아 있는 것이 아닐 수 있다.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작은 도시 비첸차. 어떻게 보면 유명한 관광지 한 곳도 없는 이곳에서 이틀 동안 배회하고 방황하듯 쏘다녔다. 천둥과 번개가 치고, 갑자기 해가 나고, 또 저녁에는 가랑비가 내리고, 골목길에서 아프리카 전통 악기로 연주하는 흑인 악사에게 1유로의 기쁨도 줘 보고, '본주르노', '그라치에' 단 두 마디의 단어로 모든 대화를 해 내지만 나를 이끈 것은 소중한 뭔가가 이곳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베로나에서 기차로 30분 걸려서 도착한 비첸차는 역에 내려서 다운타운에 있는 나의 숙소로 오는 데까지 느린 걸음으로도 1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미 그 사이에 이 도시의 분위기를 거의 파악할 수 있었으니 도시는 간결하고 중심지를 두고 방사형으로 도로가 형성되어 있었다.

무엇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는가? 괴테가 그랬던 대로 북극성이며 모범으로 추앙받는 이가 있음을 확인하기 위함이었고 나 또한 그의 발자국에 내 발을 맞춰 보기 위함이었다. 나는 앞의 글에서 베로나를 '모든 것'을 가지면서도 나머지 '하나'까지 가진 도시였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이곳의 비첸차는 '모든 것'은 없지만 단 '하나'를 가진 도시다.

팔라디오가 없는 비첸차, 비첸차가 없는 팔라디오는 상상할 수가 없다. 운명적으로 만난 둘은 서로 치켜세워 주며, 미래까지 약속을 했다. 시내 서점에서 구입한 에 따르면 팔라디오가 남긴 건축물은 비첸차에만 하더라도 29개소나 된단다. 그의 작품마다 간결한 사인물이 세워져 있고 어떤 것들은 유네스코 문화유산까지 등재되었다.

테아트로 올림피코 내부.

팔라디오는 그의 대표 작품인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옆에 서 있는 볼품 사나운 건축물들과 탑들을 모조리 없애 버릴 생각이었지만 실천하지는 못했다. 지금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바실리카 팔라디아나와 불과 1m 간격도 안 되게 서 있는 복잡한 건축물들이 그의 건축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오히려 극과 극의 대비를 이뤄 바실리카 팔라디아나를 돋보이게 하여 주었다. 그 또한 합리성과 불합리성이 공존하는 것이 세상 이치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테아트로 올림피코는 지금도 여전히 공연이나 행사가 열리고 있다. 며칠 전에 본 베로나의 아레나가 야외극장이었다면 그것을 고스란히 실내로 가져온 것이 바로 테아트로 올림피코다. 나무로 만든 계단식 원형 객석은 밟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 이 건물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짐작을 하게 만들었지만 극장 내부는 500년이 넘은 세월 속에서도 여전히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현장 견학을 온 대학생들 앞에서 설명을 하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공명이 되어 온 극장을 울렸다.

로톤다는 시 외곽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거기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고 하지만 어지간한 거리는 걷는 것이 오히려 시간도 아끼고 주변도 감상할 수 있기에 4km가량을 걸었다. 갑자기 쏟아진 빗속에서 어렵사리 찾아낸 로톤다는 굳게 문이 잠겨 있었다. 철창 대문 문살 사이로 정면만 바라볼 수 있었지만 그의 안정감과 품위를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이것이 백악관이나 다른 유명한 건축물들의 모본이 되었다고 한다. 그 가치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로톤다.

이 작품은 팔라디오의 빌라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으로 팔라디아니즘의 심벌로 추앙되고 있다. 이 빌라를 이처럼 유명하게 만든 요인 중의 하나는 입지조건이었다. 그의 <건축4서>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부지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쾌적한 곳에 있다. 쉽게 오를 수 있는 작은 언덕 위에 있으며 한편에는 배가 다니는 바킬리오네 강이 흘러 윤택하고, 다른 편은 매우 아름다운 구릉지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큰 극장과 같은 형태를 이룬다"

팔라초 키에리카티.

왜 팔라디오인가? 왜 이 도시에서 나는 '모든 것'이 아닌 '단 하나'를 팔라디오로 꼽았는가? 괴테도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고대인과 고대의 건축물을 철저히 연구하여 우리 시대의 요구에 맞도록 적용했다." 비록 신의 영역인 창조는 아닐지언정 참과 거짓을 버무려 제3의 것을 만들어 우리를 매혹하는 위대한 작가의 힘을 그에게서 본 것이다. 로마로 가는 여정 중에서 만난 진정한 로마인 팔라디오. 그 이전의 비트루비우스(M. P. Vitruvius)로 이어지는 로마의 시원을 그 두 인물 속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어디에 있든지 괴테의 시선은 고대 로마에 맞춰져 있다.

저녁 무렵에 태양이 지면서 내려앉은 빛이 이 도시의 역사지구로 들어가는 관문인 카스텔로 광장의 탑에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문득 앞으로 수없이 만나고 스쳐 지나갈 도시들이 떠올랐다. 이미 여덟 개의 도시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벌써 아련한 기억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순간이지만 앞으로 만나게 될 도시들도 결코 소홀히 대하지 않겠노라고, 과소평가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어느 도시나 어느 동네나 여행자들에게는 소중한 쉼터가 되겠지만 그보다는 이 도시를 채우는 정신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숙소에 도착하자 태양은 비첸차의 상징적 건축물인 바실리카 팔라디아나(Basilica Palladiana) 꼭대기에 걸려 있었다. 팔라디오가 이 도시의 북극성이듯이 오늘 이 밤 우리의 땅 밤하늘에도 북극성은 빛날 것이다.

/시민기자 조문환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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