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 바비큐·파헤친 산·현란한 현수막…
수학여행 중 발견한 '인간탐욕' 부끄러워

얼마 전 아이들과 함께 수학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수학여행은 들뜸과 설렘 속에 시작됩니다. 아침 일찍 버스에 올라 첫 목적지 전주로 향했습니다. 밤잠 설친 아이들은 차에 타자마자 잠이 듭니다. 그 틈에 조용히 차창 밖으로 눈길을 돌려봅니다. 저 멀리 장엄한 지리산이 보입니다. 아름다운 강도 보이고 생명력 넘치는 논도 보입니다. 이제 막 시작된 모내기한 논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킵니다.

버스는 어느새 큰 도시로 접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공장이 빽빽하게 심어져 있는 것 같은 공단이 보이고, 굴착기와 덤프트럭의 부산한 움직임도 보입니다. 전원주택 단지 조성하느라 산을 온통 파헤친 모습도 나타납니다. 통째로 잘려나간 산허리에 높디높은 석축을 쌓고 있습니다. 큰 비라도 내리면 금방이라도 토사가 밀려내려 올 것 같이 위태롭습니다.

곳곳에 전원주택 단지 분양이라는 큰 현수막이 내걸려 있습니다. 수도권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심해집니다. 산을 통째로 파헤쳐 널브러져 있는 곳이 수없이 나타납니다. 강도 마구 파헤쳐져 있습니다. 구불구불하던 원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도로도 강도 사람들 마음도 오로지 직선을 향해 달려갑니다.

도로변으로는 노란 꽃물결이 바람에 흩날립니다. 큰금계국 꽃입니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식물입니다. 다년생인 큰금계국은 뿌리로 왕성하게 번식합니다. 한번 심어 놓으면 계속해서 세력을 확장해 나갑니다. 한 뿌리에서 여러 갈래의 줄기와 꽃이 자라나 주변 토종 식물을 고사시키는 무서운 식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전국의 도로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이 되었습니다. 일본은 해마다 퇴치 작업하고 있다는데 우리나라는 해마다 심어 가꾸고 있습니다. 이팝나무 가로수도 마찬가집니다. 전국을 뒤덮다시피 했던 벚나무 가로수를 대신한 나무가 이팝나무입니다. 대통령이 좋아하는 나무라 청계천에도 심고 전국의 길가에도 심게 되었다는 뒷말이 들리는 나무입니다.

가는 곳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또 다른 풍경은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의 현란한 현수막과 판에 박은 듯한 길거리 인사입니다. 전국의 후보자들 모습이 거의 동일합니다. 파란 옷, 빨간 옷, 녹색 옷, 하얀 옷. 온갖 옷 차려입고 차와 사람들 통행이 제일 많은 사거리에 서서 연신 손을 흔듭니다. 최대한 깊숙이 허리 숙이며 영혼 없는(?) 절을 합니다. 가는 곳마다 큰금계국처럼 전국을 뒤덮는 비슷한 개발 공약이 난무합니다. 후보자와 운동원들은 이팝나무 가로수처럼 서 있습니다. 하지만, 후보자들 공약을 모두 이행하려면 대한민국 국토가 여러 개쯤 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인구도 지금보다 두 배에서 세 배쯤은 늘어나야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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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다니며 관찰한 전국 방방곡곡 풍경입니다. 아이들은 뭘 보고 배울까 걱정이 앞섭니다. 가는 곳마다 도로 만들고 공업단지 만드는 대형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파트 숲도 갈수록 늘어만 갑니다. 수학여행지 모습도 마찬가집니다. 대형 주차장부터 만들고, 예쁜 풍경 망치는 획일화된 사업을 아무런 생각 없이 진행해 나갑니다. 온 국토가 파헤쳐져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선거 끝나면 더욱 심해질 태세입니다. 길 가다 만난 도로 옆 안내 간판에는 '300~400년 된 소나무 숲 속에서 바비큐'라고 적혀있는 곳도 있습니다. 아이들 데리고 소나무 숲 길 걷는데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합니다. 숲의 역사와 향기는 사라지고 인간의 탐욕만 난무합니다. 광고판 문구도, 후보자들 공약도 '은은한 솔향기 속에서 책과 함께'로 바꿀 수는 없는지…. 지금의 어른들 모습, 아이들이 보고 따라 배웁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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