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완성되는 가족의 사랑
장애인 동생, 천재적 피아노 연주
베토벤 월광 3악장 '속도'로 표현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 등
장면마다 명곡…클래식 친숙해져
출연배우 직접 연주 '자연스러워'

어머니(윤여정)에게 버려져 홀로 남은 조하(이병헌)는 한때 WBC 웰터급 챔피언이었으나 현재는 만화방을 전전하며 전단 배포와 스파링 파트너로 근근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어머니를 만나게 되고 어머니는 갈 곳 없는 그를 집으로 데려온다. 그곳에는 서번트증후군을 앓는 동생 진태(박정민)가 있고 어머니는 어쩐지 슬퍼 보인다. 그녀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던 거다. 장애를 앓는 진태가 걱정스러워 하나밖에 없는 형이 그를 보호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 가운데 갈등이 생기고 또 봉합되고를 반복하다 결국은 가족이 완성된다.

영화는 이러한 과정을 음악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따뜻하게 보여준다.

동생에게 일을 맡기고 잠시 한눈을 판 사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동생. 애타게 찾아 헤매던 중 길에 놓인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동생을 발견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듣게 되는 동생의 피아노 연주. 그가 만들어 내는 음악은 길을 지나던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았고 형은 동생의 재능을 처음으로 목격한다.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오케스트라와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을 협연하는 진태(배우 박정민). /스틸컷

누군가는 영화 <레인맨>이 생각나고, 어떤 이는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가 떠오른다고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 장면을 보는 순간 영화 <샤인>(감독 스콧 힉스, 1996)이 생각났다. 아마도 두 영화 모두 주인공의 천재성을 드러내는 인상적인 선곡 때문일 것이다.

<샤인>의 주인공(데이비드 헬프갓)은 러시아 작곡가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으로, 이 영화의 주인공 진태는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14번 '월광' 3악장을 통해서 말이다. 서커스처럼 전개되는 주인공들의 현란한 손놀림으로 장면은 그들의 천재성을 효과적으로 관객들에게 각인시킨다.

베토벤의 '월광'은 그 1악장의 서정성 덕분에 무척이나 친숙하다. 드뷔시의 '달빛'과 더불어 달의 서정을 가장 절묘하게 표현한 악장으로 유명하다. 이 1악장은 영화 <불멸의 연인(Immortal Beloved)>에서도 인상적으로 사용된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베토벤이 피아노의 음색을 확인하고자 귀를 피아노에 밀착시키고는 조용히 건반을 누르는 순간 흘러나오던 곳이 바로 이 곡이다.

피아노 앞에 다시 앉은 한가율(배우 한지민)은 멋진 '젓가락행진곡'과 그 '변주들'을 들려준다. /스틸컷

1악장의 환상적인 선율과 달리 영화에 사용된 3악장은 무서운 속도의 질주를 보여준다. '월광'이라는 부제를 의심케 한다. 아니나 다를까. '월광'은 베토벤 자신에 의하여 붙여지지 않았으며 어느 한 평론가가 1악장을 두고 "루체른 호수에 어린 달빛의 일렁임 같다"라는 논평을 함으로써 그러한 부제를 얻게 되었으니 단지 1악장만을 묘사했음을 알 수 있다.

피아니스트에게 베토벤의 32개의 피아노소나타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으로 여겨진다. 백건우처럼 오랫동안의 성찰과 연구를 통해 음반을 발매하는 경우도 있다. 임현정은 아예 데뷔 앨범으로 녹음했다.

빌헴름 켐프는 여러 번의 녹음을 통해 친숙한 피아니스트로 남아 있으며, 학구적인 연주로 유명한 알프레드 브렌델도 훌륭한 연주를 남겼지만 이러한 연주들 가운데서도 돋보이는 것은 단연 러시아의 '강철 타건' 에밀 길렐스(Emil Gilels)의 연주라 할 수 있다. 1악장의 서정성도 훌륭하지만 '강철 타건'이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부술 듯 내달리는 그의 월광 3악장은 압도적이다. 이 연주를 들으며 미완의 전집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지 않기란 어렵다.

음반 재킷도 너무나 아름답다. 길렐스의 연주가 '루체른 호수에 비친 아름다운 달빛의 일렁임'의 음악적 완성이라면 이 표지는 시각적 완성으로 보인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포스터.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주인공 진태와 오케스트라의 협연이 이뤄진다.

너무나도 익숙한 선율, 바로 차이콥스키의 피아노협주곡 1번. 그 도입부는 유명하여 누구나 한 번쯤은 접해 봤을 법한, 피아니스트에게도 반드시 거쳐 가야 할 명곡이다.

사실 차이콥스키는 3곡의 피아노협주곡을 남겼으나 나머지 두 곡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1번만큼은 클래식에서 기본 레퍼토리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작곡 당시 러시아 피아노계의 대부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에게 혹평을 받기도 했으나 미국 보스턴에서의 초연 시 큰 성공을 거뒀다.

영화에서는 곡의 인상적인 부분만을 편집해 보여줌으로써 긴 시간을 견디기 어려운 청중에게 좀 더 쉽게 이 곡에 다가갈 기회를 제공한다. 이 영화를 계기로 이 곡에 대한 팬이 더 많아졌을 거라 여겨진다.

엄마는 보호해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늘 스마트폰에 매달려 있는 아들 진태가 걱정스럽다. /스틸컷

또한 한 가지 칭찬하고 싶은 것은 CG나 대역이 아닌, 배우가 직접 연주를 함으로써 장면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출되었다는 것이다. 그간 국내 영화에서 콘서트장면 촬영 시 연기자의 움직임과 소리가 어긋나 어색했던 장면들이 많이 연출되었다. 이 영화에서는 진태 역을 맡은 박정민 배우가 피나는 노력 끝에 직접 연주를 완성했다고 한다.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Sviatoslav richter)는 앞서 언급한 피아니스트 에밀 길렐스와 함께 러시아 피아노계의 쌍두마차로서 시대를 이끌었다. 그는 카라얀과의 협연으로 이 곡의 멋진 연주를 남긴 바 있다. 이후 카라얀은 리히터의 제자인 라자르 베르만 (Lazar Berman)과도 녹음을 남겼다. 자신의 수족과 같던 베를린필이 뿜어내는 웅장한 도입부는 최고의 음악적 순간을 선사하여 추천할 만하다.

이 외에도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다양하고 아름다운 피아노 명곡들을 접할 수 있다.

자동차 사고 장면에서 아련히 들려오던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의 2악장을 들을 수 있으며, 자동차 사고로 한 다리를 잃고 은둔한 비련의 피아니스트 한가율(한지민)을 방문했을 때 그녀와 진태가 함께 연주했던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이 또한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이 장면 또한 박정민, 한지민 두 배우가 오랜 연습 끝에 실연으로 만들어진 장면이라고 한다. 콩쿠르에 참가한 진태가 연주하던 쇼팽의 '즉흥환상곡' 또한 친숙한 곡으로 우리 귀를 즐겁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태를 통해 피아노 연주에 대한 열정을 다시 찾은 한가율이 멋지게 연주하는 '젓가락 행진곡'. 피아노 앞에 다시 앉은 그녀가 처음으로 연주하는 곡으로서 선곡에서 참신함을 엿볼 수 있었다.

영화를 위해 음악감독인 황상준 씨는 이 곡을 다양한 음악적 형식으로 멋지게 편곡했다. 인상적인 피아노 연주와 편곡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장면이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다시 사라져 버린 동생, 그다지 바쁘지 않은 발걸음으로 동생을 찾아 나선 형은 다시 거리의 피아노 앞에 앉은 동생을 어렵지 않게 찾아낸다. 이때 동생은 세상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연주를 시작한다. 어머니와 함께 즐겨 듣던 그 노래….

'그것만이 내 세상'. /시민기자 심광도

※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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