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가 페이스북에 링크해준 <한겨레> 기사를 읽다가 황당한 대목을 발견했습니다. 역사를 엉터리로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역사 속 오늘'이라는 코너에서 '거창 민간인학살' 사건을 다룬 기사였는데요. 바로 이 대목이 문제였습니다.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거창군 신원면에 이어 거창군 금서면, 함양군 유림면 등 일대 8개 마을로 퍼져갔다."

명백히 틀린 사실입니다. 이 사건은 국군 11사단이 1951년 2월 7일 산청군 금서면에서 395명을 학살하면서 시작됩니다. 이 군인들은 이어 함양군 유림면으로 넘어가 310명을 학살합니다. 이렇게 산청과 함양에서 705명을 죽이고 난 후, 이틀 뒤인 2월 9일부터 11일까지 거창군 신원면에서 719명을 죽인 것입니다. 따라서 3개 군의 학살을 모두 합쳐 '산청·함양·거창사건'이라 불러야 하는 사건입니다다. 애당초 하나의 같은 사건인 것입니다.

그런데 기자는 '산청군 금서면'을 '거창군 금서면'으로 잘못 표기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학살이 일어난 시점도 산청과 함양 학살이 거창 학살 이후에 일어난 것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명백한 오보입니다.

산청·함양·거창사건은 이미 충분한 진상규명이 이뤄져 특별법까지 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67년이 지난 오늘, 왜 이런 오보가 나온 걸까요?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기 때문입니다. 1951년 사건 발생 직후 거창 출신 국회의원 신중목이 이를 국회에서 폭로하면서 산청과 함양의 학살은 빼버리고 거창만 문제 삼았기 때문입니다. 신중목 의원이 산청과 함양에서 일어난 일을 몰라서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자기 지역만 챙긴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언론도 거창사건만 보도했고, 수십 년이 지나도록 산청과 함양의 학살은 묻혀 있었습니다.

심지어 1996년 특별법이 제정될 당시에도 국회에서 거창사건만 대상에 포함시키려다 산청과 함양의 유족들이 반발하자 '거창사건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라는 명칭에 '등'이란 글자 하나를 추가해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으로 고치는 해프닝마저 있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역사가 바로잡히긴 했지만, 아직도 많은 기자들은 과거 거창만 별개의 사건으로 다뤘던 수많은 오보를 텍스트로 삼아 그 오보를 반복 재생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잘못 끼운 오보의 첫 단추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실감합니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습니다. 오보도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보를 인지했을 때 '정정보도'를 통해 바로잡는 게 얼마자 중요한지도 새삼 깨닫습니다.

제가 <한겨레>의 오보를 지적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한 친구가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부에서 쓰는 부교재 <영화로 생각하기>에도 거창사건에 대한 엉터리 서술이 있다는 댓글을 올렸더군요. 그래서 찾아보니 정말 엉터리 서술투성이였습니다. 사람 이름이 틀린 것은 물론이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꾸는 등 명색이 국립대학의 부교재가 이래도 되나 싶더군요. 거창만 별개 사건으로 다루고 있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또한 잘못된 텍스트를 그대로 베꼈거나 주워들은 이야기를 확인 없이 썼기 때문이겠지요.

565429_431785_0728.jpg

그로부터 보름 정도 지나 다시 <한겨레> 기사를 찾아봤습니다. '거창군 금서면'을 '산청군 금서면'으로 고쳤을 뿐, 잘못된 서술은 그대로였습니다. 기자의 자존심 때문일까요? 기자에게 자존심보다 중요한 자질은 잘못을 인정하고 고칠 수 있는 용기입니다.

저희도 잘못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언제든 따끔히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곧바로 인정하고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