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자비이념 실천 위해 건립한 노인요양원

국제연합(UN)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이미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인구의 7% 이상을 차지하는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거기다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자연스럽게 '노인문제(빈곤·질병·고독 등)'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노인을 위한 복지시설 확보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때 김해시 주촌면에 한 노인요양원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바로 보현행원 노인요양원(이하 보현행원)이다. 최분이(49) 원장은 남편과 불교를 공부하다 자비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이곳을 건립했다. 최 원장을 만나기 위해 보현행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불교신자에서 노인요양원 원장으로

한참을 달려 보현행원에 도착했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요양보호사들이 행사 준비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양쪽으로 길게 뻗어져 있는 복도와 각종 편의시설이 눈에 띄었다. 잠시 후 행사를 마치고 돌아온 최 원장과 사무실로 들어가 인터뷰를 시작했다. 어떤 계기로 노인요양원을 하게 됐는지 물어봤다.

"저는 자라온 환경이 좋지 않아요. 어릴 때부터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학창시절 대부분을 친척 손에서 컸죠. 23살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어요. 힘들었던 저를 남편이 위해주고 보호해 줬었죠. 결혼을 하고 불교에 대해 공부를 했어요. 그러다 우리가 배운 것을 실천으로 옮기자고 마음을 먹었죠. 당시 남편은 부모님을 여의고 유산을 많이 받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노인요양원을 건립해 운영해보자고 마음을 모았어요. 당시 시누이가 3명 있었는데 뜻을 밝히니 흔쾌히 허락해 줬습니다. 또 남편의 친척들도 좋은 뜻이라며 돈을 보태줬습니다. 남편의 유산과 친척들의 도움으로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규모로 노인요양원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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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분이 보현행원 노인요양원 원장. / 박성훈 기자

보현행원. 처음 들었을 땐 무슨 뜻인지 유추가 어려웠다. 검색 결과 불교용어 중 한 개였다.

"불교신자로서 이름을 생각하다 '보현보살'이 떠올랐습니다. 보현보살은 부처님의 행원(몸으로 하는 수행과 마음으로 바라는 소원)을 대변하는 보살이에요. 간단히 말해 아프고 힘든 사람을 보호하고 지켜주겠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저희가 추구하는 방향과 딱 맞아떨어졌죠. 더 고민할 것도 없이 이 이름으로 결정하게 됐습니다."

보현행원은 1997년 5월 26일 문을 열었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대지면적만 2250평이다. 개소 당시 최 원장의 나이는 25살이었다.

"보현행원은 사회복지법인입니다. 법인을 설립하면 모든 법인의 재산은 국가에 귀속되는데요. 보통은 땅을 기부합니다. 그리고 정부로부터 건축비를 지원받아 건물을 짓게 되죠. 저와 남편은 땅, 건축비, 집기류 등 모든 것들을 자비로 시작했습니다. 매매·건물 판매 등을 할 수 있는 소유권은 없습니다. 대신 운영권이 있습니다. 즉 대표이사를 구성해 법인을 운영할 수 있는 관리 권한이 주어지죠. 예전에는 기초생활수급자만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2008년부터 장기요양보험제도가 되면서 일반인도 들어올 수 있게 됐죠. 제도에 따라 건강보험공단에서 지원금을 받습니다. 또 정부로부터 식대와 운영비를 지원받죠. 이 수익으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국을 수소문한 끝에 찾은 땅

최 원장은 좋은 땅을 구하기 위해 1년을 투자했다. 최소 2000평을 넘는 땅을 원했기에 전국을 수소문해야 했다. 그러다 김해에 알맞은 곳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원래 거주하던 곳은 창원이었습니다. 93년도였죠. 당시 창원에는 그만한 규모의 요양원을 지을 수 있는 땅이 없었습니다. 부동산을 찾아가 '최소 2000평이 넘는 땅이 나오면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땅을 잘 보는 스님을 모시고 경남은 물론 전국을 돌아다녔죠. 1년 정도 지났나? 부동산에서 좋은 땅이 났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검토 끝에 이 땅을 계약했습니다."

보현행원에는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물리치료사, 영양사, 간호사 등이 근무하고 있다. 이는 다른 노인요양원도 마찬가지다. 최 원장은 다른 곳과 차별화되는 두 가지 장점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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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현행원 노인요양원 내부. / 박성훈 기자

"노인요양원은 전국에 정말 많습니다. 저희보다 시설·근무환경이 좋은 곳도 있겠죠. 그러나 지금 말하는 두 가지는 어느 곳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거라 자신합니다. 우선 첫 번째는 어르신들의 건강을 위해서 계란, 두부, 닭고기 등 대부분의 식재료를 '유기농제품'으로 조리합니다. 된장, 고추장, 간장, 매실도 가능하면 직접 담그고요. 또 식품첨가물을 뺀 음식을 씁니다. 간식으로 과자를 좋아하시는데요. 가능하면 안 드립니다. 아시다시피 과자에는 식품첨가물이 많거든요. 그래서 과일주스나 쿠키를 직접 만들어서 드리고 있습니다."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두 번째로 '공감대화'라는 걸 하고 있습니다. 이 대화법을 쓰는 곳은 전국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공감대화는 감정코칭과 비폭력대화를 적절히 섞어서 쓰는 것입니다. 감정코칭은 주로 육아를 하는 엄마들이 쓰는 대화법입니다. 비폭력대화도 국내에 들어온 지 10여 년 밖에 안 됐죠. 저는 이 공감대화가 어르신들께 너무 필요하다 싶어서 10년 전부터 공부를 했습니다. 직원들에게도 매주 교육을 하고 있고요. 대화라는 게 눈을 떠서 눈 감을 때까지 이어지잖아요. 하루아침에 화법을 바꾼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꾸준히 진행한 결과 직원들과 어르신들 사이에 좋은 공감대가 이뤄지더라고요. 이 두 가지는 계속해서 고집해나갈 생각입니다."

"지금 만났더라면…"

현재 보현행원에는 치매, 중풍, 뇌졸중 환자는 물론 노화가 심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도 있다. 이들을 24시간 보호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터다. 언제가 가장 힘든지 물어봤다. 최 원장은 노인들을 돌보는 것보다 운영적인 면이 더 힘들다고 했다.

"모든 순간이 힘들죠. 그중에서도 노인요양원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금전·시설적인 문제가 가장 힘듭니다. 어르신 한 명에게 측정돼 있는 지원금이 너무 낮아요. 결국 직원 급여도 최저임금에 맞춰서 조금 더 줄 수밖에 없습니다. 지원금의 86% 이상이 인건비로 나가고 있어요. 또 20년이 지나니까 세탁기, 건조기 등 교체해야 할 것들이 쌓였습니다. 대부분의 지원금이 인건비로 나가는데 시설물을 교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나름대로 노력을 하는데도 교체비용을 마련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아요. 원장으로서 어르신들이나 직원들에게 죄송한 마음 뿐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가끔 어르신들이 부상을 입는 경우가 생깁니다. 일부 보호자들은 저희를 믿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보상금을 요구해요. 최선을 다했는데 모든 책임을 저희한테 돌리는 거죠. 그 상실감은 진짜 슬퍼요. 존재감조차 없어지는 것 같죠."

그럼에도 최 원장은 어르신들이 건네는 말 한마디에 제아무리 힘든 것도 떨쳐 낸다고 한다.

"여기저기 치이다보면 풀이 죽어 있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어르신들이 옆에 와서 어깨를 두드리면서 응원의 말씀을 해주세요. 그 말에 다시 움직일 힘을 얻는 것 같아요. 오히려 더 보호를 받는 느낌이랄까요?"

최 원장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어르신이 있는지 물어봤다. 오랜 시간 생각을 하다 입을 땐 최 원장은 사연을 이야기하다 눈물을 쏟기도 했다.

"기억에 나는 할머니 한 분이 있습니다. 할머니는 친정조카에게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주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셨어요. 그리고 무료로 요양원으로 들어오셨죠. 그런데 조카가 할머니에게 요양원에 돈을 많이 냈다는 거짓말을 했더라고요. 이 말만 믿고 많은 것을 요구하셨어요. 몇 달 뒤 그게 아닌걸 알고는 조카에 대한 배신감에 말문을 닫고 누우셨죠. 너무 큰 상심으로 식사와 대화 등 모든 것을 거부한 채 병원에 2년 정도 입원해 계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초창기여서 저도 모든 게 낯설 때였죠. 할머니를 지금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요. 조카와 좋은 사이를 유지하도록 도움을 드릴 수도 있고 잘 지내실 수 있도록 보호해 드릴 수도 있는데. 당시 할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파요."

향기로

보현행원이 자랑하는 곳이 있다. 바로 '향기로'라는 공원이다. 이곳은 치매노인을 위한 전용공원이다. 건물 내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에게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을 제공한다.

"보통 노인요양원 같은 경우는 건물 안에서 안전 관리를 하게 되요. 외부생활을 한다는 건 힘들죠.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몸이 불편하더라도 가만히 있어서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없어요. 치매환자들은 뇌에 더 다양한 자극을 줘야합니다. 결국 건물 내부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걸로 대체하는 것인데 인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주는 자극과 자연이 주는 자극은 전혀 다르다는 거죠. 고민 끝에 공원을 조성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구름다리를 만들어서 2층과 공원을 연결했죠. 그 결과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도 휠체어를 타고 공원으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또 보호장치 덕분에 직원 한 명이 10여 명을 데리고 나갈 수도 있죠. 어르신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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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기로. / 박성훈 기자

안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주제는 자연스럽게 지난 1월 발생했던 밀양 세종병원 참사로 이어졌다. 최 원장에게 보현행원은 어떤 소방훈련을 하고 있는지 물어봤다.

"불편하게 들리실 수도 있지만 극단적으로 말하면 노인요양원 같은 경우는 대피가 불가능합니다. 거동이 불편하고 침대에 계시는 분들이 많아서 예방에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하고 불이 나면 무조건 진화를 해야 해요. 그래서 소방훈련 매뉴얼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만약 불이 났다고 가정하면 보통은 '불이야'라고 하죠. 저희는 '세탁실 불이야', '101호 불이야'처럼 불이야 앞에 최초 발화 지점을 말하도록 합니다. 그러면 화재 장소 가까이에 있는 직원들이 소화기를 들고 달려가죠. 그 시간에 다른 선생님들은 대피를 준비하는 거죠. 우선 불을 진화한 후 다음 행동을 판단합니다. 그리고 저희 같은 경우는 야간에 한 시간 마다 순찰을 돌아요. 화재에 대응한 시설설비도 구축하고 있고 주기적으로 소방훈련도 하고 있기 때문에 최초 발견만 빨리 한다면 사상자는 나오지 않을 거라고 자신합니다."

보현행원이 나아갈 길

보현행원이 건립된 지도 20년이 지났다. 20대였던 최 원장은 어느덧 50대를 바라보고 있다. 쉼 없이 달려온 최 원장의 목표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처음 노인요양원을 하고자 마음먹었을 때부터 똑같아요. 제가 품은 어르신들은 마지막까지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어요. 삶이라는 게 여러 굴곡이 있잖아요. 저는 인생의 마지막이 어떤가에 따라서 잘 살았나 못 살았나가 결정 난다고 생각합니다. 젊었을 때 아무리 힘들었어도 노년이 행복하다면 '인생 한 번 살아 볼만 했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현재가 아프고 괴롭다면 '내가 살아서 뭐했을까'로 귀결이 된다는 거죠. 저희가 조금 더 노력하면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빛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최근 개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과거와는 달리 살아온 삶의 질 자체가 틀리기 때문에 구호적인 부분으로 접근하면 안 돼요. 취향을 고려하고 거기에 맞춰야 하죠. 노인 인구는 계속해서 증가할 거예요. 정부도 그에 발맞춰 노인복지정책에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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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분이 보현행원 노인요양원 원장. / 박성훈 기자

인터뷰는 끝이 났다. 오후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최 원장은 바삐 움직였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최 원장은 대한민국 노인복지정책의 현 주소에 대해 충고하며 자리를 떴다.

"우리나라는 노인요양시설에 대한 제도가 복잡하게 돼 있습니다. 한 마디로 제재도 많고 규정도 많고 지원은 적습니다. 자연스럽게 요양보호사의 급여도 작을 수밖에 없죠. 요양보호사 중에는 고령이 많아요. 재교육이나 젊은 인원을 충원하려면 급여를 높여야 합니다. 이에 대한 규정이나 지침이 없어요. 시설마다 급여의 편차가 존재합니다. 서비스의 평준화를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려워요. 전국적으로 동일한 임금이 된다면 모든 시설마다 일정 수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서로 벤치마킹도 하고 임금에 구애받지 않고 근무지를 옮길 수도 있고. 정부에서 이런 부분을 보충해 준다면 대한민국의 노인복지가 한 층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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