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 축구부 부활에 다걸었다"

한국 축구의 레전드 중에는 경남 출신이 유독 많다. 그중에는 이제 축구계를 떠난 이도 있지만, 고향 축구 발전을 위해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찾아서 할 일을 해나가는 이도 있다.

마산공고 유병옥 감독도 한때는 잘나가는 경남 출신 축구인이었다.

함안 칠서가 고향인 그는 초등학교 때 마산에 있는 지인 소개로 합포초등학교로 전학해서 축구를 시작했다. 국가대표 수비수까지 지낸 그지만, 그에게도 인생 굴곡점은 많았다고 했다.

중앙중학교로 진학하기 전, 축구를 계속해야 하나 공부를 해야 하느냐는 고민에 휩싸였지만 그는 축구를 선택했다.

다시 마산공고를 진학하기 전. 이번에는 키가 작다는 이유로 내년에 입학하라는 말에 다시 좌절할 수도 있었다고. 하지만 1년 지나는 사이 키가 훌쩍 크면서 175cm가 됐고 겨우 진학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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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병옥 마산공고 축구부 감독. / 정성인 기자

"사실 요즘처럼 4백 시스템에서는 중앙수비수 키가 중요합니다. 문전 공중볼 다툼에서 밀리면 안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당시는 3-5-2라든지 해서 스위퍼를 두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굳이 키가 많이 크지 않아도 될 때였는데 키 때문에 진학을 못 하니 자칫 좌절할 뻔했죠."

그런 그에게 최고 황금기는 대학 때였다.

한양대 1학년이던 1983년. 그는 U-20 국가대표로 선발됐고, 그해 멕시코에서 열린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 수비수로 출전했다. 현재 경남FC 김종부 감독이 공격수로 함께 했던 경기였다. 이 대회에서 한국 축구 사상 최초로 세계 대회 4강 진입이라는 쾌거를 일궈냈다. U-20 대표로 모두 6경기에 출전했다.

다시 3년 후. 역시 멕시코에서 열린 월드컵 대표팀에도 그는 수비수로 승선했다. 하지만 예선에서 맹활약했다고 생각한 그였지만 본선 무대에서는 기회가 오지 않았다. 벤치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 대학 4학년으로 팀 내 막내였던 그는 어디 하소연 할 데도 없이 그렇게 월드컵 대회를 마쳤다.

"월드컵 대표팀은 차범근 선배님이 제일 고참이었습니다. 당시 독일 분데스리가 뛰다가 바로 합류했지요. 11년 정도 차이 나니 뭐 말도 크게 못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해 서울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다시 선발됐고 팀이 금메달을 따는데 한 축을 담당했다는 자부심을 챙길 수 있었다.

국가대표로는 모두 28경기에 뛰었다.

1987년 포항제철아톰즈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고 1992년 LG치타스로 이적해 95년 은퇴할 때까지 프로 통산 183경기에 출전해 4도움을 기록했다.

프로 은퇴 후 곧바로 모교인 마산공고 코치로 와서 1년 지도 경험을 쌓은 뒤 토월중학교 감독으로 옮겼고 본격적으로 학원 축구 지도자로 걸어왔다. 그동안 마산공고, 진해덕산초 감독을 거쳐 지난해에는 경남FC 코치로도 있었다. 그리고 올해 모교 축구 부활을 위해 마산공고 감독으로 복귀했다.

"학부모 선수들 욕심에 답답"

지난 15일 마산공고 운동장에서 만난 그는 답답함을 토로했다. 단순히 현재 선수 구성이 썩 빼어나지 않다는 답답함이 아니었다. 학부모나 선수의 인식, 학원 축구 시스템에 대한 것까지 포괄하는 것이었다.

"사실 지금 선수 구성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어쩌겠어요. 있는 선수들로 최선을 다해봐야지요. 내년 신입생 선발 제대로 해서 4년 안에 잘나가던 마산공고 축구부를 부활시키려 합니다."

마산공고 축구부는 경남 학원 축구에서도 전설이다. 현재 기록상으로는 1973년 3월 창단한 것으로 돼 있는데 실제 이때 창단한 게 아니라 있다가 없어진 팀을 재창단한 것이었다. 유 감독은 "내가 입학했을 때 나보다 6~7년 선배들이 재창단 주축이라고 하더라"며 팀 최고 전성기는 90년대 말~2000년대 초일 것으로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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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유병옥 감독. / 정성인 기자

1996년 그가 프로에서 은퇴 후 곧바로 마산공고 코치로 왔다. 당시 지휘봉은 이흥실 현 아산그리너스FC 감독이 맡고 있었다. 그해 마산공고는 진주에서 열린 문화관광부장관기 우승을 일궈냈다. 이듬해 그는 팀을 떠났지만 이흥실 감독이 재임하는 동안 마산공고는 해마다 전국대회 우승 하나씩은 챙겼으며 2관왕을 차지하기도 하는 등 명실상부한 축구 명문으로 우뚝 섰다.

그런 마산공고 축구가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무너져 내렸고 지금은 자타가 '최악'이라고 말할 만큼 약체로 무너졌다.

내년 신입생부터 재창단한다는 각오로 팀 부활에 매진하겠다는 의지지만,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는 게 고민이다.

"프로 산하 유스팀이 이제는 22개나 됩니다. 자신의 실력은 돌아보지 않고 막연히 프로 유스로 가면 대학도 잘 가고 좋을 것이라 생각하곤 무조건 프로 유스만 가려고 합니다. 아직 어리니 한번 도전해보겠다는 의지 자체를 나무라기만 할 수야 없겠죠. 하지만 어중간하게 프로 유스 갔다가 출전 기회도 보장 못 받고 하는 것보다는 일반 고등학교 팀으로 진학해 많은 경기에 뛰는 게 선수 기량 향상에도 훨씬 도움이 되는데도 선수나 부모 모두 프로 유스만 원하니 답답한 게 많습니다."

그는 '공부하는 운동선수'라는 대의에는 동의하면서도 어려움도 토로했다.

"옛날 우리가 클 때는 새벽 6시에 일어나 한 시간 반 운동하고 수업 들어갔으니 그게 공부가 되겠습니까. 그냥 엎드려 자는 거죠. 저녁 운동 마치고 숙소에 들어가면 공부하라고 하지만 몸이 안 따라주는데 불가능한 일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그는 선수들에게 두 가지 당부를 한다고 했다. 수업시간에 들어가면 공부를 못 따라갈 것 같으면 축구 관련 책이나 재미난 소설책이라도 들고 들어가 읽으라는 것. 다른 하나는 공고이니만큼 실습은 빠지지 말고 들어가 자격증 하나라도 취득하라는 것이라고.

"사실 축구 선수로 크게 성공해 축구로 먹고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프로 선수가 된다고 해도 잘해야 5년 전후로 해서 억대 연봉 반열에 듭니다. 이후 해마다 2억 3억 연봉이 오르고 그렇게 10년 정도는 뛰어야 평생 먹고살 거리를 장만하게 될 겁니다. 프로로 가더라도 부상으로 좌절하거나 주전 경쟁에서 밀리거나 하면 학원 팀 지도자가 되거나 축구클럽 창단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것도 몇 자리 안 돼요. 그런 애들에게 전문 기술 자격은 정말 소중한 보물이죠."

그런데도 선수들이 수업이나 실습 빠질 궁리만 하는 듯해 안타깝지만 딱히 어찌해 볼 방법도 없다고도 했다.

"뭐 체벌이 좋다는 건 아니지만, 체벌은커녕 좀 심하게 나무라기만 해도 당장 반발이 들어온다"며 "축구는 단체경기이므로 팀워크가 중요한데 선배가 후배에게 함부로 말도 못하고, 시켜도 후배가 듣지 않으니 배려하고 협력하는 문화가 형성되기 어렵다"는 게 이유다.

"사실 우리 선수들은 복 받은 거고 큰 혜택을 보고 있습니다. 사립학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한데 학교 예산으로 연간 5000만 원을 지원받아요. 그리고 총동문회에서도 정말 열성적으로 후원해줍니다. 수도권 고교팀은 국공립일 경우 1000만 원 지원받기도 어렵기에 시즌 시작 전에 유니폼 만들고 대회 출전경비, 동계훈련비 등으로 200~250만 원 정도를 받는 경우도 많지만, 우리는 학교 예산으로 유니폼 만들어주고 대회 출전 경비도 지원해줍니다. 그런 혜택 받는다는 데 대한 자부심이나 고마움 같은 걸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스포츠클럽 전환, 문제점도 함께 고민해야"

경남이 학교 스포츠를 모두 스포츠클럽으로 전환하려는 데 대해서도 생각이 많았다.

경남도교육청은 오는 2021년까지 모든 학교의 교기를 폐지하고 스포츠 클럽으로 전환하고자 시범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미 초등학교는 상당수 전환이 이뤄지고 있기도 하다.

스포츠 클럽으로 전환하면 이제 그 팀은 학교 소속이 아니게 돼 교육청이나 학교 부담이 현저히 줄어든다. 반면 클럽 부담은 가중되는 구조다.

장점도 많다. 현재의 교기 시스템으로는 팀에 속하려면 반드시 그 학교로 전학해야 하지만 클럽일 경우 굳이 전학할 필요가 없다. 좋아하는 학교나 편리한 학교에 다니면서도 얼마든지 운동을 할 수 있다.

"스포츠 클럽으로 운영하면 가장 좋은 것이 공부와 운동을 병행할 수 있다는 겁니다. 서로 다른 운동 종목 클럽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탐색할 수도 있고요. 초등학교 중학교는 그런 장점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고등학교부터는 사실 그래서는 곤란한 부분이 많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곧바로 프로선수로 뛸 수도 있는데 클럽으로 느슨하게 운동해서는 자칫 꿩도 놓치고 매도 놓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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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공고 축구부 선수들. / 정성인 기자

초·중학교 때는 스포츠 클럽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시간을 보내고 고등학교부터는 선택에 따른 집중이 필요한데도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는 그에게 '고등학교 때 운동에 전념하다가 만약 그 운동으로 진학이나 프로 진입을 못 하면 그의 인생은 어쩌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물으면 사실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운동만 그럴까요? 그리고 대학이야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공부하고는 관계없이 얼마든지 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선택했는데도 그에 집중하지 않고 자꾸 곁눈질한다면 뭔들 잘할 수 있겠습니까. 이미 운동이 아니더라도 고교 진학과 동시에 많은 것들이 결정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결정된 것이 절대적이지도 않고요."

사실 스포츠 클럽으로 전환은 오래전 일본이 해온 일이다. 교기를 없애고 스포츠클럽을 통해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은 이상적이다. 건강한 신체가 없다면 꿈꾸는 대부분을 좇아갈 동력을 찾기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한때 경남에서도 유행했던 말 '체육 영재'라는 말은 더는 하기 어렵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훨씬 인구도 많고 인프라도 잘 구축된 일본을 국제대회에서 능가할 수 있었던 것도 시스템 차이에 있다는 시각도 있다. 우리가 이른바 '엘리트 체육'이라고 해서 선택과 집중으로 될만한 선수들을 집중해서 육성할 때 일본은 '생활 체육'이라며 클럽활동을 장려하는 동안 국민의 전체적인 건강이나 스포츠 선호도는 좋아졌지만 '성적'에 목말랐던 것.

"듣기로는 일본도 다시 학원 스포츠로 전환한다고 하더군요. 어떤 게 더 좋고 어떤 게 덜 좋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어떤 길을 가든 그에 따른 불리한 점도 반드시 고려돼야 할 겁니다."

그러면서 스포츠클럽이든 교기육성이든, 문제는 지역에 있는 우수 인재를 다른 지역에 뺏기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도 했다.

"지역 선수들이 안 빠져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경남에는 경남FC라는 프로구단도 있고 창원시청과 김해시청 내셔널리그팀도 있습니다. 지역에서 성장한 선수들이 경남에 남아 경남을 빛낼 수 있는 시대가 돼야 합니다. 경남이 먼저 스포츠클럽으로 전환하고 있는데 이게 전국에서 시행된다면 장단점이 다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전국의 다른 좋은 학교로 전학만 시키면 합숙소에서 학교에 다닐 수 있는데 이제는 가족이 이사가거나 하숙해야 해 부모 부담이 훨씬 가중될 겁니다. 대신 자신의 진로를 다양하게 탐색할 기회는 늘어나겠죠."

어이없는 실점이 한국 축구 문제

사실 국가대표로 선발됐다는 것만으로도 당대 최고 실력자라는 얘기다. 하지만 유 감독은 선수로도 지도자로도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고향 축구 발전에 힘을 쏟겠다는 의지가 있다.

마산공고 감독에서 물러난 2009년부터 진해덕산초 감독으로 부임한 2011년까지 2년간 공백기를 거쳤다. 또 덕산초 감독 이임 후 17년 경남FC코치로 부임하기까지에도 1년간 공백이 있었다. 이미 그의 가족은 자녀 교육을 위해 전부 서울로 이주한 뒤였지만, 그는 경남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는 데 전념했다.

"사람은 타고나야 한다고 하지 않나요. 그냥 큰 욕심보다는 원래부터 마산에 와서 내 모교와 지역에서 축구로 승부를 걸고 싶었습니다. 외지로 가려고 한 적도 있지만 지금까지도 혼자 여기 있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남아있습니다. 경남은 고향이라서 안 움직였죠."

마산공고 축구부를 부흥시키겠다는 그의 바람도 이런 고향 사랑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다.

인터뷰 말미에 러시아 월드컵 얘기를 꺼냈다.

"한국 축구는 시스템이나 선수 개개인 역량으로 보면 세계 축구에 내놔도 크게 뒤떨어진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골 결정력 부족과 어이없는 실점. 이걸 극복해야 하는데 걱정이 많네요."

첫 마디는 걱정이었다.

한국 대표팀의 대표적인 킬러 손흥민에 대해서도 좀 다른 얘기를 꺼냈다.

"손흥민 개인의 능력은 정말 뛰어납니다. 하지만 주변에 그를 뒷받침해줄 선수가 (한국 대표팀에) 있을까요? 상대적으로 약한 팀을 상대할 때는 손흥민 개인기로도 충분히 골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월드컵 상대는 객관적 전력이 우리보다 못한 팀은 없어요. 결국 팀워크이고 전체적인 수준인데, 글쎄요. 쉽지 않을 겁니다."

유럽 정도 되니까 손흥민과 호흡을 맞출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축구 7인'론을 얘기했다. 골키퍼, 중앙수비수 2명, 미드필더 2명, 포워드 2명은 반드시 손발이 맞아야 하고 실력이 빼어나야 한다는 거였다.

"전북현대가 무너지는 것 보세요. 중앙수비수 2명 부상당했다고 팀이 그렇게 무너질 수는 없어요. 로테이션으로 나오는 선수도 하나같이 국가대표급입니다. 하지만 팀의 중심이 되는 7명의 호흡이 맞지 않으니 제 기량을 발휘 못 하는 거죠."

고향과 모교의 축구 발전을 위해 새로운 길을 떠난 유병옥 감독. 온갖 악재만 널린 것으로 보이는 앞길에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자못 기대가 크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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