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을 문화로!'
민·관 힘 모아 한 단계 더 높은
청렴운동으로 가야 할 때

'김영란 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뜨끔하게 나타난 그 이름 덕에 명절, 점심시간, 회식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이어 2017년에는 4대강 사업,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등 지긋지긋한 부패 청산을 갈망하는 마음이 촛불과 함께 터져 나왔다. 그 바람을 안고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5개년 반부패 종합 계획'을 발표하고 적폐 청산 의지를 확고하게 드러내고 있다. 지난 2월 27일 제6회 국민권익의 날, 조정림(42) 마산YMCA 시민사업부장은 반부패·청렴 문화 확산에 기여한 공으로 국무총리표창을 받았다. 그의 수상은 열악한 여건에서도 반부패·청렴운동을 이어온 경남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의 지난 수고를 인정받는 것이기도 하다. 지역사회를 위해 늘 바쁘게 움직이는 조정림 부장은 하고 싶은 것이 아주 많다고 했다.

조 부장은 김해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대학시절부터 쭉 창원에서 살고 있다.

"경남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99년도에 졸업을 했어요. 선배들처럼 치열했던 시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학생운동했다 하기 부끄럽기는 한데…. 굉장히 열심히는 아니지만 활동을 했었죠. 학교 다닐 때 교육 쪽에 관심이 많아서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IMF 외환위기가 왔어요."

졸업 후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렇다고 아무 데서나 일하기는 싫었다.

"정부에서 인건비를 지원해주는 인턴제가 있어서 마산YMCA에서 6개월 동안 일을 하게 되었어요. 계약직으로 시작했는데 그게 23세 때였어요."

어렵게 유지해온 경남투명사회실천협약협의회

조 부장은 19년 동안 마산YMCA에서 일하고 있다. 마산YMCA는 경남투명사회실천협약협의회 사무국이다. 조 부장이 사무국장을 맡아 실무 일을 하고 있다. 투명사회실천협약은 시민단체가 연대해 만든 반부패국민연대가 2004년 처음으로 제안했다. 그 후 정부·정치권·재계·시민사회단체가 뜻을 모으며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부패 척결 결의, 구체적인 실천 내용이 담긴 협약을 만들고 투명사회실천협약협의회라는 별도 기구에서 이행하기로 한다. 지역마다 실천협의회가 따로 만들어졌다. 경남에서도 2005년 공공기관, 지방의회, 교육, 지역 경제, 시민사회 부문 대표자가 경남투명사회협약에 서명하고 실천협의회를 꾸렸다.

123.jpg
▲ 조정림 마산YMCA 시민사업부장. / 서정인 기자

하지만 투명사회실천협약협의회는 2008년 와해되고 만다. 이명박 정부의 등장 이후다. 민관이 협력해 부패를 좀 없애보자는 시도가 불편했을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분담금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버티지 못하고 활동을 접는 사무국이 늘어났지만 경남 사무국은 꿋꿋이 버텨냈다.

"실천협의회 사무국이 처음에는 시도마다 다 있었는데 결국은 거의 다 무너졌어요. 당시에 남아있었던 데가 제 기억으로는 부산, 대구, 경남… 광역권은 그랬던 것 같고요. 안산과 구리 정도. 그렇게 남아서 어쨌든 청렴과 관련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었어요. 사실 굉장히 어렵게 유지시켜 왔어요. 처음에는 창원YMCA가 일을 맡았었어요. 저희는 12년쯤부터 사무국을 맡아서 운영하고 있는 거죠."

청렴에 대해 이야기하고, 선언하고, 실천하라

 부장은 '문화'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문화는 공동체에 자연스럽게 깔린 생각이나 행동 양식이다. 조 부장은 청렴이 문화로 자리 잡는 사회를 꿈꾼다. 그래서 청렴 교육은 청렴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꾸준히 경남도내 학교를 찾아다니며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청렴교육을 하고 있다. 다른 기관과 함께 청렴캠페인도 벌인다.

"저희가 항상 활동하면서 내거는 말이, '청렴이 문화로'거든요. 문화가 된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행동하는 거예요. 줄 서는 거 같은 거죠. 할까 말까 고민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거요."

교육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직접 말하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도교육청, 경남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경남도청 공동 주관으로 200명의 사람들이 청렴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토론하게 했다.

123.jpg
▲ 마산YMCA 건물. / 서정인 기자

"청렴교육은 청렴한 누군가가 나와서 떠드는 강의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정답은 알고 있거든요. 청렴한 사람이 턱 나와서 얘기해도 감동받을 수는 있지만 실천이 되는 건 아닙니다. 결국 자기 입으로 말하는 자기 정리의 시간이 있어야 해요. 토론하는 게 이 방법이 될 수 있겠죠. 청렴에 대해 입으로 얘기하는 것, 선언하는 것, 실천하는 것… 이런 것들이 모이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작년 11월에는 경남청렴원탁토론회를 진행했었어요. 토론자 몇 명이 나와서 하는 게 아니라, 200명 정도 사람들을 모아서 자유롭게 청렴에 대해 얘기하는 토론회였어요. 이 준비를 민관이 같이 했어요. 교육·홍보·캠페인·토론회 이렇게 주로 큰 카테고리로 활동하고 있고 선거 때마다 청렴과 관련 있는 정책들 제안하기도 하고, 그런 활동들을 해왔어요. 실천협의회가 사실 강화된 조직이 아니라서 그동안 힘든 점이 있었는데 이것을 강화하고 정비하는 해가 지난 해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년을 기점으로 활동이 좀 더 풍성하고 다양해질 것 같다고 했다. 특히 김영란법 시행은 청렴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보여주는 효과가 아주 크다고 했다. 올해 활동 방향으로 조 부장은 민관네트워크를 꾸준히 강조했다.

"김영란법은 '청렴'을 사람들 입에 굉장히 오르내리게 했어요. 올해는 법제화부터 시작해서 분위기가 좋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로 국민권익위원회가 담당하고 있는데 좀 더 시책들을 펼치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 같고, 첫 번째 답을 민관네트워크로 잡은 것 같아요."

지금까지 이어온 활동과 함께 2008년 강제적으로 와해된 민관네트워크가 탄탄하게 자리 잡게 하는 데에 많은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했다.

"네트워크를 좀 더 네트워크답게 만드는 활동에 올해는 신경을 많이 써야 할 것 같아요. 현 정부가 지방자치에 대한 생각을 폭넓게 하려고 하잖아요. 그래서 지방선거 이후부터 청렴 관련 활동을 하고 조례를 만들고 네트워크를 새로 구성해야 해요. 네트워크가 행정 주도가 되어서도 시민단체의 주도가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서로 힘 받고 시너지 받을 수 있는 원칙을 세워나가는 게 올해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해요."

123.jpg
▲ 2017월 11월에 열린 경남청렴 원탁 토론회. / 조정림 제공
123.jpg
▲ 2017월 11월에 열린 경남청렴 원탁 토론회. / 조정림 제공

연고주의 철폐 의지, 공익신고자 보호법 등

달라지는 사회 분위기

금전을 대가로 공직사회나 기업에서 일어나는 부패사건은 차라리 해결책이나 제도를 보완하기 쉽다. 더 끊어내기 힘든 것은 혈연·지연·학연으로 맺어진 관계에 유별난 정을 느끼는 연고주의다. 청렴 문화보다 뿌리 깊은 연고주의 문화를 끊을 방법이 있을까.

"사실 굉장히 어려운 내용이거든요. 이게 문화이기 때문에 어려워요. 다른 말로 표현하면 관습이라고 해야 하나. 바꾸기 쉽지 않아요. 하지만 변해야만 하는 부분이죠."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병원에 아는 사람 있으면 부탁해서 수술 순번을 바꾸기도 하잖아요. 옛날에는 이게 굉장히 자연스러웠던 일인데 요즘에는 그게 청탁이라고 생각하잖아요. 병원들도 이제 조심하고 있고 그게 느껴져요. 김영란법 이후로 나타나는 현상인 것 같아요. 결국 제도와 문화가 같이 가야 해요."

내부고발로 알려진 '땅콩회항' 사건, 이후 드러나기 시작한 한진그룹 부패와 갑질 행태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처음 사건을 알린 박창진 사무장은 내부고발 이후 신원 노출로 인한 불이익, 동료들의 따돌림을 견뎌야 했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2017년 시행됐지만 아직 인식은 부족한 점이 많다. 내부고발자 명단 유출 역시 빈번하다. 조 부장은 그래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느낀다.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것 또한요.(웃음) 특히 내부고발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분위기요. 예전에는 많이 사람들이 내부고발자를 공동체를 깨부수려고 하는 사람이라는 시선으로 보았잖아요. 이제 내부고발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고 또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제도적인 부분도 곧 많이 뒷받침될 거라 생각해요. 다시 문화 얘기를 안 할 수 없는 것 같은데 너무 긴 시간 동안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했던 사회이기 때문에 갑자기 확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은 시민사회활동에서 할 수 있는 거고 행정은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걸 고민해야겠죠. 제도가 먼저 있으면 사람들 인식이 바뀌는 경우가 있고요. 또 사람들의 생각이 먼저 변해서 제도를 만들기도 하거든요. 둘 다 중요한데 사람들 생각이 변해서 제도를 만들었을 때 제도가 훨씬 힘이 있죠."

당장 급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해야만 하는 운동

해결이 급한 사회문제가 셀 수 없이 많다. 그에 비해 반부패·청렴 운동은 당장 급하지 않은 모호한 것에 대해 얘기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YMCA 운동이 어떻게 보면 밖의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시급하지 않은 활동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그렇게 해도 소용없다', '당장 비정규직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요."

조 부장은 분명 지칠 때도 있다고 했다. 뚜렷한 단기 목표가 없이 이어지는 활동은 지난하고 느린 싸움이기도 하다.

123.jpg
▲ 경남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와 경상남도교육청이 함께 벌인 청렴 UP 경남 캠페인. / 조정림 제공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느낌으로 많은 운동들을 했지만 제일 지치는 건 사람들이 안 바뀌는 게 제일 지쳐요. 싸움의 대상이 명확할 땐 싸우면 되잖아요. 문화가 연결돼있는 운동이 많기 때문에 변화가 느린 것에 지칠 때가 많아요."

조 부장은 <백 마리째 원숭이가 되자>라는 책 이야기를 꺼냈다. YMCA 활동가들이 많이 읽었다는 이 책을 읽으며 힘을 얻었다고 했다.

"원숭이들이 사는 섬이 있었어요. 고구마를 헬기에서 계속 떨어트려서 원숭이들에게 먹이를 줬어요. 원숭이들은 흙만 털어내고 고구마를 먹었었는데 한 마리 원숭이가 우연히 고구마를 바닷물에 씻어 먹게 되었어요. 근데 너무 짭짤하고 맛있는 거예요. 그 원숭이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고구마를 계속 그렇게 먹었고 다른 원숭이들은 먹던 대로 먹었죠. 그러다 한 마리씩 한 마리씩 따라서 씻어 먹기 시작하는데 그 시간이 굉장히 더뎠다고 해요. 근데 신기하게도 씻어 먹는 원숭이가 100마리가 되었을 때 모든 원숭이가 고구마를 씻어 먹기 시작했다는 내용이에요."

우리 사회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20년 가까이 YMCA에서 재미있게 일하고 있다고 했다.

"청렴 운동은 다행히 이제 제도화되는 과정이고 조금 구체화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재미있고요. 지난하게 느껴지는 운동일 수도 있지만 이 책의 논리가 힘도 되고, 또 믿고 그런 거죠."

다양한 형태로 일상의 민주주의 시도

조 부장은 YMCA를 통해 하고 싶은 일이 많다.

"관심 있는 분야가 많아서요.(웃음) 지역 안에서 소공동체를 많이 만들어내고 싶어요.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고 자기를 가꾸면서 이웃도 가꾸는 건강한 소모임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많은 에너지를 쏟아서 소모임들을 만들어내는 데 역할을 하고 싶고 또 계획도 하고 있습니다."

또 앞으로 여러 방법으로 일상의 민주주의를 넓힐 계획이다. 작년에 진행한 원탁토론과 지난 5월 마산YMCA에서 개최한 '창원시 정책 개발을 위한 시민 월드카페'도 같은 생각을 해서 추진한 행사다. 월드카페는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듯 주제에 대한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고 소통하는 참여형 토론이다.

"숙의민주주의라고 하죠. 아까 말한 원탁토론, 월드카페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아요. 일반 시민들이 모여서 정책을 만들어가는 과정들이 설레고 재밌더라고요.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할 예정이에요. 얼마 전 지방선거 월드카페를 마산YMCA에서 했거든요. 정책질의서 말고 일반 시민들이 느끼는 것을 모아서 내도 정책이 될 수 있잖아요. 시민단체 실무자 몇 명 대표자 몇 명이 정책을 정리하는 게 아니라 시민들 입에서 이야기 나오게 했듯이 앞으로도 많이 시도할 생각이에요. 그 목적은 일상의 민주주의를 확산하는 거죠."

123.jpg
▲ 조정림 마산YMCA 시민사업부장 /서정인 기자

우리나라는 국가별 부패인식지수 순위는 세계 51위(2017년 기준)로 OECD 가입 35개국 중 29위 수준이다. 조 부장은 경제 발전을 위해서도 청렴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국가투명성은 곧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정부에서는 우리나라 국가별 부패인식지수 순위를 22년까지 20위권으로 높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청렴도를 평가하는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계속 하위예요. 엄청나게 부정부패가 일어났고 그래서 정권이 바뀌는 과정도 있었고요. 이러한 평가가 결국은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건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어요. 국제적인 거래를 하는데 부패한 나라와 거래를 하겠습니까? 당연히 좀 더 공정하고 청렴한 나라와 일을 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청렴도 평가는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번 국민권익의 날에 받은 상은 조 부장에게 새로운 힘을 주었다.

"(웃음) 어떤 분이 이런 얘기를 해주셨어요. 지원도 없는 상황에서 유지시켜 온 것이 참 대견했는데 상을 받았네, 상을 계기로 그동안 했던 역할을 더 인정받고 네트워크가 잘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해주신 선배님이 계셨어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기도 한데 상이 또 생각을 더 깊게 해볼 수 있는 계기를 주더라고요. 저는 사실 유지시키고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상을 받고 나서 한 단계 올라서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유지시키는 것 말고요. 민관네트워크, 이것에 대해서 좀 더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