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봄 도다리가 가장 맛있을까
특별한 맛과 향에 취하다
푸른 바다 향 머금은 붉은 꽃

도다리 

봄이면 통영 강구안 주변 식당 음식 목록에 문구 하나가 더해진다. '도다리 쑥국 개시'라는 문구인데, 일곱 글자만으로 입맛을 돌게 하는 힘이 있다.

인파로 북적이는 통영중앙시장은 큰 줄기인 가운데 통로가 있고, 여기서 옆으로 뻗친 작은 줄기의 골목으로 이뤄졌다. 강구안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골목, 활어를 파는 상인들은 언제나 손님맞이에 한창이다.

잠시 짬을 내어 끼니를 해결하는 상인에게 도다리를 보여 달라고 청했다. 상인이 물이 잘 빠지도록 구멍이 뚫린 노란색 바구니 안에 가득 담긴 도다리를 가리켰다. 납작한 마름모꼴 모양, 옅은 갈색 바탕에 암갈색 얼룩이 잔뜩 낀 생선이다. 꼬리지느러미는 몸에서 가장 검다. 우측에 쏠린 두 눈알은 툭 튀어나왔다. 뾰족한 입은 뭔가 성에 차지 않는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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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중앙시장 한 상인이 도다리를 보여주고 있다. 마름모꼴 모양에 납작한 모습. 옅은 갈색 바탕에 암갈색 얼룩이 보인다./최환석 기자

성인 남성 손바닥 두 개 반가량 크기 도다리 한 마리를 상인이 잡아 올렸다. 앞뒤로 번갈아 돌려 보여줬다. 얼룩덜룩한 등과는 달리 배는 보얗다.

이번에는 옆 바구니를 가리켰다. 앞선 녀석보다 크기가 배로 크다. 상인은 덩치가 큰 이런 녀석은 포를 떠서 먹는다고 말했다. 어떤 녀석은 뼈째 썰어서 먹고, 처음 보여준 작은 녀석은 도다리 쑥국에 쓴다고 했다.

통영중앙시장을 빠져나와 통영에 오면 곧잘 들리는 식당으로 향했다. 역시나 이곳 식당도 '도다리 쑥국' 장사를 시작했다. 이른 저녁이라 가게 안은 조용했다.

1만 5000원짜리 도다리 쑥국이 나왔다. 국물을 한 숟갈 떠 입에 넣자 쑥 향이 먼저 치고 나온다. 머리와 뼈를 우려낸 국물은 시원해서 속을 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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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통영중앙시장 풍경. 활어를 사려는 이들과 상인들로 북적인다./최환석 기자

음식에 쓴 도다리는 알을 품은 녀석이다. 알배기는 살이 맛이 없다고 하나, 이 녀석은 그래도 적당히 씹는 맛이 있다. 쉽게 부스러지지 않으면서 입안을 채운다. 그러나 아무래도 봄에 먹는 도다리 쑥국의 주인공은 쑥인 듯하다.

대개 도다리는 봄이 가장 맛있다고 일컫는다. 산란을 하려고 봄에 지방을 쌓으니까 자연스레 그렇게 여겨진다. 웬만한 곳에서는 도다리 제철을 보통 3~4월이라고 소개한다.

잡히기는 이때가 가장 활발하다. 앞선 2월께까지 산란을 한 뒤에도 영양분을 쌓으려고 머무는 것이 남해 도다리다. 자연스레 많이 잡히는 까닭이다.

그래서 '난도다리'라고, 가을 도다리를 으뜸으로 치는 사람도 있다. 지방을 쌓기 시작하는 때가 봄이고, 알을 낳기 전 가장 영양분이 많은 때가 가을이어서다. 가을 도다리는 횟감으로 쓴다.

정리해보면, 봄 도다리라는 말은 정확한 표현은 아닌 셈이다. 산란을 마친 도다리는 살이 빠져 횟감으로 전혀 어울리지 않고, 그러니 봄에 나는 쑥과 함께 먹는 셈이다. 남해에서는 이때 많이 잡히니까, 시원한 국물을 내는 용도로 쓰는 것. 봄 도다리라는 말 대신에 '봄 도다리 쑥국'이 알맞은 표현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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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 강구안 한 식당 도다리 쑥국. 1만 5000원짜리. 머리와 뼈를 우려낸 국물은 시원하고, 쑥 향이 그윽하다./최환석 기자

도다리는 워낙 잘 알려져 생김새나 이름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도다리 종류는 대단히 많고, 사실 흔하게 보이는 도다리 또한 보통 양식산 문치가자미다. 실제 도다리는 많이 잡히지 않는다. 시장 상인들은 다른 상인 것은 양식이고 자기가 파는 도다리가 자연산이라고 홍보하지만 대부분 문치가자미를 도다리라고 부른다고 봐야 한다.

비슷하게 생긴 생선으로는 넙치(광어)가 있겠다. 회로 썰어 놓으면 구별하기 어렵지만, 살아 있을 때는 구별하기 쉬운 편이다. 보통 '좌광우도'로 구분한다. 눈이 오른쪽으로 쏠리면 도다리, 왼쪽으로 쏠리면 광어라는 뜻. 다른 말로 '왼 넙치 오른 가자미'가 있다. 도다리는 가자밋과에 속해서다.

그러나 만능 구별법은 아니다. 강도다리는 눈이 왼쪽에 몰려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중에서 쉽게 보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구별법으로 가장 좋은 것은 맛의 차이를 아는 방법인데, 많이 먹어보지 않으면 터득하기 어렵겠다. 오는 가을에는 전어보다 먼저 도다리를 먹어볼까 싶다.

달래

깨끗하게 씻은 달래를 입에 넣어 씹으면 '아삭'하는 소리가 난다. 파와 비슷한 매운맛이 나면서 특유의 향이 일품이다.

달래는 본래 재배 작물이 아니다. 야생에서 구하는 음식 재료다. 최근에는 하우스 재배를 한다. 야생달래를 구해 심거나, 봄철 시장에서 파는 씨를 구해 길러도 좋다. 관리만 잘하면 매년 봄이 즐겁겠다. 물이 잘 빠지는 곳이면 어렵지 않게 키울 수 있다.

알뿌리가 큰 달래는 꽃대를 세우는데, 꽃대에 달린 주아(식물 줄기에 생기는 눈)가 주변에 흘러 번식한다. 봄에 심긴 주아는 가을에 싹을 틔운다. 달래의 알뿌리는 여름철 휴식을 취한다. 날이 선선해지면 줄기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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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래 장아찌를 만들기 전 흐르는 물에 씻은 다음 잠시 깨끗한 물에 담가뒀다. 달래 고유 향이 전해지는 기분이다./최환석 기자

달래는 입맛을 돋우는 능력이 탁월하다. 달래의 맛과 향은 생명력이 느껴진다. 쓰임새도 여럿이다. 보통 달래를 된장찌개에 넣어 먹는다. 가장 간편하게 쓰는 방법이다.

멸치와 다시마로 국물을 내고 된장을 채에 걸러 부드럽게 푼다. 기호에 따라 나박하게 썬 무를 넣으면 국물이 시원해진다.

여기에 두부, 호박, 감자를 식성에 따라 넣고 매운맛을 더하려면 청양고추도 살짝 넣는다. 달래는 먹기 직전 넣는다. 깨끗한 물에 씻어 먹기 좋게 썰어 놓은 달래를 상에 내기 전 된장찌개에 올린다. 달래를 많이 넣을수록 그 향이 배가한다. 된장찌개에 특별함을 더하려면 달래를 넣어보자.

고추장에 버무린 달래는 반찬으로 그만이다. 부드러운 달래를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뺀다. 소금 간은 하지 않아도 된다. 고추장, 과일 청과 먹기 좋게 썬 달래를 골고루 버무린다. 먹기 전에는 참기름과 깨를 뿌려 낸다. 새콤하면서 매운 향이 입맛을 자극한다. '밥 도둑'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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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추장을 써 달래무침을 만들었다./최환석 기자

봄에만 먹기엔 아쉽다. 오랜 시간 두고 먹으려면 장아찌를 담근다. 깨끗하게 씻은 달래는 다시 물기를 충분히 뺀다. 달래의 양에 비례해 간장, 식초, 설탕을 1:1/3:1/2 비율로 준비한다. 취향에 따라 식초와 설탕의 양을 적절하게 조절해도 좋다.

준비한 간장과 식초, 설탕은 냄비에 넣어 끓인 다음 식힌다. 큰 믹싱볼에 달래를 넣고 식혀둔 간장 물을 붓는다. 달래가 간장 물에 잠기면 덮개를 씌우고 하루 재운다.

다음날 간장 물을 빼내 다시 한번 끓인다. 식힌 다음 다시 달래에 붓고 알맞은 그릇에 넣어 보관하면 오랜 시간 즐길 수 있다. 이렇게 만든 달래 장아찌는 2~3일 지나면 바로 먹을 수 있다.

달래는 한국·중국·일본이 원산지다. 그래서인지 옛 이야기에도 곧잘 등장한다. 명의 화타가 만성 소화불량으로 죽어가는 이에게 달래즙을 주어 살렸다는 이야기도 있고, 당나라 역사가 이연수가 쓴 <남서>에도 달래의 영험한 효능과 관련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한반도에서는 예로부터 저주로 얻은 병에는 달래가 해독제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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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제거한 달래로 장아찌를 만들었다./최환석 기자

달래는 동요에도 등장한다. 윤석중 작사, 박태준 작곡 동요 '맴맴'에서다.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할머니는 건넛마을 아저씨 댁에/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달래가 매운맛이 난다고 하지만 고추에 비할 바는 아니다. 원래 '달래 먹고 맴맴'은 '담배 먹고 맴맴'이었다고 한다. 교과서에 실리면서 가사가 바뀐 것. 그래도 은은하게 입안 가득 퍼지는 매운맛을 즐기려면 고추보다 달래다.

야생 달래는 다른 풀이 나기 전 자란다. 반대로 풀이 무성한 시기에는 줄기가 말라버린다. 냉이 등 다른 작물이 번성하면 달래는 찾기 어려워진다. 달래를 기를 때도 번성한 다른 풀을 걷어내는 것이 일이다.

달래에 서서히 꽃대가 오르면 여름이 온다는 뜻이다. 다음 봄을 기약하며 달래꽃을 감상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멍게

멍게는 바다의 속내를 그대로 보여준다. 굳이 가지 않더라도 바다를 느끼는 방법 하나가 멍게를 먹는 것이다. 부드러운 식감은 바다의 향과 어울려 기분을 들뜨게 한다.

멍게의 다른 이름은 '우렁쉥이'다. 멍게는 경상도 방언이다. 우렁쉥이는 뭔가 어색하지만 멍게는 친숙하다. 표준어보다 널리 쓰여 멍게와 우렁쉥이 모두 표준어가 되었다.

멍게는 1970년대 양식이 활성화하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양식이라고 자연산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줄에 엉긴 멍게는 스스로 잘 자라서다. 멍게 명운은 인간이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저 자연에 달렸다. 적정 수온을 벗어나면 성장하지 않는다. 수온 변화가 크면 쉽게 폐사한다. 깨끗한 물과 적정한 수온(5도에서 24도 사이)이 멍게의 8할이라 하겠다.

5m가량 줄에 멍게 유생(변태하는 동물의 어린 것)을 붙여 수심 10m 정도에 둔다. 2년에 걸쳐 성장을 기다리는데, 적정 수온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준다. 잘 자란 멍게만 꺼내 작업장으로 옮긴다. 물속에 하루를 담가 배설물이 빠지도록 한다. 다음날 줄에서 멍게를 떼어내고 바닷물로 씻긴다. 큰 놈과 작은 놈으로 선별하여 팔려나간다. 그렇게 사람이 들이는 공이 멍게의 나머지 2할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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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해중앙시장에서 만난 멍게. 멍게 열댓 개가 담긴 한 소쿠리가 1만 원가량이다./최환석 기자

한국 멍게 생산량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곳은 통영이다. 통영 멍게는 2월에서 6월에 걸쳐 수확한다. 4월과 5월이 제철이라 한다. 이 시기 전통시장 상인들은 빨간 대야 가득 멍게를 담아 판다. 작은 소쿠리 하나 가득 1만 원가량. 하나에 10㎝가량 크기인 멍게 열댓 개의 가격이다.

멍게 몸에는 돌기가 여럿이지만 독특하게 생긴 것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바닷물을 빨아들이는 입수공이고, 다른 하나는 반대로 내뱉는 출수공이다. '열 십(十)' 자 모양이 입수공이고, '한 일(一)' 자 모양이 출수공이다. 입수공으로 빨아들인 바닷물에서 플랑크톤과 산소만 남기고 출수공으로 내뱉는다.

수산물을 다루는 식당에서 멍게는 식욕을 돋우는 전채로 등장한다. 보통 해삼·개불 등과 같이 나온다. 그래서인지 멍게만 따로 사 먹는 것이 익숙하진 않다. 양식 이전에는 귀한 해산물이었는데 말이다.

멍게는 날것으로 먹는 것이 제일이다. 냉동 보관만 잘하면 1년 내내 제맛을 느낄 수 있다. 냉장 보관한 멍게는 하루만 지나도 맛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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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해중앙시장에서 만난 멍게. 빨갛게 만개한 꽃처럼 보인다. / 최환석 기자

껍질의 붉은색이 선명하면 좋은 멍게다. 껍질이 단단하고 수분이 넉넉한 멍게를 고르면 된다. 껍질을 세로로 길게 잘라 속살을 빼내는데, 맑은 주황색을 띠어야 좋다. 내장을 제거하고 살짝만 씻으면 된다. 여러 번 씻으면 고유의 향이 날아간다. 껍질 제거가 어렵다면 손질한 멍게를 구입하면 된다.

멍게 향이 좋으면 두말할 나위가 없겠으나, 가끔 유통 과정에서 변질하여 향이 짙어지기도 하기 때문에 좋은 멍게를 따지는 잣대라고 보기는 어렵다.

잘 손질한 멍게는 초고추장과 어울린다. 그렇게 하나만 먹어도 향이 오래간다. 멍게 고유의 맛과 향은 휘발성 알코올인 '신티올'이 있어서다. 글리코겐이 많아 피로회복에도 좋다. 수온이 높아질수록 멍게의 글리코겐 함량도 높아진다. 수분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지방질이 많지 않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저열량 수산물이다.

멍게를 잘게 썰어 쌀밥에 비벼 먹는 '멍게비빔밥'도 즐기는 방법 하나다. 고추장은 자칫 멍게 맛과 향을 죽일 수 있기 때문에 넣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기호에 따라 적당히 쓰자. 통영에서는 잘게 썬 멍게에 오이, 참기름, 다진 청양고추를 버무려 먹기도 한다. 김이나 깨가 들어가기도 하는데, 재료 향이 강해서 빼는 것이 좋겠다. 꼭 김을 넣으려면 조미한 김은 피하도록 하자. 멍게는 젓갈로도 먹는다. 이래저래 먹는 방법이 다양하다.

주 음식에 앞서 곁들이는 해산물로 여겨지던 멍게지만, 고유의 매력은 고급 해산물 못지않다. 입맛이 없다면 신선한 멍게 한 입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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