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힘]엄마의 기록
힘겹게 살아왔던 나의 엄마
일기장에 차곡히 정리한 삶
가난해도 가계부 잊지 않아
자신의 기록 남기는 '가치'
인생을 이야기화하는 시도
재구성하면 책 제작도 가능
시간 흐를수록 빛 발할 작업

나의 엄마 이름은 '봉희(鳳熙)'다. '봉황의 기쁨'이라는 뜻으로 누구보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전영택의 소설 <화수분>에서처럼 그 이름과 반대되는 인생을 살아오셨다.

어린 시절 원인 모를 통증으로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았지만 병원 문턱에도 가지 못해, 보청기가 없으면 한쪽은 거의 듣지를 못하는 상태가 됐다.

아들이 귀하던 시절, 딸 여섯을 두었지만 한 명의 아들도 낳지 못했다. 지독한 가난, 다정치 못한 남편, 어려운 시부모와 살면서 남편의 어린 동생들을 보살폈다. 어린 자식들은 배고프다며 울었고 남편은 술에 절어있었다. 새벽에는 남편 따라 농사를 지었고, 낮에는 남의 집 살림을 돕거나, 모텔청소, 식당 설거지를 하면서 돈을 벌고 밤이면 돌아와 시부모와 어린아이들 그리고 남편의 밥을 지었다. 일을 하다 팔을 다쳤지만 다음날 일을 하지 못할까 봐 병원에 가지 못해 팔이 부러진 상태로 지냈다. 나이 들어 병원에 가보니 더는 방법이 없으니 이대로 살라고 의사는 권고했다.

엄마는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에도 일기를 쓰고 매일 지출한 내역을 가계부에 적었다. 엄마에게 기록은 생존이고 본능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남겨진 기록을 본인의 인생처럼 관리하기를 원하고 있다. /시민기자 전가희

지독한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 빽빽 울어대는 어린 자식을 버리고 가버릴까 고민도 했지만 한 정거장도 지나지 못해 고통의 시간으로 다시 돌아갔다. 엄마에게 즐거움이란 '자식들의 웃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의 엄마는 그렇게 인생을 살았다. 내가 아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인생이었지만 강하게 인생을 살아왔다. 지금은 그 지난한 인생을 지나 장성한 자식들과 추억을 회상하며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 있지만 엄마의 기록은 내게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역사다.

언젠가 나의 엄마가 내게 자신이 쓴 일기장을 준 적이 있다. 나는 그 일기장을 다 읽지 못했다. 소설로 썼다면 비극이었고 드라마에서 봤다면 막장이었다. 기록연구사로서 기록은 보존·활용되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하지만 내 엄마의 기록은 숨기고 싶었고 폐기하고 싶었다. 누군가가 본다면 그 기록으로 내 어린 시절이 추정될 수 있다는 것이 두려웠었다.

엄마는 지금도 그러하시지만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었다. 그러나 '여자가 문장 될 거냐'는 외할머니의 타박으로 책도 숨어서 읽어야 했다고 한다. 습관적으로 그 어려운 와중에서도 일기를 쓰고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에도 매일 지출한 내역을 가계부에 적었다. 엄마에게 기록은 생존이고 본능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남은 기록을 본인의 인생처럼 관리하기를 원하고 있다.

엄마는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에도 일기를 쓰고 매일 지출한 내역을 가계부에 적었다. 엄마에게 기록은 생존이고 본능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남겨진 기록을 본인의 인생처럼 관리하기를 원하고 있다. /시민기자 전가희

요즘 개원한 우리 기록원에 많은 사람이 온다. 전시실 단체관람객의 경우 해당 실을 소개하며 안내해 드리기도 한다. 며칠 전 단체관람객에게 안내를 하던 중, 어느 분이 본인 시아버지가 20살부터 현재(80세 정도)까지 쓴 일기장을 가지고 계시고 앞으로 잘 보존해서 자손들에게 남기기를 원한다고 하시며, 어떻게 해야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는지를 질문하셨다. 우리 지역 분은 아니지만 소독과 탈산 작업 등의 설명과 함께 기록의 간단한 보존 방법과 관할 국가기록원을 알려드렸다.

이제는 남은 생을 정리하는 단계에서 나의 엄마처럼 그분도 평생을 쓴 기록을 관리하기를 원하셨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우리 주위에 많은 분이 〈조선왕조실록〉이나 〈일성록〉보다 더 가치 있는 '나의 기록'을 쓰고 남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분들이 기록원이라는 기관이 생기자 본인의 기록을 다시금 보게 되었으며 관리하기를 원하는 만큼 우리 원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난 몇 달간 글을 쓰면서 기록은 관리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도민들이 그것을 알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도민들은 기록이 관리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있었으며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는 정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기록이 안전하게 보존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록원은 우선 오래된 책에 있는 진드기 같은 벌레들을 잡고자 소독을 하는데, 방법은 소독장비에 질소가스를 주입하여 기록물에 발생하는 유해충을 산소 결핍에 의해 질식사시키는 것이다. 그 후 탈산 처리를 하게 되는데 이 처리는 산성지의 열화를 지연시킬 목적으로 종이 내의 산을 중화시키거나 알칼리 완충제를 첨가시키는 것으로 이로 인해 3~5배의 종이수명이 연장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 후 종이의 경우 18~22℃, 40~55%의 온·습도가 일정한 곳에서 보존하면 기록은 안전하게 보존된다.

그러나 옛날 조상들은 지금의 시설처럼 온·습도를 일정하게 맞추거나 기록의 소독·탈산을 할 수 있는 기계가 없었는데 어떻게 기록을 안전하게 보존했을까?

온·습도 조절의 경우 합천 팔만대장경을 예로 들어보자. 팔만대장경은 장경판전이라는 우수한 건물 덕분에 아직도 온전히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장경판전은 통풍을 위하여 창의 크기를 남쪽과 북쪽을 서로 다르게 하고 칸마다 창을 내었다. 안쪽 흙바닥 속에는 숯과 횟가루, 소금을 모래와 함께 차례로 넣음으로써 습도를 조절하였다고 한다.

또한 우리 조상들은 기록을 온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포쇄를 했다. 포쇄는 폭서(曝書)라고도 하며 책을 거풍(擧風·바람을 쐬는 것)시켜서 습기를 제거하여 부식 및 충해를 방지시킴으로써 서적을 오랫동안 보존하는 방식이다. 조선시대에는 실록의 포쇄를 매우 엄격히 하였으며, 포쇄하면서 점검하고 그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기록도 중요하지만 그 기록의 관리를 위해 조상들은 지혜롭게 자연을 이용했다.

과거와 현재, 기록의 관리방법은 다르지만 조상이 남긴 우수한 기록과 지혜로운 관리방법은 후손에게 온전히 전승되었다. 나는 이 방법이 도민들에게도 알려지길 원한다.

그러나 기록을 온전히 남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포쇄작업을 통해 습기를 제거, 부식 및 충해를 방지하는 등의 일상적인 관리뿐만 아니라 가진 기록을 스스로 정리하고 재구성해 기록을 도서로 만드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특히 연세가 많으신 분들에게 시간이 있다면 흘러간 인생을 정리하고 그 인생이 가치가 있었음을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것이 잘되어 다른 사람에게도 인정받으면 그것은 덤이 되는 즐거움이 될 것이다. 내 인생은 그 자체로 중요하지 않은가!!! 일상의 기록으로 나의 인생을 이야기화(Sstorytelling·스토리텔링)해보자. 나의 기록을 온전히 보존하여 남기기를 원하는 마음은, 시간이 흐르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기록 보존을 위한 소독·탈산은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내 인생의 스토리텔링은 자신이 아니면 할 수 없다. 후손들에게도 책이라는 물리적인 기록을 보존하게 하는 것보다 나의 이야기를 다양한 감정으로 들려주는 것이 보다 가치 있는 보존, 효율적 활용의 단초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혹시 아는가! 취미로 만든 나의 기록이 난중의 일기가 되는 영예를 누리게 될지….

마지막으로 내 엄마뿐만 아니라 도민들의 기록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시민기자 전가희(기록연구사)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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