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고난'밴 가난하면서 억척스러웠던 삶
우리 사회 '여성노인'문제, 나이·성 차별 이중고 겪어
가족 챙기지만 본인은 빈곤, 폐지 줍거나 공공근로 전전
경남 여성노인 30만 가까이, 이제 사회적 자리매김 필요
주변 할매들 이야기 지면에…지역 근현대사 '기록'의미

우리들의 할매를 기록합니다!

고성군 배부미자 할매는 76세 때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 현재 요양보호사로 활기찬 일상을 보냅니다. 함양군 안의면 할매는 문해교실에서 처음으로 글을 배워 읽고 쓰고, 산청군 신안면 할매는 10년 가까이 서예와 한국화에 빠져 있습니다. 자식 다 키우고 이제 허리 펴며 '자기'를 살고 있습니다.

잠시, 주변의 할매를 되돌아보셔요. 여성으로 태어나 굴곡진 긴 세월을 살아낸 할매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할매들은 그 누구이든 당신들이 살아온 만큼의 긴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아는 할매를 권영란 기자(010-3833-6883)에게 알려주셔요.

도롯가에서 재활용품을 실은 손수레를 끌고 가는 할매. 새벽부터 골목을 헤매고 다녔지만 손수레에는 빈 상자 몇 개가 전부다.

진주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권영란 작가가 경남 지역에 살고 있는 할매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오랜 세월 지역에 터를 잡고 삶의 뿌리를 내린 할매의 생애 구술을 통해 이들 삶에 고개를 끄덕이고,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지역 근현대사를 더듬는다. '노년 여성'으로서 녹록지 않은 현실 또한 진솔하게 담아낸다. 할매들 입을 통해 전하는 지역말을 맛깔스럽게 녹여 사라지는 '텃말'을 되새기고 정겨운 맛을 더할 예정이다.

권 작가는 일상을 유영하며 지역과 사람을 기록한다. 2005~2007년 <진주신문> 편집국장을 지냈고, 2012~2015년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며 지역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어냈다. 2015~2017년에는 <단디뉴스> 발행인 및 편집장으로 일했다. 저서로는 2014년 경남지역 전통시장을 기록한 <시장으로 여행가자>, 2016년 경남의 남강 전역을 취재한 <남강오백리 물길여행>이 있다. 현재는 <한겨레> <전라도닷컴> 등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있으며, 틈틈이 강연을 하고 있다.

할매는 경상도, 전라도 등 지역에서 할머니를 이르는 텃말이다. 할아버지, 할배의 상대어이다. 글말보다 입말에 가깝다 하겠다. 사전적인 뜻은 부모의 어머니, 또는 친척이 아닌 늙은 여자를 통칭하는 말이다. 할매는 여성으로 태어나 자라고, 첫 월경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살림을 살고, 가족을 먹여 살리고, 평생을 한 남자의 아내로 어머니로 살다가 노년에 이르러 불리는 이름이다. 물론 여성이지만 결혼을 안 하고 가족이 없어도 손자손녀가 없어도 나이 들어 할매로 불린다. 세상의 모든 여자는 노년에 이르러 할매가 된다.

한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더위를 피하는 할매들. /경남도민일보 DB

◇"할매들에게 사회적 자리를 찾아주자"

궁금했다. 지금 우리에게 할매는 누구인가? 우리 사회는 할매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지금 우리가 할매라 부르는 이들은 길게는 일제강점기나 해방 직후 태어났거나, 짧게는 한국전쟁 직후 태어나 격동의 근현대사를 지낸 이들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가 여성문제와 인권향상에 천착해왔으나 아직 할매, 즉 여성노인 문제에 집중한 적은 없는 듯했다. 여성문제를 고민해온 이들은 할매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20여 년 지역에서 여성문제와 인권향상을 위해 활동해 온 강문순(현 일본군강제성노예피해자 진주평화기림사업회 공동대표) 씨에게 이와 관련해 물었다. 강 씨는 "아직 우리 사회가 여성 노인에 대해 집중적인 관심을 가진 적은 없는 것 같다"고 전제하고서 "우리 사회에서 할매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젊음에 밀려나고 여성으로서도 밀려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할매들은 남성 노인들보다 훨씬 가난하다. 평생 가족을 먼저 챙기고 남성에 의존하다 보니 대부분의 할매들은 정작 자신의 노년을 준비하지 않아 가난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강문순 씨는 "우리 사회에서 할매는 '그악스럽다', '억척스럽다'는 게 일반적 인식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들의 생존력이고 오히려 힘이다. 이들이 지금의 우리나라를 만들었고,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할매를 바라보는 잘못된 인식을 꼬집기도 했다. "할매를 두 부류로 보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밀려난 불쌍한 할매이거나 모든 것을 다 퍼주는 할매로 보고 있다. 이게 우리가 매기는 할매의 정체성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실제 할매들의 정체성과 현실을 제대로 되짚고 사회적 자리매김을 하는 게 우리 사회가 할 일이지 않을까 싶다"고 강조했다. 강 씨의 말처럼 우리 주변에 사는 많은 할매들은 제대로 노후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노년을 맞았고, 오늘도 길거리를 전전하며 폐지를 줍거나 노인 일자리를 찾아 공공근로를 하며 생계비 마련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노후대책 더는 개인 문제 아냐" 보건복지부, 2017년 노인 실태 조사에서 밝혀져

한국 사회에서는 만 65세 이상을 노인이라 한다. 2017년 통계에 따르면 노인 인구는 738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3.8%를 차지한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전남이 21.5%로 가장 높고, 세종시가 9.2%로 가장 낮았다. 경남은 평균 비율을 웃도는 전체인구의 14.4%이다. 전체인구 345만 명 중 노인 인구가 48만 4000명이다. 이 중 여성 노인 인구 '할매'가 30만 명에 이른다. 남성 노인 인구 '할배'보다 10만 명 정도 더 많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4일 '2017년 노인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이 조사를 보면 65세 이상 노인 30%는 노후준비 부족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고, 이들 대부분은 생계비를 마련할 목적으로 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용돈 마련 또는 시간 보내기, 친교목적 등 다양한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경제활동을 하는 노인들은 급여가 낮은 단순한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었다. 젊은 층이 꺼리는 일이기도 했다. 이들은 단순노무직이 40.1%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농어업이 32.9%였다. 전문직이나 고위임직원·관리자, 사무직원은 총 5%에 불과했다.

노인들의 주요 소득은 기초 노령연금, 국민연금 등 공적 노후소득 지원이었다. 2014년 7월 시행한 기초연금제도는 소득 하위 65세 이상 노인 70%에 월 최대 20만 원을 지급하는 제도로 노인들의 다른 소득에 비해 비중이 높은 편이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주목되는 것은 65세 이상 노인들은 노후 생활비를 마련하는 수단으로, 본인과 국가 사회보장제도가 같이 준비해야 한다고 인식한다는 점이다. 10년 전에 비해 '본인 스스로 해야 한다' 또는 '자녀에게 의존하겠다'는 인식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로 나타났다. 이제 노인들은 노후대책을 더 이상 본인 개인의 문제로만 여기지 않는다.

현재까지 정부가 발표한 통계와 노인 실태조사는 우리 사회 할매들이 겪었던 소외와 현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놓지는 못한다. 전체 노인 인구의 60%가 훨씬 넘는 여성노인 할매들의 존재를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하지는 않는다.

오늘도 세상의 모든 할매들은 말한다. "아이구야, 내 살아온 걸 우찌 말로 다 해. 글로 쓰면 이야기책 수십 권은 될 거여. 어디 함 들어볼티야."

먼저, 출발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할매 열전>은 우리 사회 평범한 할매들의 차고 넘치는 이야기를 수집해서 펼쳐나갈 예정이다. /시민기자 권영란

※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