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계층 권력연장 도구로 활용된 분단
이제 지긋지긋한 악순환 고리 끊을 때

2차 남북정상회담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고 그래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대단한 이벤트였다. 회담을 마치고 문재인 대통령을 배웅하느라 통일각 계단을 내려선 북쪽의 젊은 위원장이 '문프'와 악수를 하는가 하더니 갑자기 그 푸짐한 몸피를 열어 문프를 끌어안는다. 오른쪽 왼쪽을 겨끔내기로 세 차례나 끌어안는 이른바 '비주(스위스식 인사법)'다. 물론 쪽 소리 나게 입을 맞춘 '사회주의 형제 키스'는 아닐지라도 남북이 서로 심장을 맞비빈 것이다. 가슴이 뭉클했다.

"남쪽에서 김 위원장 인기가 좋아졌다"란 우리 대통령의 인사가 의례적 덕담만이 아닌 것이 '도보다리' 이후 그를 보는 시선이 놀랍도록 따뜻해졌음은 사실이다. '고향의 봄'을 들으며 아련한 추상에 빠져들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공감의 대역은 남북에 함께 흐르는 동질의 지대였다. 그것은 단 한 번의 만남으로도 대뜸 느껴지는 내칠 수 없는 피붙이의 징그러움 같은 것이 아니던가.

일본의 조선 침탈과 망국, 2차 대전과 승전국들의 땅 갈라먹기, 그리고 6·25! 3년 전쟁의 참혹함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휴전 후 65년간 민족 내부로 스며든 분단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쓰라린 것이었다. 분단은 한 줌도 안 되는 지배계층의 호의호식과 권력 연장을 위한 도구로 쓰이며 흉기로 화했다. 엄청난 돈이 군비로 지출되고 한창나이의 청년들은 군대로 끌려갔다. 정치적 반대자는 빨갱이로 몰리고 온 집안이 연좌에 걸려 쑥대밭이 되고 시민권은 억압당했다. 갈라진 반도의 휴전선 너머를 철저히 증오케함으로써 내부의 결속을 도모했다. 기득권층의 적대 정책은 집요하고 한층 교묘해졌다. 이름조차 TV조선인 북한 전문 방송국은 베일에 가려진 북녘 소식을 쉼 없이 퍼와 진열했다. 이른바 '북한 전문가'와 탈북자 귀순자 등 단골 출연자들은 북의 구중궁궐 속은 물론 수령의 내심까지 꿰뚫어 적출해 북한 정국의 흐름을 분석하는 무한 능력자들이었다.

"적화통일을 꿈꾸는 북은 끊임없이 남쪽의 분열을 획책하며 군사력을 증강해 왔으며 거짓 화해의 시늉으로 남쪽의 종북 성향 '전임'들로부터 원조받은 돈으로 핵무기까지 개발했다. 급기야 맹방인 미국까지 위협하게 되었다." 과연 그런가?

80년대 후반 동구권 몰락과 소련의 해체 이후 남북한의 군사 경제적 격차는 현격히 벌어진다. 동해와 서해, 자신들의 턱밑에서 핵추진항공모함을 띄우고 수만 명의 한미연합군이 공격훈련을 벌이는 모습에 큰 위협을 느낀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 또한 온전히 믿을 수 있는 대상은 아니다. 그들은 적대적 국가들로부터 포위당하고 있다는 '피포위 강박증'에 빠진다. 미국과 수교를 끊임없이 원하지만 굴복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후세인과 카다피의 처참한 최후를 목도하며 '핵'만이 유일한 방어수단이란 결론으로 개발에 매진한다. 숨통을 조이는 경제제재와 군사적 압박의 와중에 마침내 '한방'을 얻는 데 성공한다. 이제 공포에서 비롯된 혼신의 '산물'로 안전을 거래하러 나선 것이다. 역지사지해보면 1차 판문점회담에서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느냐"고 문 대통령에게 토로하던 김정은의 이 말에 고개 주억거려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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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남북이 따로 정부를 수립했으니 올해로 70년. 이제 분단이 낳은 지긋지긋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때에 이른 것이 아닌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우리의 운명을 틀어쥔 것은 미국이다. 6월 12일까지 트럼프가 또 무슨 해찰을 부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모두가 걱정하고 불안했던 지난주, 격식과 관례 따위를 초개같이 버리고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길을 열어 보인 남북의 두 지도자가 소통하고 협력하는 한 이제 여긴 예전의 조선반도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제 빌보드차트를 접수한 BTS 보유국이기도 하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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