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오토바이 타고 유라시아 횡단] (7) 알타이산맥
몽골~러시아~카자흐스탄알타이산맥 따라 달려가
비경에 사진 찍기 여러번 현지서 만난 바이커들에게
요리사 본업 살려 음식 대접 연신 "맛있다"며 '엄지척'

몽골 알타이라는 도시에서 오랜만에 따뜻한 물에 몸을 씻었다 여기 와보니 우랄산맥에 닿으려면 서쪽으로 한참을 더 가야 한다. 이곳 알타이산맥은 몽골 고비사막 근처에서 시작해 알타이, 호버드, 을기를 거쳐 러시아 알타이공화국으로 이어진다. 어쩌다 보니 우리는 알타이산맥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여름인데도 산위에 눈이 남아있는 걸로 보아 높은 곳은 3000m는 족히 넘을 것 같았다. 물도 공기도 아주 깨끗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모습을 몇 가지 봤다. 첫 번째는 길에서 로드킬로 희생되는 동물이다. 한국에서는 개, 고양이, 조류 등 조그만 야생동물이 도로에서 지나가는 차에 희생될 터인데, 이곳 몽골에서는 소, 말, 양 그리고 간혹 낙타가 희생양이었다. 커다란 동물이 길 위에 쓰러져있는 걸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또 다른 진기한 모습은 매 같은 맹금류가 참새 크기의 조그만 새를 사냥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번은 천천히 도로를 달리는데 우리 오토바이 위로 가까이 매가 날고 있었다. 머리 위 매를 관찰하려고 가는 길을 멈췄는데, 참새 크기의 작은 새가 우리 오토바이 아래로 급하게 몸을 숨겼다. 매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우리 주위를 한동안 맴돌았다. 아들과 나는 작은 새가 계속 오토바이 밑에 몸을 숨기기를 바랐지만, 이곳 역시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 순간 매가 내려와 작은 녀석을 순식간에 채갔다. 이것 역시 자연의 섭리라고는 하지만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한 우리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알타이산맥의 멋진 모습.

몽골 동쪽 끝에 있는 도시 호버드를 지나 아름다운 산속 풍경이 펼쳐졌다. 길은 험하지만 경치가 정말 좋았다. 파란 하늘은 윈도 바탕화면을 보는 듯했다. 가다가 서서 사진을 찍고, 또 가다가 서서 사진 찍기를 반복했다. 한참을 달려 러시아 국경에 가까운 을기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검색 끝에 '트래블러스게스트하우스'라는 곳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도착해서 보니 그곳은 세계 각국에서 온 오토바이 여행객들의 집합소였다. 우리처럼 몽골을 지나온 사람과 앞으로 몽골로 갈 사람이 섞여 서로 여행계획을 나눴다. 우리가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갈 예정"이라고 하니 프랑스, 네덜란드, 폴란드에서 온 여행객들이 자기 집에 들러 자고 가라며 주소를 적어 주었다. 우리도 한국에 오면 연락하라며 명함을 건네며 연락처를 알려줬다. 모두들 참 밝고 착한 사람들 같았다.

지훈이는 동갑인 이곳 게스트하우스 주인아들과 재밌게 놀았다. 여행하며 친구가 없어 외로웠을 텐데 비슷한 또래만 만나면 말이 안 통해도 신나게 논다.

오토바이클럽 '알타이모토' 모임 친구들과 함께.

다음날 아침 짐을 챙겨 몽골에서 다시 러시아로 국경을 넘었다. 육로 국경도 이제 불편함이 없다. 자연스럽게 절차대로 서류를 제출하고 다시 러시아로 넘어올 수 있었다. 러시아 알타이 지방으로 들어왔다. 몽골과 다르게 다시 길 상태가 좋아졌다. 산 속 깊은 계곡을 지나 천천히 달리고 있는데, 산악용 오토바이를 탄 빡빡머리 친구가 우리를 불러 세웠다. 알고 보니 그는 러시아 산악용 오토바이 선수였다. 금메달도 여러 번 딴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를 오토바이클럽 '알타이모토'의 모임에 데리고 갔다. 그곳에 가니 여러 명의 바이커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짐을 풀어놓고 마당에서 쉬고 있는데 한 친구가 다가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는 나에게 "직업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한국에서 초밥 가게를 운영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클럽 회원 모두가 초밥을 만들어달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 알타이산맥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에서 초밥은 쉽게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다. 그리고 바다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신선한 생선을 구하기도 힘들다. 잠시 고민한 끝에 일단 초밥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초밥재료를 구하러 주변에 있는 조금 큰 가게에 들렀다. 가게 안을 몇 바퀴나 빙빙 돌아서 선택한 재료는 냉동송어와 연어, 소고기, 계란이었다. 냉동된 걸 쓰는 건 좋지 않지만 여기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대신 깨끗하게 재료를 손질해 요리를 시작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초밥 8인분이 완성됐다. 그렇게 완성된 초밥을 식탁에 둘러앉아 모두 허겁지겁 먹었다. 나는 이들의 반응을 지켜봤다. 잠시 후 정적을 깨고 그들은 "판타스틱"이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들은 "이렇게 깊은 산골에서 초밥을 먹을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현지서 재료를 공수해 초밥 8인분을 만들었다.

식사 후 그들의 안내로 러시아 전통 사우나인 '반야'를 하러 갔다. 지은 지 60년 된 조그만 건물 안에 커다란 난로가 있었다. 난로에 장작을 넣어 열을 내고 돌을 달군 뒤 돌 위에 물을 부으면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온다. 한국의 스팀사우나와 비슷하다. 5분 동안 뜨거운 곳에 있다가 밖으로 나와 찬 공기를 마신다. 이 과정을 반복하는 냉온 사우나 방식이다. 특이한 점은 참나무 잎으로 몸을 두드린다는 것이다. 마사지 효과가 있다고 한다. 반야에서 땀을 흘리고 참나무 잎으로 몸을 두드리니 몸이 가뿐해지고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몽골 알타이 그리고 러시아 알타이. 알타이산맥이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국경이 나뉘어 있었지만 고맙게도 우리는 두 나라 어디에서든 다름없이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아쉽지만 또 떠날 시간이 됐다. 이제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카자흐스탄으로 향한다.

본격적인 중앙아시아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오는 길에 러시아에서 만난 카자흐스탄 바이커들이 빠른 지름길을 알려줬다. 흔쾌히 안내해준 길을 따라 달렸다. 처음에는 깨끗한 포장도로가 이어졌다. 그러나 갈수록 길은 점점 울퉁불퉁해졌고 어느 순간부터 아예 비포장도로로 변해버렸다. 다시 몽골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의 상태가 안좋은 비포장도로였다. 그렇게 모래, 자갈길을 한참 달리니 저 멀리 카자흐스탄 국경초소가 보였다. 안심이 됐다.

국경 앞에 선 우리 모습은 참 꾀죄죄했다. 세수를 안 한 듯 까만 얼굴에 먼지를 뒤집어 쓴 옷, 가방과 비닐봉지가 주렁주렁 달린 오토바이. 딱 봐도 고생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래서일까. 원래 국경에서 여행자를 대상으로 하는 짐 검사가 비교적 간단한 편이긴 하지만, 이날은 가방 한 번 열지 않고 국경을 통과하는 배려(?)를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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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풀었다 다시 묶는 수고를 덜어 좋았다. 국경에서 100㎞를 달려 카자흐스탄의 외스케멘이라는 제법 큰 도시에 닿았다. 인터넷 정보로는 외국인들도 별 어려움 없이 현지 휴대폰 유심카드를 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실상은 달랐다. 도시 내 휴대폰 통신사 매장을 몇 군데 방문해봤지만 외국인에게는 팔 수가 없다고 했다. 여행하다 현지에서 유심카드를 구하지 못하면 제일 난감한 것이 지도검색이 불가능해서 가고자 하는 길을 제대로 찾을 수 없고 또 저녁에 우리가 묵을 숙소 검색도 불가능하다. 지훈이와 나는 제법 큰 쇼핑몰 안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봤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그때 우리를 지켜보는 카자흐스탄 현지인 미모의 여성이 있었으니….

/시민기자 최정환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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