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시설 밀집 대표 번화가
화려한 조명·왁자한 거리에
꽃·풀 등 생명 움터 '신기'
쓰레기들과 건물들 사이
안간힘 쓰며 활짝 피어나
누구나 만만치 않은 인생
자기만의 '꽃' 피워내기를

지난해 7월 부산 중구 중앙동 원도심 창작공간 또따또가 갤러리에서 독특한 전시를 만났습니다. 전시 제목은 '골목생물도감'이었습니다. 삭막해 보이는 도심 골목에 사실은 다양한 동식물이 생태계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취지였습니다. 예컨대 아스팔트 틈새에 뿌리를 내린 꽃들과 살금살금 지나는 길고양이, 전선 위에 날개 접은 비둘기 같은 거지요. 경남 대표적인 번화가 창원 성산구 상남동에서도 이런 작업을 하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흥청망청하는 분위기의 밤이면 더 좋겠다 싶었고요. 그리하여 지난밤 문득 상남동으로 향했습니다. 봄이 한창이니까 다른 건 말고 네온 가득한 거리에 핀 꽃을 찾을 생각이었습니다. 과연 낮만큼 환한 상남동에도 갖가지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화단이나 화분에 조경용으로 가꿔놓은 것도 제법 됩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구석진 곳에나 틈새에서 스스로 악착같이 자라난 것들을 찾으려 했습니다.

제일 처음 어느 건물 환기구 옆에서 만난 5월 장미는 알록달록한 네온 아래서도 고고한 자태가 빛났습니다. 활짝 핀 장미는 붉다 못해 검은빛마저 감돕니다. 붉은 장미 봉오리는 순수한 사랑이나 사랑 고백이란 꽃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활짝 핀 것은 욕망, 열정, 아름다움, 절정을 뜻한답니다. 상남동에 잘 어울리는 꽃 같네요. 그 옆 길가에 나란한 달맞이꽃은 네온사인보다 환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분홍빛이 나는 게 싱그럽기까지 합니다. 보통은 노란색인데, 조경용으로 분홍색 달맞이꽃을 많이 심는다는군요.

▲ 네온 보다 환하던 달맞이꽃. / 이서후 기자

왁자한 거리에서 건물 틈새를 기웃대는 저한테 관심을 두는 건 다른 의미로 구석을 헤매는 길고양이와 노래방 호객꾼뿐입니다. 자세히 보면 상남동에도 구석구석 녹지가 꽤 있습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화단 같은 곳입니다. 이런 곳은 보통 쓰레기가 한가득 쌓여 있습니다. 그 쓰레기들 사이사이 초록 식물들이 자라고 있지요. 이렇게 상남동에도 생명이 숨 쉴 틈은 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사람들도 결국은 팍팍한 삶에 숨 쉴 틈을 찾아 상남동으로 몰려드는 걸까요.

'위하여~'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어 보니 어느 고깃집이 왁자합니다. 그 곁 울타리에 초롱꽃이 줄기에 매달려 있습니다. 굉장히 내성적인 느낌의 꽃입니다. 꽃말을 찾아보니 감사와 성실을 가슴에 품은 꽃이라고 돼 있으니 꽃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듯합니다.

돌아다니다 보니 고인돌이 있는 공원입니다. 상남동 한가운데 이 고인돌을 복원한 분을 알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아주 세심하게 원형 그대로 옮겨 놓았답니다. 옮기면서 고인돌 주변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달라, 나무도 심지 말아달라고 했다지요.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낮은 언덕과 나무들에 둘러싸여 잔뜩 움츠려 있는 모양입니다. 불야성을 이룬 도심 안에서 고인돌 공원은 마치 선사시대로 가는 타임터널처럼 묘한 느낌으로 남은 공간입니다.

고인돌 주변으로 토끼풀이 한가득입니다. 토끼들이 잘 먹는다고 토끼풀이라지요. 영어로 클로버라고 하죠. 그리스 신화에서는 꿀벌의 요구로 제우스가 만든 꽃으로 나옵니다. 좋은 꿀이 있으면서도 찾기 쉬운 꽃을 알려 달라고 하자 흰 물감으로 점을 찍어 줬다지요. 그래서 멀리서 보면 토끼풀꽃은 하얀 점들이 모인 것 같습니다.

▲ 네온 속에 흔들리는 개망초. /이서후 기자

옹기종기 모인 토끼풀꽃 옆으로 삐죽 솟은 개망초가 네온 속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계란꽃이라고도 하죠. 생각해 보니 어릴 적에는 유독 철길 가에 많이 피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철도를 만들 때 미국에서 수입한 침목을 썼는데, 이때 함께 묻어 온 것으로 추정한답니다. 철도 주변으로 꽃이 하얗게 피자 당시 일본이 우리나라를 망하게 하려고 씨를 뿌렸다고 여겨 망국초(亡國草)라고 불렀다고 하죠. 사실 망초는 잘 보기 어렵고요. 망초보다 꽃이 더 예쁜 개망초가 우리가 흔히 보는 것입니다. 개망초가 피기엔 좀 이르지 않나 싶은데, 요즘 기후가 예전 같지 않으니 뭐 이상할 일은 아닌 듯합니다. 토끼풀도 개망초도 수수한 모습 그대로 상남동 거리를 버티고 있습니다.

"우리도 좀 찍어 줄래요?"

이리저리 꽃 사진을 찍고 있자니 웬 중년 아저씨가 절 부릅니다. 어깨에 알록달록한 앵무새가 앉아 있네요. 가까이 가니 고개를 요리조리 틀면서 잔뜩 경계하는 눈치입니다. 앵무새는 6살이랍니다. 사람으로 치면 초등학생 정도라고 하네요. 40~60살까지 사는 종이라 좀 비싸답니다. 아저씨는 근처 건물에서 민속주점을 한답니다. 더러 이렇게 건물 앞에 나와 바람을 쐰답니다. 앵무새는 손님들에게도 명물인 모양입니다. 술자리에서 손님들이 웃으면 따라 웃고, 가끔 휘파람도 불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불쑥 끼어들기도 한다네요. 그래서 앵무새 보려고 오는 손님도 있답니다. 비빔밥을 아주 잘 먹는답니다.

앵무새 아저씨는 제가 꽃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냥 스쳐 지나칠 꽃인데, 뭣 때문에 자꾸 사진을 찍어대는지 궁금했던 거지요.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물이라도 요리보고 저리보고 하다 보면 어딘가는 볼만한 구석이 있기 마련이겠지요?

▲ 앙증맞고 소박한 말발도리. /이서후 기자

사실 앵무새 아저씨를 만나기 전 화단에 핀 말발도리란 꽃을 한창 찍고 있었습니다. 작고 하얀 꽃이 앙증맞게 피어있더군요. 요즘은 포털 사이트에 사진을 찍어 바로 꽃 이름을 검색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렇게 찾아보니 말발도리란 이름이 나왔습니다. 5월에 피는 아름답고 소박한 꽃이랍니다. 어쩐지 쳐다보고 있자니 마음이 반듯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조경수로 많이 들여왔답니다.

밤길을 제법 걸었더니 지칩니다. 이제 돌아가자 하고 상남동을 빠져나오는데 어느 건물 화단에 영산홍이 보입니다. 너무 흔한 꽃이라 보여도 무시하고 지나갔는데, 이 영산홍은 뭐랄까 좀 애처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꽃을 피워내는 일이 힘에 부치지만 그래도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그러면서 상남동에 흥청거리는 사람들도 다들 안간힘으로 살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꽃이든 사람이든 사는 일은 그렇게 만만치 않겠지요. 그래도 다들 자기만의 꽃을 피워내기를 바랍니다. 상남동 밤거리에도 꽃은 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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