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인과 톡톡]김재석 경남건축사회장
설계비·감리비 '현실화'회원들 삶의 질 향상 목표 "내 임기 A학점 받고 싶다"

김재석(58) 경남건축사회장은 지난 4월 취임하며 3년 임기를 시작했다. 그는 "경남건축사회를 꼭 한번 이끌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개인 건축사로서 지나온 시간과 연결돼 있다.

김 회장은 김해 진영 출생으로 동아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건축사 생활을 시작했고, 김해에서 건축사사무소 '고광'을 개업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2005년부터 경남건축사회 홍보위원·이사·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3월 정기총회 경선 투표에서 김태호(55·소마E&C건축사사무소) 건축사를 누르고 임기 3년의 제30대 경남건축사회장으로 선출됐다.

-경남건축사회장으로 취임한 지 이제 한 달 조금 지났는데, 정신없이 바쁠 것 같다.

"나는 이 자리를 맡기 위해 그동안 무던히 노력했다. 그런 만큼 임기 동안 100%까지는 아니더라도 90% 이상 되는 A 학점을 받고 싶다. 우리 건축사회는 개인 업을 하는 이들이 만든 단체다. 나도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해 영업을 해보니 먹고사는 부분에서부터 만만치 않았다. 제도·시스템 부분에서 걸림돌이 많다. 나는 이러한 문제를 함께 풀어보고자 하는 마음을 강하게 안고 있다."

-특히 역점 과제로 삼는 부분은 무엇인가?

"사실 역대 회장들 모두 대동소이하다. 회원들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시장 논리가 아니라 일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고 업무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받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설계비·감리비를 좀 더 공정하고 현실화해서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김재석 대한건축사협회 경상남도건축사회 신임 회장. /박일호 기자 iris15@

-과거 이야기를 해보자면, 건축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었나?

"어릴 때는 매우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주변으로부터 '있는 듯 없는 듯'하다는 얘길 들을 정도였다. 공부는 곧잘 하는 편이었다. 고교 시절 진로 선택 기로에 섰을 때, 미술대학 진학을 생각했다. 하지만 직업적인 미래를 봤을 때 불확실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미술 쪽과 가장 가까운 공학 계열을 찾은 것이 건축공학과였다. 1970년대 중동 붐으로 건축 계열이 주목받고 대학에서도 인기였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과도 접목할 수 있는 분야라 판단하고 선택했다. 부산 동아대 건축공학과에 들어가 공부해보니 생각대로 굉장히 잘 맞았다. 연필로 데생하는 일도 많다 보니 미대를 생각했던 나로서는 더없이 좋았다."

-대학 졸업 후 바로 건축사 일을 시작했나?

"당시 주변 친구들은 서울 쪽으로 많이 갔고, 지도교수님도 서울 건축사사무소를 추천해주셨다. 나는 서울보다는 내가 사는 곳에서 건축사 역량을 펼쳐보고 싶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포트폴리오를 들고 부산지역 건축사사무실을 찾았다. 감사하게도 1986년 졸업과 동시에 그곳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주로 아파트를 설계하는 곳이었다. 내가 그곳에서 그린 아파트 도면만 2만 가구 이상 될 것이다."

-1995년 김해에서 개인 건축사사무소를 열게 됐는데, 경영은 또 다른 문제일 것 같다.

"'건축사사무소 고광'이라는 이름으로 개업했다. 주로 주택·근린생활시설 등 소규모 건축물을 다뤘다. 직접 운영해보니 쉽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사실 서울 아닌 중소규모 지역에서는 멋진 작품보다는 먹고사는 데 치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업으로서 원활한 것도 아니다. 이쪽 분야도 1997년 IMF외환위기 이전·이후로 나뉜다. 지금 건축사는 많이 늘었는데 일 양은 크게 줄었다. 그리고 그 대가는 25년 전과 비교해 오히려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우리 건축사사무소 직원이 개업 직후 11명이었는데, 지금은 2명에 불과하다. 많은 딜레마를 안고 있다."

-주변 이야기로는 주말에 더 바쁘다고 들었다.

"건축사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이후 스스로 성격을 바꾸려 부단히 노력했다. 이쪽 세계에서 내성적인 성격으로는 불리하겠다고 생각했다. 군대 3년 동안 사람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나는 굉장히 활동적인 사람이다. 쉬는 날 그냥 집에 있지를 못한다. 등산·골프·자전거·여행을 꾸준히 한다. 특히 바다낚시를 좋아한다. 남해안 쪽은 거의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다. 전문 잡지 기자들과 동행한 적도 있고, 낚시 채널에도 종종 출연했다. 고맙게도 아내 역시 낚시를 즐겨서 지금은 전문가 못지않다.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함께 텐트 들고 바다로 나간다."

-건축 분야에서도 자녀들이 업을 잇는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다.

"딸아이가 고등학교 때 문과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처럼 건축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더라. 사실 좀 충격이었다. 아버지 처지에서 이쪽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잘 아니까 걱정이었다. 며칠 고민 끝에 결국 허락했다. 지금은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서울에서 1년 차 수련 건축사로 활동하고 있다. 요즘 이야길 나눠보면 자신만의 건축 철학을 만들어가는 것 같아 뿌듯하다."

-건축사들은 '자신의 대표작'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끼는 것으로 안다. 개인적으로는 어떠한 작품을 손꼽을 수 있나?

"건축사는 흔적을 남기는 직업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건축사 삶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지 못한 것 같아 회한을 느끼기도 한다. 지금까지 주로 민간 건물을 다루다보니 의뢰인 요구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개인 혼을 불어넣을 만한 작품을 만들지 못했다. 건축은 하면 할수록 깊어지기에 앞으로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어떠한 계획을 세우고 있나?

"일단 경남건축사회장으로서 3년 동안 회원들 삶이 나아지는 데 열정을 쏟을 것이다. 동시에 지역사회와 더불어 사는 전문가 집단임을 잊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그랬듯 힘닿을 때까지 '건축쟁이'로 살아갈 것이다. 은퇴 후에는 캠핑카를 마련해 집사람과 떠돌아다니는 '집시맨' 생활을 하고 싶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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