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명만 투표에 참석 '투표 불성립' 사실상 부결처리
30년 만에 추진된 정부 개헌 마무리

"명패수가 114매다. 투표하신 의원 수가 의결 정족수인 재적의원 3분의 2에 미치지 못했다. 따라서 이 안건에 대한 투표가 성립되지 않았음을 선포한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투표 불성립'을 선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정부 개헌안이 24일 결국 사실상 부결됐다. 예고된 결과였다. 국회 본회의장은 이날 오전 개헌안 상정 때부터 텅텅 비어 있었다. 그나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의원 수도 의결 정족수(192명)에 한참 못 미쳤다. 더불어민주당 112명, 정의당 6명, 민주평화당 3명, 바른미래당 1명, 무소속 3명 등 총 125명이었다. 자유한국당은 단 한 명도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앞서 야당들은 대통령 개헌안 자진 철회를 요구하면서 표결 불참을 예고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 3월 26일 발의한 정부 개헌안은 이날 국회에서 처리돼야 했다. "국회는 헌법개정안이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의결하여야 하며"라고 명시된 헌법 130조 1항에 따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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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가 24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개정안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이날 본회의에 상정된 대통령 개헌안 표결에 불참해 정족수 미달로 표결불성립, 사실상 부결됐다./오마이뉴스

"국회 통과 불가능한데 강행, 지방선거 앞둔 책임 면피용"

문 대통령은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대독한 개헌안 제안설명을 통해 "국민이 스스로의 권리로 헌법을 선택하실 수 있도록 국회가 길을 열어주셔야 한다"라며 "시대의 요구를 수용하고 국민께 드렸던 약속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라고 호소했다.

또 "지난 대선에서 주요 정당 후보가 모두 개헌을 공약하며 올해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하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라면서 "개헌이 시대의 요구라는 인식을 여야가 공유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야당은 이날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철회'를 재차 요구했다. 사실상 부결이 확실시 되는 대통령 개헌안을 밀어붙일 게 아니라 국회 차원의 개헌안을 발의하는 게 맞다는 주장이었다.

김광수 민주평화당 의원(전북 전주갑)은 "개헌을 살리려면 대통령 개헌안은 철회돼야 한다"라며 "(정부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일인데 (표결을 강행하는 건) 지방선거를 앞둔 책임 면피용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정희 군부독재정권이 종신집권을 위한 유신개헌 때 끼워넣은 것인 대통령 개헌 발의권"이라며 "적폐청산을 강조하는 문 대통령이 유신의 잔재인 대통령 개헌발의권을 행사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개헌 무산 책임에서 어느 정당도 자유로울 수 없다"라면서 민주당과 한국당 모두를 비판하기도 했다. 민주당을 향해선 "제대로 된 개헌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청와대 눈치만 본다"라고 지적했고, 한국당을 향해선 "국회를 파행시키면서 당리당략과 기득권 지키기에 혈안이 돼 개헌을 막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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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회의장이 24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정족수 미달로 대통령 개헌안 투표 불성립을 선포하고 산회를 선언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김관영 바른미래당 의원(전북 군산)도 "'지방선거와 동시 개헌'이라는 약속을 저버린 한국당의 책임도 크지만 제1야당의 반대가 명약관화한데도 대통령 개헌안을 제출하고 밀어붙이기 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이 대통령의 개헌 의지를 충분히 확인했다. 통과되지 않을 것이 분명한 개헌 표결을 시도하는 건 (개헌을) 지방선거를 위한 정쟁도구로 사용한다는 오해를 부르기 충분하다"라며 "(대통령은) 좀 더 통 큰 자세와 인내심을 갖고 국회의 개헌논의를 지켜보고 격려해주시라"고 말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비례대표)은 "대통령 개헌안은 시대적 요구를 담은 훌륭한 개헌안이지만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면서 "결국 국회에서 (개헌안을) 부결시키는 그 모욕과 수치를 스스로 감당하려 하시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 개헌안이 제출되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나 권력구조 등 (국회 개헌 논의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 가능했는데 오늘의 표결로 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꺼트리는 게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라며 "집권세력은 결과를 책임지는 세력이다. (개헌을) 발의했느냐가 아니라 성사했느냐는 결과로 심판받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개헌 논의할 국회 자격조차 부결된 것"

민주당 의원들은 찬성 토론을 통해 거듭 야당의 본회의 참가를 촉구했다. 무엇보다 한국당을 향해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이인영 의원(서울 구로갑)은 "(대통령 개헌안에) 반대하셔도 이 자리에 나오는 게 야당의 책임 있는 자세"라면서 "대환란의 주범은 홍준표 (한국당) 대표다. 정략으로 지방선거와 동시에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을 완수한다는 약속을 휴짓조각으로 만들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개헌 국민투표가) 투표율을 높여서 야당에 불리한 선거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봤겠지만 개헌 연기는 야당에 유리한 정세를 만들지 않았고 오히려 정치에 대한 극혐을 가져왔다"라며 "(한국당이) 정략과 위선으로 일관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더 심하게는 정치불복이고 대선불복"이라고 주장했다.

최인호 의원(부산 사하갑)도 "한국당은 개헌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 것을 반성해야 한다. 당리당략에만 매몰되는 행태로부터 환골탈태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개헌안은 대통령만의 개헌안이 아니다"라며 "(오늘 결정으로)개헌을 논의할 국회의 자격조차 부결될 것이란 걸 똑똑히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헌안 상정 50분 뒤에 시작된 투표는 10여 분만에 종료됐다. 결과는 예정됐던 대로 '투표 불성립'이었다.

이에 대해 정세균 의장은 "30년 만에 추진된 개헌안이 투표 불성립으로 이어져 대단히 아쉽고 안타깝게 생각한다"라면서 국회 차원의 개헌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개헌 추진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 국민 대다수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기초가 될 새 헌법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라며 "(대통령 개헌안은) 사실상 부결로 매듭지어졌지만 국회발 개헌은 아직 진행 중"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6월 안에 최대한 지혜를 모아 국회의 단일 개헌안을 발의하길 바란다. 더 이상 미룰 명분도, 시간도 없다"라며 "국회의장 임기 중 개헌이라는 옥동자를 보진 못했지만 평의원으로 돌아가서도 20대 국회 내 개헌이 성사되도록 최대한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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