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루트 따라 떠나다] (7) '하나'와 '모두'를 가졌던 도시
고대 로마 때 지은 건축물, 높은 데서 한눈에 담아봐
3만 명 수용 규모에 탄성, 문화재 보존·활용 부러워
오늘날 연중 공연도 열어, 군중 가득한 장면 회상해
괴테는 이곳 '인간미'칭송

이제 드디어 베로나. 동쪽으로는 비첸차, 파도바 그리고 베네치아, 서쪽으로는 밀라노, 북쪽으로는 독일의 뮌헨과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와 잘츠부르크, 바로 아래로는 볼로냐와 피렌체로 연결되는 크로스로드 선상에서 북부 이탈리아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역사와 문화, 경제 등 없는 것이 없는 도시다. "다 있고 한 가지가 없다면, 다 없고 한 가지만 있다면"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하지만 베로나는 '모두 다' 있는 동네다. 다 있기도 하고 나머지 한 가지까지 가진 도시라고 할까?

역에서부터 걸어 시의 관문이라고 할 포르타 누오바(Porta Nuova)를 통과해 곧장 중심가로 향했다. 베로나는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아레나라는 명품이 있어 다른 것들은 모두 희석될 가능성을 지닌 위험한(?) 도시다. 나는 지남철에 끌리는 작은 쇠막대기처럼 점점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러 가지 악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사람들의 노랫소리와 함성이 함께 들려왔다.

고대 로마시대의 원형경기장 베로나 아레나, 그 내부. 주말에는 공연장으로 연중 활용된다.

아레나의 브라 광장은 일요일 오후 시간을 맞아 발 디딜 틈 없이 여행자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들은 민속 복장을 한 무용수들과 함께 광장에서 춤을 즐기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여러 개의 원을 만들어 돌고 돌면서 춤을 추니 시간이 갈수록 동참자들이 늘어났다. 저녁 시간에 열리는 오페라 공연 티켓을 구입하고자 줄을 서 있는 사람들과 입장을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뒤섞여 광장은 거대한 인파로 넘실거렸다.

밤 7시쯤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더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광장에 폭탄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순식간에 잡고 있던 손을 놓고서는 건물이나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그 광란의 춤 인파 속에서도 대오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던 장갑차와 군인들뿐이었다.

이 아레나는 베로나의 '모든 것'이다. 아레나의 외부 모습.

다음날 아침 나는 시내버스를 타고 어제의 그 뜨거웠던 브라 광장으로 다시 나타났다. 괴테가 폄하했던 테아트로 필아르모니코(Teatro Filarmonico) 극장과 형무소였지만 지금은 미술관과 식당 등 다른 용도로 바뀌어버린 팔라초 델라 라지오네(Palazzo Della Ragione), 팔라초 카노사(Palazzo Canossa)와 산타 아나스타시아(Santa Anastasia) 성당을 거쳐 가리발디다리를 지나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파르코 세사레 롬보르소 공원에서 한참 도시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곳 베로나의 '다 있는 것'과 '한 가지' 중에 오로지 그 '한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괴테는 "내가 보는 사물을 통해서 나 자신을 알려고 이 경이로운 여행을 하고 있다"고 이번 여행의 의미를 말했던가? 나는 베로나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도 '모두'를 선택하는 안전함 대신 '하나'를 선택하는 위험을 감수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곳 베로나에서 내가 선택한 아레나처럼 그 '하나'의 사물을 통해서 나 자신을 바라보려고 노력할 것이다.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 아레나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계단을 올라 경기장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숨통을 트이게 하는 그 널찍한 경기장을 한눈에 보고 싶어서였다. 타원형의 경기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굳이 눈동자를 돌려 살펴볼 필요가 없었다. 그만큼 안정감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3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계단식으로 된 객석은 여러 차례 보수되었지만 사람들의 발걸음과 비바람에 마모되어 윤기가 흐를 정도였다.

그래도 정(釘)이 가해졌을 것 같은 움푹움푹한 자국들은 그대로 있었다. 연중 개최되는 공연으로 말미암아 경기장 마당과 정면에는 현대식 객석과 무대가 고정식으로 설치되어 기대했던 느낌을 반감시키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문화재의 보존과 활용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래도 의미 있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아레나가 잘 보존됐다는 것이기도 하다.

왜 원형경기장이었을까? 이 탁월한 발명품을 생각해낸 사람은 누구일까? 높은 자나 낮은 자나, 부자나 빈자나, 연로한 자나 연소한 자나, 체격이 큰 자나 작은 자나 모두 동일한 하나의 인격체. 하나의 머리로만 척도 되는 이 기발한 발상은 누구의 재주였던가? 그 어느 구석진 곳에서 나오는 숨소리, 탄식 소리, 외침이나 저주나 비명이나 환호나 분노와 같은 미세한 소리조차도 세밀하게 들을 수 있었던 곳. 운집한 3만 명의 표정들을 한꺼번에 인식할 수 있었던 이 기묘한 건축물은 이것이 없다면 다른 그 어떤 '모두'가 있어도 없는 것과 같은, 이 '하나'로도 모두를 잊게 할 수 있는 비극의 탄생이기도 했다.

베로나 시가지 전경, 아디제강이 두 번 휘감아 돌아 도시의 경직성을 제거한다.

급한 마음에 보지 않고 지나가 버렸던 1층 통로에는 작은 방들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곳을 스쳐 갔던 수많은 검투사, 사자와 같은 맹수들, 희로애락을 연출했던 연극배우들, 세상을 다 줄 것처럼 사람의 혼을 빼놓았을 연설가들, 그들이 이곳에서 숨죽이며, 때로는 단호함과, 때로는 생명을 건 절체절명의 순간을 보낸 자리였으리라.

내가 보기에 원형경기장은 천의 얼굴을 가진 기념비다. 홀로 텅 비어 있을 때와 성난 관중이나 환호성을 지르는 관객들로 가득 찬 그곳의 대비는 세상 그 어떤 형용사로도 양쪽을 적절하게 표현하기가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텅 빈 모습이 그의 나체와 같은 모습일 수 있으나 아레나가 아레나 된 것은 그 안에 사람으로 가득 찬 그 황홀 지경의 모습이 아닐까?

사람 앞에 나서고 군중의 환호를 즐겼다는 황제 요제프 2세와 교황 비오 6세조차도 이곳에 가득 찬 군중 앞에서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니 과연 원형경기장 본연의 모습은 하나의 점에 불과했던 개개인들의 집합체인 군중으로 가득 찼을 때의 모습인 것이다.

군중 또한 그 어디에서보다 이곳 원형극장 속에 있을 때 개개인으로서 뿐 아니라 군중으로서 존경받을 수 있었으니. 그랬기 때문이었나,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이곳 아레나와 같은 원형경기장은 원래 민중이 저 자신에게 가장 깊이 경탄하도록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텅 비어 있으니 아무런 척도도 없고 이 건물이 큰지 작은지조차 가늠할 수 없다"라고.

황제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내휘둘렀던 교황도 결국 그가 그 될 수 있었던 것은 군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텅 빈 아레나,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수많은 원형 경기장을 내 두 눈으로 보고 내 두 발로 밟아 볼 것이지만, 텅 빈 그 속에 가득 찼던 군중, 이름 없이 하나의 점처럼 왔다가 사라져 갔던 그 위대하고도 영원한 권력인 군중과 민중들도 만나게 될 것이다.

괴테가 베로나 사람들을 향하여 가난하고 게으르고 지저분하나 그것이 오히려 온화하고 인간미 흐르는 밝은 면이 있다는 칭찬 반 놀림 반으로 말했던 도시 베로나. 그가 말했듯이 사람들의 어두운 측면도 존경할 만한 것처럼 역사의 어두운 면 또한 우리의 거울이니 무엇으로 더 말하겠는가?

/글·사진 시민기자 조문환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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