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약자에겐 여전히 치열한 삶의 현장
누구나 편하게 이용하게 될 날 왔으면

출퇴근 인파와 등굣길 학생들로 가득 차 송곳 하나 찔러 넣을 틈 없을 듯한 아침 시내버스. 정류장에 줄 섰던 사람들이 얼추 버스에 올랐는데 친구 덕선이가 아직 오지 않았다. "아저씨 잠시만요." 버스 기사는 잠시 더 문을 열어둔다. 30초쯤 지났을까, 덕선이가 후다닥 무사히 버스에 오른다.

포장 상태도 좋지 않은 굽은 길을 달리느라 버스가 몹시 흔들린다.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이 무리째 왼쪽으로 쏠렸다가 또 오른쪽으로 쏠린다. 그럴 때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정환이는 계집애인 덕선이가 걱정스럽다. 덕선이 뒤에 서서 버스 손잡이를 잡고 덕선이가 흔들리지 않게 꽉 버티고 섰다. 덕선이는 그저 고맙다.

버스에 여유가 생겼다. 정류장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타셨다. 빈자리에 앉았던 정환이가 냉큼 일어선다. 할아버지는 고맙다며 말한다. "학생 내가 가방을 들어줄게. 옆 학생도 가방 줘, 무거울텐데." 덕분에 정환이와 덕선이 어깨가 가벼워졌다.

1988년 쌍문동을 지나는 시내버스에서 있었던 이 일들은 수년 전 방송됐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중 몇 장면이다. 방송 당시 여러 시청자들을 추억에 잠기게 했던. 그래 그 시절 시내버스에는 낭만이 있었지, 하며.

이제 그 버스에 덕선이는 없다. 정환이도 없다. 취업을 하고 돈을 벌고, 경제가 급성장하는 사이 20대와 30대, 40대가 된 수많은 덕선이와 정환이는 저마다 승용차를 사서 직접 몰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전히 시내버스는 쌍문동을 오가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그 버스에는 누가 타고 있을까.

버스를 떠난 덕선이와 정환이에게는 롤러코스터 같은 멀미나는 등하굣길도 그저 추억이지만, 남은 할아버지에게 버스는 여전히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한데서 버스를 기다리는 것도, 여차하면 지나쳐가는 버스를 붙잡는 것도, 아픈 다리를 달래며 버스에 오르는 것도 힘겹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급히 출발하는 버스, 조금만 더디 내려도 닫혀버리는 문은 공포스럽기도 하다. 보통 한 차례 환승을 해야하는 것도 버겁다. 내린 정류장에서 다음 버스를 바로 탈 수 있다면 그나마 낫다. 길을 건너거나 수백 미터 걸어 다른 정류장으로 가야할 때도 있다. 이런 외출을 한 날엔 어김없이 밤새 다리와 허리가 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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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마저도, 몸이 불편한 장애인에게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자치단체마다 저상버스를 도입한 후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덕선이와 정환이가 여전히 시내버스를 타고 다닌다고 해도, 과연 버스에서 휠체어 탄 장애인과 마주치는 날이 있긴 했을까.

낭만 따위 됐고, 그저 안전하고 편하게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기를. 누구라도 그러하기를. 채 키가 크지 않은 어린 덕선이도, 휠체어를 탄 정환이도, 나이가 많아 허리 굽은 덕선이도, 양손에 짐을 든 정환이도, 임신을 한 덕선이도.

'교통약자'가 더이상 약자가 아니게 되는, 드라마 같은 날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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