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짝]소비 트렌드로 떠오른 '미닝아웃'
환경보호·페미니즘 등 정치·사회적 이슈에 자기 가치관 적극 표현

프랑스 사회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1929~2007)는 말했다. 대중사회를 '소비의 사회'라고. 그는 물건의 기능을 따져 제품을 사는 소비를 넘어 위세와 권위를 산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존재 방식을 소비로 표현하는 오늘, '미닝아웃(Meaning out)'이 소비의 계급에 순종하지 않겠다는 또 다른 대중문화로 자리 잡았다.

의미, 뜻을 말하는 '미닝(Meaning)'과 '커밍아웃(coming out)'이 결합한 미닝아웃은 자신의 신념을 소비행위로 적극적으로 표현한다는 신조어다.

◇환경 보호하는 소비자들 = 환경보호라는 보편적인 가치는 미닝아웃의 출발점이 되기 좋다.

주부 박현숙(34·김해) 씨는 환경에 관심이 많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서 시작됐다.

"육아를 시작하며 생활습관이 바뀌었어요. 자연스럽게 건강한 삶에 관심이 많아졌고 친환경 제품을 중시하게 됐습니다."

그녀는 꼼꼼하게 물건을 고르고 구매한다. 그렇다고 '친환경', '무농약', '유기농'이라는 글자에 현혹되지 않는다. 박 씨는 조금이라도 환경에 영향을 '덜'미치는 소비를 고려한다.

"얼마 전 가족 칫솔을 바꿨습니다. 천연 모소 대나무 칫솔인데 시간이 지나면 분해된다고 해요. 또 칫솔을 사면 제품값 일부가 빈곤층 아이들을 위해 쓰입니다. 지구 사랑도 실천하며 사회 공헌도 하는 기업이라 좋더라고요. 일회용품이 판치는 플라스틱 지구는 생각만 해도 싫잖아요?"

회사원 최은혁(32·창원) 씨는 조금 비싸더라도 자연을 사랑하는 의류기업의 티셔츠를 사 입는다. 셔츠 한 벌이 10만 원대이지만 현명한 소비라고 생각한다. 재활용품에 디자인을 더해 가치를 높이는 업사이클링(up-cycling)은 그가 추구하는 신념이다.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미닝아웃족의 친환경 머그컵. /이미지 기자

"환경에 끼치는 피해를 줄이는 데 앞장서는 의류브랜드예요. 많은 제품이 재활용 폴리에스테르 소재를 쓰고, 농약과 화학 비료를 쓰지 않고 기른 목화 순면을 사용합니다. 환경보호라는 핵심 가치에 충실하고 있어요. 매년 매출액의 1%를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쓴대요. 모든 옷을 그 제품으로 사 입을 수는 없지만 늘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또 최 씨는 최근 자신의 이름을 내건 나무가 삼척 산불피해 복구 숲에 심겼다.

"차나무 화분을 하나 사 키우고 있어요. 반려나무라는 기치를 내건 곳에서 구매했어요. 세상 모든 사람이 나무를 심을 방법을 연구하는 기업이에요. 스마트폰 나무 심기 게임, 크라우드펀딩을 통한 스타숲 등 개인의 노력이 지구 곳곳에 나무를 심게 합니다. 또 세월호 기억의 숲,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숲도 만들어요."

이들은 자신의 일상생활이 과연 무엇에 기반을 두는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깊어지면서 소비적인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프랑스 브랜드 디오르가 선보인 티셔츠. '우리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라고 적혀 있다. /디오르 홈페이지

◇"난 페미니스트" = 미닝아웃은 친환경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넘어 남들에게 잘 드러내지 않았던 정치적·사회적 신념 등을 적극적으로 알린다.

지난해 일어난 촛불혁명이라는 평화적 시위는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주장을 펼쳐도 된다는 분위기도 만들어냈다. 개인의 능동성을 자극한 하나의 문화축제처럼 꽃을 피웠다. 이 덕에 미닝아웃도 적극적으로 표출됐다.

슬로건 패션은 이를 잘 보여준다. 올여름 메시지를 새긴 '레터링 티셔츠'가 유행이라며 패션계가 앞다퉈 신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미 명품업계가 몇 해 전부터 사회 이슈를 결합해 유행을 선도한 것이다. 프랑스 브랜드 디오르의 첫 여성 디자이너는 자신의 첫 번째 디올 쇼인 2017 S/S 컬렉션에서 "세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오늘날의 여성을 재현하는 패션을 창조하고 싶었다"며 'We Should All be Feminists(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라는 문구가 적힌 레터링 티셔츠를 내놓았다. 국내에서 배우 김혜수가 입어 화제가 됐다.

타투는 더 적극적인 방법이다.

한글 글꼴 '안상수체'로 알려진 안상수(파주타이포그래피학교장·전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작가의 '생명평화무늬'는 생평과 평화를 뜻하며 타투이스트가 많이 하는 작업이다. 방송인 이효리의 '이효리 타투'로 알려지며 많은 애호가가 생명 존재의 근원을 몸에 새기고 있다.

노란 리본은 세월호 추모를 넘어서 하나의 상징이 됐다. '잊지 않겠다'는 추모의 온기는 옷과 가방, 자동차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굿즈(goods)로 계속되며 후원 문화로 잇고 있다.

세월호 노란 리본과 제주 4·3항쟁 70 주년 동백꽃을 단 가방. /이미지 기자

지난 2월 치러진 2018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노란 리본을 새긴 헬멧을 썼던 김아랑 선수의 행동도 신조어를 빗대어 표현하자면 미닝아웃이었다. 당시 정치적 표현, 올림픽 정신 등 많은 이슈와 논란을 낳았지만, 과거와 다르게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고 다양한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한 것을 알 수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해시태그 역시 미닝아웃이다. '#remember 0416'(세월호 추모), '#PrayForNepal'(네팔을 위해 기도하자), '#MeToo'(미투운동), '#우리는서로의용기다'(페미니즘 관련 해시태그) 등 다양한 주제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내 취향과 신념의 커밍아웃, 이젠 어렵지 않다.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 스티커를 붙인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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