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본질적 문제 근본을 추구해야
순수하게 '나'를 포기하는 데서 시작

6·13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지만 지방선거보다 더 뜨거운 것은 남북문제이고, 곧 있을 북미대화의 결과에 따라 지방선거의 판도도 달라질 것이다.

현실적으로 남북의 문제를 추동하는 세력과 이에 저항하는 세력이 팽팽하게 맞서 있기는 하지만 이 갈등은 함께 안고 가야지 수적으로나 힘으로 밀어붙인다고 풀릴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남북의 문제도 미·중·일·러가 얽혀 있는 세계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발상을 달리해야지 여전히 득실만 따지려 한다면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급속도로 변화하면서 정책의 수립이나 문제 해결 방법 또한 일방적이 아니라 여론에 귀를 기울여 이루어진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여론은 최선이 아니라 차선이고, 참고사항일 뿐이다. 왜냐하면, 여론은 순수나 정직보다는 언제나 정치적이고 음모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평화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를 여론으로 가름하려고 한다는 것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다. 누구라도 그것을 분별하는 일에 경거망동한다면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사회적 결정 과정이 한 개인에게서 여론으로 확대된 것은 큰 진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진보가 내용이 있는 진보가 되려면 개인의 책임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특히 우리가 모두 남북 관계의 정상화를 염원하고 있지만 나의 근본이 평화스럽지 않으면 속된 말로 나 자신이 겉과 속이 다르면 이것은 가짜, 거짓, 일시적인 평화이지, 참 평화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평화는 구호나 협상도 아니고, 누구 편에 서는가도 중요하지 않다. 평화는 저 멀리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이고, 내가 평화롭게 살면 그것이 평화인데 이것은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신약성서 안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야말로 평화입니다(엡2: 14)"라고 했는데 여기서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시고, 십자가는 하나님과 우리 그리고 너와 나와의 관계를 회복한 구원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평화라는 말은 '십자가 없이는 평화도 없다'는 말이다.

평화는 복잡하지 않다. 평화는 단순하고, 무식할 정도로 순수하게 나를 포기하는 것이고, 내가 순수하고 진실하면 너 또한 나와 같을 것이라고 믿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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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평화는 너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이고, 가정, 일터 어디서든지 나를 먼저 내려놓으면 거기가 평화의 시작이다.

남북의 평화도 나 먼저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들이 남과 북의 구석구석을 채워간다면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는 철책도 무너질 것이고, 이 강산 어디를 가나 서로 해치거나 죽이는 일이 다시는 없을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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