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대학가는 축제로 흥겹다. 꽃들이 활짝 핀 교정에는 축제기간 내내 울긋불긋한 현수막이 걸리고 무대가 설치되어 각종 공연과 놀이가 이어지니 저절로 마음이 들뜨게 되어 있다. 청춘이 부러울 따름이다.

대학 축제에서 빠지지 않았던 것이 학생들이 차린 주점이다. 학과마다, 동아리마다 주점을 차려놓고 선후배들이 며칠 동안 거나한 술판을 벌인다. 연구실에 있던 교수들도 사무실에서 일하던 직원들도 각기 아는 주점을 찾아 학생들과 어울린다. 저녁때 수십 개의 주점에 불을 밝히기 시작하면 대학 캠퍼스는 거대한 술집으로 변모하니 구경만 다녀도 장관이다. 청년기의 축제에 술이 빠져서야 싱겁다. 술을 곁들여야 대화도 깊고 감정교류도 짙다. 대학이 취업으로 가는 터널이 된 지는 오래다. 더 이상 대학은 자유와 진리의 공간이 아니고 생존을 위해 자신을 갈고닦아야 하는 훈련장이다. 그러니 학생들에게는 비상구가 필요하고 축제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의 시간이요, 당연히 술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올해부터 도내 대학축제에서 학생들이 주점을 차리지 않기로 했다. 주세법 위반이란 국세청의 권고를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하긴 했어도 사실 학생들이 주점을 운영하는 것을 놓고 말들이 많다 보니 타협책을 찾은 것이다. 그렇다고 축제 때 술이 사라지진 않을 것 같다. 돈을 모아 같이 사다가 나눠 먹으면 되기 때문이다. 뭔가 허술해 보인다.

사실 본질은 대학가에서 문화적 다양성이 사라졌다는 데 있다. 청년기의 특유한 자유로움과 창의성, 도전정신과 실험정신이 살아있는 문화적 행동이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상업적인 문화소비의 양태만 보일 뿐이다. 어디 주점뿐이랴. 축제의 백미인 전야제와 종야제 공연은 여느 상업적 공연과 다를 바 없다. 대학문화의 생산자이자 소비자로서 청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주점이 문제가 아니라 주점에 매달리게 되는 문화적 협소함이 문제다. 다양성 없는 대학 축제, 술이야 어디서 마시든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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