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전담시절 피고인에게 항상 하던 말
일반 변호 뒤 그렇게 말하지 않은 이유

며칠 전에 한 형사사건 피고인이 필자를 찾아왔다. 폭행치사로 기소된 사건이었는데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 신청을 했다. 그 피고인이 찾아오기 전에 사건 기록을 미리 읽어봤다. 필자가 지난 10여 년간 창원에서 국민참여재판 사건을 많이 변론해 온 경험상 그 사건은 국민참여재판을 해볼 만한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피고인은 공사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가난한 사람이라 선임료를 감당할 만한 능력이 없었고 국선으로 변호를 해야 했다.

필자는 이미 많은 국민참여재판 사건을 법원에서 주는 얼마 안 되는 국선료만 받고 변론해왔기 때문에 국선으로 사건을 처리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사건을 맡아오면서 그 피고인들에게 나라에 감사하라는 말을 해오곤 했었다. 억울하든 그렇지 않든 당신이 친 사고의 뒷수습 비용을 온전히 국가가 부담하는 것에 대한 감사함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에서였다. 이번 피고인에게도 같은 말을 하려고 하였는데 잠깐 멈칫하고는 그만두었다. 왜였을까.

필자는 형사 국선사건만을 전담하는 국선전담변호인을 창원지방법원에서 6년간 해왔다. 개인비용을 들여 변호사에게 의뢰할 만한 경제적인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이 매년 수백 명씩 찾아왔고 그 사람들을 위해서 열심히 변론을 해왔다. 그 대가로 법원에서 일정 급여를 받아왔다. 물론 이것저것 다 떼고 나서 받는 월급 같은 것이었다. 그때는 그렇게 받는 급여가 내 노동의 대가를 국가가 잘 쳐주어서 주는 것으로 생각하였고 그래서 피고인들에게도 그런 급여를 주는 국가에 감사하라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국선전담변호사를 그만두고 일반 변호사 생활 즉 자영업을 하게 된 지 3년째가 되고 나서는 국가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바뀌게 되었다. 내가 힘들게 영업해서 결과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리며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며 간신히 번 그 돈을, 이미 내 호주머니에 들어온 그 돈을, 여러 가지 명목으로 가져간다. 물론 법률적으로 정당한 근거가 있다. 하지만, 왜일까. 왜 이렇게 마뜩지 않은 걸까.

고대 중국 춘추시대(BC 770∼403년) 초기 제나라의 명재상이었던 관중은 인간의 본성을 잘 알고 있었다. "창고가 가득 차면(倉 實) 예절을 알게 되고(卽知禮節), 입고 먹는 것이 족하면(衣食足) 영욕을 알게 된다(卽知榮辱)". 백성이든 군주든 자기보존 욕구가 있고 이를 무리하게 잡으려고 들면 변태에 빠지게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관중은 자신이 보필했던 군주인 환공이 허세도 많고 세속적인 욕망도 강한 결점 많은 군주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그를 품어 춘추 1대 패자로 만들었다. 관중의 사상을 정리한 사상서인 <관자> '국축'에는 이런 말이 있다. "주면 좋아하고 뺏으면 분노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똑같다." 왜 이렇게 뻔한 말이 지금 나에게 폐부를 찌르며 다가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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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재판을 하겠다며, 나 때문에 피해자가 사망한 것은 도의적으로 책임은 지겠지만 법률적으로는 아니라며 억울함을 토하던 피고인에게 필자는 이렇게 말했다. "국민참여재판은 재판을 준비하는 변호인이 힘이 많이 드는 재판입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의 변호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필요는 없어요. 그저 오늘도 열심히 일하면서 나라에 세금을 내는 당신의 주위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세요."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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