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 20주년' 창원 대산미술관 김철수 관장 인터뷰
화가였던 형님 뜻 따라
운영 때로 힘에 부치지만
방문객 응원메시지 큰 힘

"땅값 오르면 팔고 나갈 줄 알았답니다. 10년이 흐르고 15년 정도 지나니 주민들이 제 진정성을 알아주더라고요. 처음 미술관을 열었을 때 받았던 조롱도 이제는 응원으로 바뀌었습니다."

창원 대산미술관이 올해로 개관 20주년을 맞았다. 김철수 관장은 지난 12일 개관 20주년 기념 특별 기획전 '한국 섬유미술의 흐름 100인전'을 열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라면수프 공장을 미술관으로 탄생시킨 그날을 이야기했다.

1998년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유등마을, 2년 넘게 방치된 건물이 하나 있었다. 문짝도 다 떨어져 나간 으슥한 곳이었다. 김 관장은 당시 살던 아파트를 팔고 융자를 내 버려진 공장을 경매로 사들였다.

"형님이 화가셨어요. 마흔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신은 동생에게 후일 가난한 화가를 위해 살라고 당부하셨죠. 저는 늘 형님 몫도 살아내야 한다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예술로 인생을 의미 있게 살고 싶었지요."

부모님을 여의고 춥고 배고팠던 10대, 돈벌이를 위해 일찍 간 군대, 대학 대신 선택한 취업 등 고난을 겪던 시절은 그에게 한 번뿐인 인생 가치있게 살라고 말했단다. 그래서 늘 동경하던 미술도 제대로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1983년 창원대 미술학과에 입학하고 2년 후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술학을 배웠다. 1987년 그는 창원문성대 산업디자인과 교수로 재직한다. 그가 대산미술관을 섬유미술로 채운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군 전역 후 돈벌이하려고 취직한 곳이 일본 기모노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그는 자수 밑그림을 그렸다. 또 한일합섬 마산공장에서 직물 디자인을 도맡았다.

김철수 관장이 '한국 섬유미술의 흐름 100인전'에 내놓은 자신의 작품 '다산 시리즈' 앞에 서 웃고 있다. /이미지 기자

김 관장은 대산미술관을 운영하며 작품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냈다. 2000년대 섬유조형 작품 '다산 시리즈'를 내놓고 지역에 섬유예술을 알렸다. 대산미술관은 지금껏 섬유조형전 22회, 기획초대전 122회, 문화예술교육 990여 회를 기록하고 2011년 시작한 낙동강 다원예술제를 매년 열며 창원 제1호 사립미술관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모래를 직접 퍼 땅을 고르고 미술관을 직접 지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오롯이 손수 지켜나가고 있지요. 사실 힘에 부칩니다. 학예사(10개월), 도슨트(9개월) 인력 지원(자부담 50%)을 받고 정부나 문화기관의 사업을 따와 전시를 열고 있습니다. 운영비가 턱없이 모자라지요. 하지만 이따금씩 이어지는 지역 후원과 많은 이들의 격려가 오늘도 꿈과 행복을 만들라고 하는 것 같아요."

김 관장은 그동안 미술관에 다녀간 관람객들이 적어놓고 간 방명록을 가장 아낀다. '나는 가끔 이 섬을 찾고 싶다', '멋진 작품 덕에 치유합니다'처럼 이름 모를 많은 이들의 메시지가 그에게 큰 힘이 되고 위로라고.

김 관장은 오는 8월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 대산미술관에 더 매진하며 문화 소외지역에서 예술교육을 펼치고 싶단다. '한국 섬유미술의 흐름 100인전'이 끝나면 오는 9·10월 예정된 섬유미술의 대가를 알리는 초대전을 치를 계획이다.

지역에서 보기 드문 섬유미술을 지속적으로 소개하고 섬유로 창작활동을 하는 작가들의 유일한 창구가 되는 대산미술관. 탁 트인 대산벌과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사이에 자리 잡아 한국섬유미술을 생생히 담아내는 곳. 섬유예술의 한 획이 창원에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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