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저상버스 장애인 동승기
운행 적고 각종 장치 부실, 행정 형식적 도입 되풀이
교통약자 이용 불편 여전

교통약자 이동권 보장을 위해 지자체마다 도입한 저상버스가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형식적인 운행에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실적 늘리기' 차원에 그친 탓이다.

지난 8일 뇌병변 1급 장애인인 김정민(49·국가인권위원회 인권강사) 씨와 함께 양산시 북정동에서 장애인복지관이 있는 중부동까지 128번 저상버스 운행 실태를 직접 점검했다.

현재 양산지역은 전체 41개 노선 가운데 13개 노선에 저상버스를 운행한다. 예비와 직행버스를 제외한 전체 운행버스 149대 가운데 저상버스는 45대다. 비율로 따지면 30% 가까운 수치지만 특정 구간에 집중된 노선과 분산 배치 탓에 여전히 저상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나마 북정동에서 장애인복지관으로 가는 구간은 128번과 128-1번 2개 노선에 저상버스 11대가 배치돼 상황이 나은 편이다.

길을 나선 김 씨에게 첫 관문은 버스 타기다. 활동보조인이 함께했지만 버스에 오르기가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날도 첫 버스는 리프트가 고장 났다며 김 씨를 그냥 지나쳤다. 활동보조인이 기사에게 사정을 설명했지만 난색을 보이며 언제 올지 모를 다음 버스를 이용하라는 말만 남긴 채 무심히 김 씨를 스쳐갔다. 김 씨와 활동보조인은 정말 리프트가 고장 난 것인지 아니면 귀찮아서 그런 건지 알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저상버스 리프트 고장이 잦은 데다 높은 인도 턱에 맞추기 어려워 버스 기사들이 장애인을 꺼리는 현상은 저상버스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사진은 장애인 김정민 씨가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모습. 리프트와 인도 높이가 맞지 않아 불안하기만 하다. /이현희 기자

김 씨는 "10여 년 전 처음 양산시가 저상버스를 도입하면서 장애인 이동권을 확보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갈수록 불편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심지어 대놓고 욕설을 들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첫 버스를 보내고 30분가량 기다린 끝에 다른 저상버스가 도착했다. 다행히 리프트가 작동하는 버스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류장이 말썽이다. 부스가 설치된 정류장은 인도와 차도 사이 간격이 좁아 휠체어가 지날 수 없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이 편히 쉬어가는 의자 역시 장애물일 뿐이다. 정류장을 지나 버스를 세운 기사는 인도 턱과 리프트 높이를 맞추려고 몇 번이나 작동을 반복했다. 그만큼 운행시간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

버스 이용객들 눈치를 보며 겨우 올라탄 김 씨를 기다리는 것은 장애인을 위해 마련된 공간을 메우고 있는 의자다. 접이식 간이의자가 자리를 차지한 탓에 김 씨는 가는 내내 흔들리는 통로에 불안하게 있어야 했다. 접이식이라고 하지만 휠체어에 앉은 장애인이 의자를 접고 안전띠를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운행 시간에 쫓기는 기사가 이 일을 대신 해줄 리 만무하다. 김 씨가 자리를 잡자 이내 버스는 다음 정류장으로 향했다.

통로 한가운데서 쏟아지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위태로운 시간이 흘렀다. 정류장에 설 때마다 김 씨를 피해 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이 오히려 불편해 보인다.

목적지에 도착하고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통로가 좁아 휠체어 방향을 한 번에 돌리지 못해 몇 번을 움직이고서야 내릴 수 있었다.

저상버스의 형식적인 운행도 문제지만 최근 많은 장애인이 이용하는 전동휠체어의 크기와 무게를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도 저상버스가 제 구실을 못하는 이유다. 정부 보조 사업으로 전동휠체어 보급이 늘어났지만 저상버스는 예전 수동휠체어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리프트 고장이 잦은 이유에 대해서도 오래전 도입한 저상버스 리프트 대부분이 150㎏까지 견딜 수 있도록 제작돼 보통 전동휠체어 무게인 100∼130㎏을 견디지 못한 탓이라고 설명한다. 성인 남자 몸무게를 70㎏으로 보더라도 사람이 탄 휠체어 무게를 리프트가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버스업체가 낡은 리프트 수리에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 것도 이유다.

휠체어 크기가 커졌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좁다. 그나마 장애인 공간도 일반인을 위한 의자로 채워진 경우가 다반사다. 어디에도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위한 공간은 없다.

양산은 2010년 이전에 저상버스 25대를 도입한 후 2011년 12대, 2012년 4대, 2013년 2대, 2017년 2대를 추가했다. 전동휠체어 이용이 늘어나기 전 도입한 버스가 대부분인 셈이다.

이에 대해 양산시 관계자는 "교통약자 이동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도록 인도와 도로 등 버스이용환경을 개선하고 업체와 기사 교육을 강화하겠다"며 "올해 도입 예정인 저상버스라도 전동휠체어 이용을 고려한 신형으로 구매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