켜켜이 쌓인 시간의 결을 따라

고성(固城)의 견고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넉넉한 품이 기다린다. 소가야 도읍지였던 고을은 끝도 없이 아늑하다. 단단한 성곽이 지켜준 덕분일까. 그윽한 향을 품은 장산숲, 조선과 일본의 건축양식이 만난 허씨 고가, 풍성하게 솟은 송학동 고분군 등 역사의 나이테가 그대로 드러난다. 고성오광대 몸짓은 선연하고, 고성농요 가락은 풍성하다. 산과 바다, 들과 하늘을 모두 품은 고성의 매력은 켜켜이 쌓은 전통에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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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허씨 고가(마암면 장산길 21) = 장산숲을 등지고 낮은 오르막길을 오르면 보이는 고택. 조선 말기 지어진 한옥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어떻게 변모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솟을대문과 사당은 아주 전통적인데 반해 바깥사랑채는 일본식 평기와로 만든 목조건물이다. 허태영(60) 주인장이 매일 쓸고 닦아내도 세월은 집 구석구석 뿌리를 내렸다. 고사한 200년 된 매화나무에서는 절로 와송이 자란다. 밥 짓는 냄새는 어쩔 수 없더라도 굴뚝 연기는 멀리 내보이지 않으려고 했던 허 씨. 유독 집의 풍경소리가 멀리까지 퍼진다는 고택이다.

고성 마암면 장산리 허씨 고가. 한옥과 일본식 주택이 섞여 있다. /이서후 기자

(4) 장산숲(마암면 장산리 230-2) = 얼마나 아름답기에, 9년 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공존상을 받았을까. 조선 초기 김해 허씨 문중이 조성했다고 전해진 숲은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이었다. 크지 않은 숲이지만 들어서는 순간 반짝거리는 연둣빛과 윤슬에 눈이 시리다. 느티나무, 서어나무, 긴잎이팝나무 등 200여 그루가 서로 맞대며 연못 가운데 작은 정자를 향해 뻗어있다. 몇 해 전 배우 박보검과 김유정이 주연한 KBS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을 촬영해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장산숲. 녹음이 우거졌다. /이서후 기자

(5) 송학동 고분군(고성읍 송학리 470) = 고성여객자동차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곳, 그러니까 고성읍 중심에 가야시대 고분 8기가 밀집되어 있다. 1999년 동아대학교박물관의 발굴조사로 일본 전방후원분과 다른 무덤이며 언덕 위를 평평하게 고르고서 한 켜씩 다져가며 쌓아 올렸다고 밝혀졌다. 오늘도 고성은 오래전 소가야였다고 말하는 곳. 왕들의 무덤 사이 샛길을 산책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오묘하다.

송학동 고분군. /이서후 기자

(6) 고성박물관(고성읍 송학로 113번길 50) = 송학동 고분군 발굴조사 현장에서 토기와 금동귀걸이, 유리구슬 등 1000여 점이 세상 밖으로 드러났다. 오랜 침묵을 깬 소가야의 고성이었다. 이를 보존하려고 건립한 박물관은 공룡의 시대부터 시작한 유구한 역사를 소가야, 서부 경남의 해안도시로 잇는다. 소가야 토기 모양을 빗댄 건물을 보노라면 아득한 역사가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고성박물관 전경. /이서후 기자

(8) 고성탈박물관(고성읍 율대2길 23) = 이도열(71) 탈 제작 기능이수자가 탈 전시품을 고성군에 기증하며 개관한 박물관. 낙동강 서쪽 지역의 탈놀음 '오광대'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다섯 방위의 악귀를 쫓고 복을 기원하는 춤을 추는 오광대는 말뚝이를 내세워 사회 부조리를 비판하고 풍자한다. "양반 나오신다아! 개잘량이라는 '양'자에 개다리소반이라는 '반'자 쓰는 양반이 나오신단 말이오"라고 말하는 말뚝이처럼 탈을 쓰고 춤을 추자.

고성탈박물관에서 탈을 직접 써 본 문화부 기자들. /이서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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