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이후 계승 끊긴 '불교 인형극' 만석중놀이
1997년 보존회 설립으로 공연·연구 복원 '본격화'
새로운 전승 방향 마련, 무형문화재 등록 '과제'

만석중놀이라고 들어보셨는지요? 고려시대 시작됐다는 우리나라 전통 그림자 인형극입니다. 하지만, 꼭두각시 대중은 물론 연구자들에게도 그리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이 놀이가 지금 거창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거창 역사가 이 놀이와 관련이 있는 건 아니고요. 만석중놀이보존회 대표인 한대수 씨가 거창에 자리를 잡고 있어섭니다. 서울에서 만석중놀이를 처음 접한 그는 자신이 속한 거창 우리문화연구회 회원을 중심으로 보존회를 결성해 지금까지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만석중놀이 전승 단체입니다.

◇장작불에 비친 그림자

만석중놀이는 시작한 시기를 대체로 고려 시대로 잡습니다. 석가탄신일인 음력 4월 8일 연등회나 각종 사찰 행사 때 공연되었다고 합니다. 글을 모르는 대중에게 부처님 말씀을 쉽고 재밌게 전하려고 만든 것이라 여겨집니다.

불교가 쇠퇴한 조선시대에는 남사당을 중심으로 놀이가 이어졌습니다. 일제 강점기까지도 이 놀이가 공연되었습니다. 1929년 동아일보 기사에 '음력 4월 8일 남대문 밖 남묘에서 올해도 대규모로 추천놀이를 거행하는데 이 중 고려로부터 유명하던 망석중이 놀이도 있어 준비에 분주하더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시기 이후로는 전승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만석중놀이 공연 영상 캡처. 십장생 인형 그림자와 오른쪽 만석승 그림자. /만석중놀이보존회

대체로 석가탄신일에는 연등 행사를 많이 했는데 이와 곁들여 만석중놀이를 공연했습니다. 그림자 인형극이라고 해서 무언가 재밌는 것이겠구나 싶지만, 대사가 하나도 없는 무언극인 데다 내용도 사실 진지하고 심오합니다. 공연 방식은 이렇습니다. 너른 마당 한쪽에 커다란 막을 설치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스크린이죠. 그 뒤에 화톳불(장작불)을 놓습니다. 그리고 막에 종이 인형을 갖다 대면 그림자가 생기겠지요. 인형은 노루, 사슴, 잉어, 용 같은 것들을 연처럼 종이와 대나무를 엮어 만든 것을 썼습니다. 나무로 만든 만석중만이 유일한 입체 인형입니다.

만석중은 팔다리를 끈으로 연결해 잡아당기면 몸통과 부딪혀 딱, 딱 소리를 냅니다. 나머지 인형은 사람들이 들고 막 뒤편에 갖다 대고 움직이는 방식입니다. 화톳불에 따라 일렁이는 그림자가 아마도 묘한 느낌이 들었을 겁니다.

현재 공연은 무대 조명을 쓰기에 이런 맛은 덜합니다. 그리고 배경음악으로 지금은 불교 음악인 회심곡을 쓰고 있습니다만 고려·조선시대에는 어떤 음악을 썼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한대수 만석중놀이보존회 대표. /이서후 기자

◇놀이의 부활

명맥이 끊긴 만석중놀이를 현대에 부활시킨 이가 심우성 한국민속극연구소 소장입니다. 심 소장은 1966년 한국민속극연구소를 설립하고 민속극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연구소 부설 극단 '서낭당'을 창립해 직접 공연도 꾸준히 했습니다. 그는 만석중놀이 재현을 위해 10년 동안 자료를 찾고 사람들을 만나 증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1983년 4월 24일 서울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처음으로 만석중놀이 발굴 발표를 합니다.

만석중놀이가 최초로 등장하는 현대 문헌은 1933년 5월 18일 조선어문학회가 발간한 김재철의 <조선연극사>입니다. 이 책은 원래 경성제국대학 조선문학과에 다니던 김재철의 학부 졸업논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이렇게 체계적으로 정리한 문헌이 없었기에 학계의 주목을 받습니다. 그래서 졸업 후 <동아일보>에 연재를 하고 조선어문학회 총서로 출판도 한 거죠. 안타깝게도 김재철은 27살에 세상을 뜨고 맙니다. 책은 크게 가면극, 인형극, 구극·신극 세 부분으로 돼 있습니다. 이 중 인형극 항목에서 꼭두각시극에 이어 만석중놀이를 별도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림까지 그려 구체적으로 설명을 했지만, 내용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심우성 소장은 1970년대부터 김재철의 연구를 다시 정리하고, 만석중놀이를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의 증언을 수집하고 다녔습니다. 특히 통도사 경봉 스님을 만난 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스님은 만석중놀이를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1980년 실제로 이 극을 재연하기로 하고 나름 형식을 만들어서 스님 앞에서 시연을 하니 꽤 비슷하더란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서야 1983년 최초 공연을 한 거지요.

만석중놀이보존회 한대수 대표는 1987년 거창 우리문화연구회를 창립하는 등 원래도 거창 지역에서 민속 문화 활동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1994년 한국민속극연구소 부설 극단 서낭당에 입단하면서 만석중놀이를 접합니다. 그리고 1996년부터는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가 이끌던 공연에 직접 참여를 합니다. 이후 공연자 모집이 어려워지자 한 대표는 자신이 만든 거창 우리문화연구회를 중심으로 1997년 만석중놀이보존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심우성 소장이 복원한 형식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인형 그림자 조작을 시연하는 모습. /이서후 기자

한 소장은 현재 매년 열리는 거창 아시아 1인 연극제를 통해 만석중놀이 공연을 합니다. 때로 국내 유명 사찰이나 외국에 초대되기도 합니다.

◇전승을 위해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공연 자체는 사실 재미가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우리나라 유일한 전통 그림자 인형극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그래서 이 놀이를 어떻게 대중들이 즐길 만큼 멋지게, 재밌게 발전시켜야 할까 하는 게 보존회가 안은 숙제입니다. 또 하나, 유일하게 전승되는 전통 그림자극이지만 아직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석중놀이 보존을 위한 국가적인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힘겹게 공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는 충분히 인정받고 있습니다. 내로라하는 문화재 관련 권위자들이 지난해 말과 올해 4월 두 번에 걸쳐 만석중놀이 학술적 정립을 위한 심포지엄을 연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만석중놀이에 쓰이는 각종 인형. /이서후 기자

※참고문헌 : <조선연극사>(김재철, 동문선, 2003) <만석중 놀이 학술제> 자료집(2017년 12월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거창에서 만석중의 갈 길을 묻다> 자료집(2018년 4월 거창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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