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님 지음
작가 키워 준 조부모 이야기
차분한 문장 속 '치유의 힘'

지난달 30일 <나의 두 사람>이 1판 1쇄를 냈다. 아주 처음 찍은 책이 시중에 풀렸다. 1988년생 김달님 작가가 차분히 눌러 쓴 문장이 하나둘 모여 책이 되었다.

문장은 1939년생 김홍무 씨와 1940년생 송희섭 씨를 기록한다. 두 사람은 작가의 직계존속, 할아버지와 할머니다. 작가에게는 마음의 부모다.

"나는 내 부모가 예감하지 못한 시기에 갑작스레 세상에 오게 됐다. 너무 이르게 온 나머지 그들은 누구의 부모보다 누구의 자식인 게 더 어울리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쩔 줄 몰라 겁먹은 그들은 부모에게 갓 태어난 아이를 맡겼다. 아마 그들에게는 부모가 되기 위한 시간이 더 필요했을 것이다."(5쪽)

삶이 장편이라면, 작가의 기록은 단편이다. 세 사람이 서로의 바깥이 되었던 일상의 순간을 잡아내어 글로 썼다. 글은 작가가 썼지만, 토대가 되어 준 시간은 세 사람이 함께 채웠다. 그 기억을 작가는 담담하게, 솔직하게 문장으로 옮겼다.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들이다. 여러 번 들어서 이제는 외우는 레퍼토리가 됐다. 분명 내가 존재했던 시간들이지만 정작 내 기억 속엔 없는 장면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한때의 내가 그들의 기억 속에만 살아 있다는 게 신기하다. 아이의 시간은 부모의 기억에 빚져 흐르나 보다."(25쪽)

작가가 고민한 문장은 쉽게 읽힌다. 그러나 여간하여서는 한 장을 넘기는 일도 쉽지 않다. 연상을 유도하는 힘이 작용해서다.

작가의 기록은 소중한 사람과의 기억을 상기시키고, 아물지 않은 상처를 쓰다듬는다.

차마 하지 못한 말이 드디어 입안에서 바깥으로 새어나오고, 상처는 작가의 문장을 통하여 치유된다.

"내가 최선을 다해 너를 키울 거야"라는 할머니의 말에 작가가 "나도 엄마가 될 수 있다"고 나아지는 것처럼.

작가와 그의 두 사람이 채운 시간은 소시민의 삶과 어떻게든 맞닿는다. 겹치는 추억이 하나쯤은 존재한다.

기억의 결은 달라도 의미는 유사하다. 책의 한 장을 넘기는 일이 쉽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은 까닭이다.

1940년생 송희섭(왼쪽) 씨와 1939년생 김홍무 씨. 두 사람은 부부이자, 책 <나의 두 사람>을 쓴 김달님 작가에게는 마음의 부모다. /어떤책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결국, 그것을 깨닫는 과정이 삶 아니겠나.

"언젠가 그들이 영원히 집을 떠나게 된다 하더라도 그 집은 언제나 우리 셋, 우리들의 집"이라는 문장처럼 작가의 기록 안에서 두 사람은 영원히 두 사람이다. 영민한 손녀의 문장 덕분에 두 사람은 영원한 삶을 얻었다.

"돌이켜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상하게 그들 앞에선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자식이 된다. 그 두 마디를 제대로 전하지 못해서 굳이 긴 글을 적었다. 그리고 이제는 어렴풋하게 알 것 같다. 그들이 나의 사진을 남겨 주었던 것처럼, 어쩌면 그들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은 나의 몫이라는 걸. 더 늦기 전에 말할 수 있어 다행이다."(217쪽)

늦기 전에 기록할 것. 후회하면 너무 늦다.

어떤책 펴냄, 223쪽, 1만 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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