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미 테러도 당해봤다는 홍 대표 '입'
천박해진 '동심'…아동문학이라도 읽길

읽거나 들으면 마음이 자꾸 가난해지는 글과 말들이 있다. 특히 '왕년'(往年)이란 명사가 섞일 경우가 그렇다. 왕년은 이미 지나간 해를 뜻하는데 '왕년에', '왕년의'의 꼴로 쓰인다. 모처럼 이 왕년이란 말을 들었다. 누군가는 "허허허"하고 웃었다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왕년이란 말을 쓴 사람의 인생이 참 가엾고 불쌍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역시 문제는 그놈의 입이다. 아니, 이건 입의 문제가 아니라 '동심'의 문제다.

"나는 왕년에 사시미 테러도 당했다." "주먹 갖고 하는 놈은 안 무섭다." 9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입을 언론에서 읽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주먹 폭행'을 당한 국회 본청 앞 계단을 지나가다 한 소리다. 홍 대표는 이날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김동철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를 만나 악수를 청한 뒤 이같이 말했다. 홍 대표는 이어 자신은 "석궁테러도 당해봤다"고 강조하며 "그래서 그런 놈은 전혀 안 무섭다"고 덧붙였다. 지난 5일 김성태 원내대표가 폭행당한 현장 인근을 지나다 자신의 '왕년'을 얘기한 것이다. 참 가엾질 않은가. '사시미'에다 석궁까지…. 홍 대표의 말에 김동철 원내대표는 "허허허"하고 웃었다. 과연 이 웃음 속에 뭐가 들어 있을까? 역시 문제는 천박해진 '동심'이다. 해서, 방귀깨나 뀐다는 이 나라 정치인들에게 아이들의 마음과 그 마음을 담은 아동문학을 권한다.

아동문학이란 아이들에게 배달되는 어른의 마음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보는 것이다. "아이들이란 정말 바보 같은 짓을 합니다. 몇 번이나 서로 울리기도 하지만, 마지막에는 손을 잡고 돌아갑니다." <구리와 구라> 시리즈의 '나카가와 리에코'의 말이다. 좋은 작품을 읽고 나서 우리가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내가 나를 벗어났다는 느낌이다. 그것은 내가 다른 사람의 관점 속으로 들어갔을 때 생기는 무형의 감정이다. 이때의 감정 혹은 기분은 특별히 정서적이거나 지적인 행위가 아니라 할지라도 경이로운 무엇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자신을 벗어나 다른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런 게 사랑이고 진심이며 문학이다. 아까운 지면에 왜 이런 문장을 늘어놓는 것일까.

그렇다. 명색이 제1야당 대표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 때문이다. 말은 세상의 모든 것 그리고 우리 삶의 모든 것, 즉 추한 것, 아름다운 것, 나아가 무섭고 혐오스러운 것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하질 않은가. "어린아이는 사람이 태어나면서 갖게 되는 최초의 모습이며, 동심(童心)이란 사람이 처음 지니게 되는 마음의 최초 모습이다. 무릇 최초로 지니게 된 마음을 어찌 잃어버릴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어찌하여 사람들은 갑자기 동심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일까. 모름지기 그 시작은 듣고 보는 것이 눈과 귀로 들어와 사람 마음에서 주인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동심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이탁오, <분서(焚書)> '동심설') 이탁오의 책 제목 '분서'란 '태워 없애야 할 책'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글에서는 분구(焚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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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우리는 최고 야당 대표하는 사람의 입에서 '사시미'가 나오는 이런 세상을 만난 것일까. 그러나 나는 내가 세상의 모든 인간들 가운데 가장 행복하다고 믿을 것이다. 그것은 지금 내 안의 어린아이가 어떻게 시작하고, 무슨 책을 읽고 어떤 생각으로 커지고, 어떻게 앞으로 나가고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보는 현실이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동심'을 실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아이에서 진정한 어른이 된다. 그러나 언제나 아이처럼 울 것! 어떤가? 우리는 언제나 아이처럼 진심을 다해서 울었던가. "나는 왕년에 사시미 테러도 당했다"며 "주먹 갖고 하는 놈은 안 무섭다"는 그는 울 줄이나 알까?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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