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위장쇼" 운운은 왜곡일뿐
도지사 예비후보들 '상호존중' 보기 좋아

어버이날을 앞두고 온 가족이 모처럼 모였다. 일곱 살 된 조카가 "고모, (사촌)형이 나한테 나쁘게 했는데, 쳐다보지도 않고 사과도 안 해요"라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조카는 요새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있다. 같이 놀고 싶어하는 동생이 귀찮게 굴자 살짝 때렸나 보다. 동생에게 얼굴 쳐다보고 사과하라고 했더니 두말하지 않고 "미안해" 한다. 그 모습이 기특해 내 마음마저 훈훈했다.

'ㅇ ㅇㅈ(어, 인정)!'

급식체(급식을 먹는 세대, 즉 10대들이 자주 사용하는 문체라고 해서 붙은 명칭)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인정? 어 인정!'이라고 말할 줄 아는 10대들이 부러웠다. 자신의 처지나 잘못을 알고 인정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가벼우면서도 당당한 솔직함이 10대라서 가능한 걸까.

나이가 들수록 '인정'하는 게 쉽지 않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그 말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확실히 그렇다고 여기거나, 법률용어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어떤 사실의 존재 여부나 옳고 그름을 판단해 결정할 때 쓴다.

이렇게 거창한 뜻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인정할 게 얼마나 많은가. 어린 조카처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 '빠른 사과'가 이뤄진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 외모나 가족·고향(지역) 등도 인정하고 나면 속 편하다. '나는 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걸까?' '저 사람은 대체 왜 저러는 걸까?' 등 하루에 수십 번 되뇌는 이런 질문이 얼마나 피곤하고 피폐하게 만드는지 알면서도 인정하기 어렵다. '어쩔 수 없지' '저 사람은 원래 저래'라고 인정하면 그만인데, 대부분은 성에 차지 않는다.

인정과 이해는 다르다. 이해는 사리를 분별해 해석하는 것, 깨달아 앎 또는 잘 알아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이해는 하지만 인정할 수 없는 일이 많다. 인정한다는 게 그만큼 더 무거운 의미일 테다.

이해하기 어려워도 인정해야 하는 것도 있다.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 드러나 촛불혁명이 일어났고, 헌정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과 정권교체가 이뤄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4·27 남북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평화·화해 분위기가 조성된 것도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이를 '정치보복쇼'라거나 '남북위장평화쇼'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사실을 부정하는 건 왜곡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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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서울에서 열린 김경수(더불어민주당)·김태호(자유한국당) 경남도지사 예비후보 초청 관훈클럽토론회를 지켜보면서 토론 이용의 질을 떠나 서로 견제구를 날리면서도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려는 태도가 보기 좋았다. 이러한 태도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경남의 정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데 역할 하기 바란다. 혹자는 경남도지사 후보들이 왜 서울에서 토론을 하느냐고 쓴소리 했지만, 전국적인 관심이 쏠린 이번 선거에 도민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괜히 어깨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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