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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휴전은 평화가 아니다

읍참마속·진검승부 등 용어 폭력성 담아
전쟁 대비한 체제 완전히 녹이고 없애야

정문순 문학평론가 webmaster@idomin.com 2018년 05월 09일 수요일

정치 뉴스나 칼럼에서 자주 쓰는 관용어 중에 '읍참마속'이라는 말이 있다. 구글에서 검색해보니 5만 5000개 문서가 검색되었다. 알려진 대로 이 용어는 소설 삼국지에서 촉나라 제갈량이 그가 총애하는 장수 마속이 큰 싸움에서 지자 눈물을 머금고 책임을 물었다는 일화에서 따왔다. 전투에서 진 장수가 군율에 따라 상관에게 처형되는 일은 근대 이전에는 흔한 일이었다. 삼국지만 봐도 그런 경우는 얼마든지 나온다. 그런데도 이 고사가 유독 그렇게도 유명한 데는 제갈량이 사람 보는 눈이 없다는 비판을 감추게 하고 도리어 그를 사사로운 정에 연연하지 않은 인물로 부각하려는 후대 보수주의 사가들의 꼼수가 숨어있다. 이는 한나라 황실의 핏줄이라는 유비 집단이 세운 촉나라가 훗날 사마광 같은 유학자들에게 삼국 중 정통으로 대접받았던 사정과 관련이 무관하지 않다.

각설하고, 나의 관심은 공적인 일의 무거움과 사적인 관계의 가벼움을 대비하는 용어가 없지 않은데도 하필 피 냄새 진동하는 저 말이 즐겨 쓰이느냐이다. 어쩌면 아무리 군율에 따른 죽음이라도 나름대로 억울함이 있었을지 모르는 2000년 전 중국의 장수를 왜 자꾸 소환할까. 서른아홉 생애에서 자신이 오직 동정받지 못할 죽음으로만 기억된다면 더 억울하지 않을까. 전투에서 졌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났던 시대의 일이 21세기 어떤 나라에서 즐겨 언급되는 것은 실로 기이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따져봐야 할 일이다. 근대 이전의 처형은 밀실에서 집행되지도 않았다. 그때는 사람을 죽이는 국가권력의 권위를 한껏 드러내려고 공개적으로 치러졌고 시신도 능욕을 당해야 했다.

들어서 매우 기분 나쁜 말 중에 '진검승부'라는 것도 있다. 일본 무인들은 훈련할 때는 나무칼로 상대와 겨루지만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실제 전투에서는 잘 벼린 무쇠 칼을 든다고 한다. 밥맛 떨어지고 몸서리치게 잔인한 이 말을 아무 생각 없이 쓰는 사람의 심리는 정상이라고 할 수 없거니와, 이따위 말이 널리 쓰이면서 황폐해지고 너덜너덜해질 언중의 심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삽질'이라는 말은 또 어떤가. 군대 면제자로서 나는, 군인이 군대에서 '총질'을 하지 않고 허구한 날 '삽질'하는 데나 동원되는 것을 자조하는 표현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몰랐다. 살상 행위가 군인 본연의 역할이고, 부서진 것을 다듬어 새로 짓는 토목 공사가 쓸데없는 일이라는 시각을 나는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정전 체제 60년을 살아오면서 사람들도 그것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정전, 휴전, 냉전, 저강도전쟁은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언제든 본격적인 전쟁으로 돌입할 수 있으며 어디까지나 전쟁을 염두에 둔 준전시체제일 뿐이다. 남한의 국가경쟁력이 북한에 뒤졌던 1970년대만 해도 남북대결 구도를 정상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남북이 화해하지 말고 이대로 살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건 준전시체제에 피폭된 상태에 적응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도 문제없지 않으냐고 생각한다면 폭력의 분별력도 잃어버린 자신의 감수성을 돌아볼 일이다. 그런 사회는 온갖 '갑질'이나 여성에 대한 폭력이 번창할 수 있는 자양분을 제공한다. 우리 사회는 폭력에 순응하거나 둔감한 것을 정상이라고, 폭력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그것에 저항하는 감수성을 여리고 못난 것이라고 가르쳐왔다. 이 모두 전쟁을 대비한 체제가 낳은 괴물들로서, 괴물들의 일그러진 심성은 다시 정전체제를 떠받치는 악순환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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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싫어한다면 전쟁을 대비하는 체제도 녹이고 없애야 한다. 가짜 평화에는 이제는 기만당하지 말고, 남한 주민들의 감수성 복원을 위해서라도 평화를 맞이해야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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