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 균형 일컫는 '워라밸' 지수 하위
비정규직·저임금 구조에선 꿈같은 얘기

삶이 시시하다고 느껴지는 날의 하오에는

밥보다는 짜장면을 사먹자.

흙의 뿌리에 올망졸망 매달려 오는

크고작은 구형의 황록색 감자알들처럼

내게 매달려 오는 강아지같은

황인종의 어린 새끼들과 처를 거느리고

응달을 찾는 낙타처럼 타박타박 걸어서

변두리 중화반점 식탁에 둘러앉아

외로움을 씹듯이 불은 짜장면이라도 씹어보자.

대학에 다닐 때 학교 아래 있던 중국집 식탁에서 만난 시다. 향토장학금 타온 선배나 친구와 함께 가끔 짜장면 특식을 시켜놓고 우리는 장석주 시인의 '삶에 대하여'를 씹었다. 암울할 것 같은 미래를 부정하듯이. 그러나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취업문은 좁아졌다. 그래도 이래저래 살아남아 식구들과 외식이라도 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건 다행이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일에 치여 사는 삶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일 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워라밸 지수를 보면 우리나라(4.7)는 조사 대상 38개국 중 35위에 처져 있다. 10에 가까울수록 일과 삶의 균형도가 높다. 2016년 기준 한국 연간노동시간(2069시간)은 끝에서 3위에 머물 정도다. 이렇게 일을 많이 하는 나라에서 워라밸은 너무 멀다.

장시간 노동을 끊어야 한다. 정부는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을 단계적으로 시행한다.

7월 1일부터 300인 이상, 2020년 1월 1일부터 50~299인, 2021년 7월 1일부터 5~49인 사업장에 적용된다. 저녁 있는 삶을 위한 시작이라고 한다.

그러나 걱정도 있다.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실질임금 감소 때문이다. 주5일제 시행 과정에서 그런 문제가 있었다. 일자리 나누기 같은 성과보다는 현장에서는 잔업이나 특근을 더 하려는 결과로 나타났다. 당장 삶의 여유보다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현실을 사는 노동자들에게 당연한 선택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3월 낸 '연장근로시간 제한의 임금 및 고용에 대한 효과 분석' 보고서를 보면 주당 52시간 초과 노동시간 금지에 따른 수당 감소로 노동자 월급 감소치는 평균 37만 7000원, 비정규직은 40만 3000원. 임금이 정규직의 60%대 수준에 머무는 비정규직에게 타격이 더 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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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임금에 허덕이는 비정규직 고용구조를 함께 개선하지 않고서는 워라밸은 꿈같은 이야기다. 가정의 달을 살아내는 노동자들에게는 딴나라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성년의 날같이 올망졸망 모여 짜장면이라도 먹어야 할 무슨 날이 줄줄이 몰린 5월은 잔인하다. 돈에 따라 존재를 규정당하고, 사람관계가 좌우되는 이 사회에서는. 벌이의 균형을 이루지 않고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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