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챙겨주시던 할머니 비나리 '생생'
아이들에게 못난 부모 아니었나 '회상'

새벽 첫닭이 홰를 치며 목통을 부풀리고 긴 울음을 뽑아 올리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습니다. 어머니는 똬리에 동이를 이고 캄캄한 사립을 나서 마을에서 가장 깊고 맑은 큰 우물이 있는 동구 밖까지 칠흑 같은 길을 별빛으로 더듬어 가십니다. 우물가에 물 흘린 흔적이 있는지 확인하시곤 첫물을 길어 오셔서 먼저 장독대에 한 그릇 떠놓고 부엌에 들어가 밥을 안칩니다.

평소처럼 보리를 섞은 쌀을 안치고 가운데 아버지와 할머니가 드실 만큼 쌀만 얹은 것이 아니라 오늘은 보리 대신에 찹쌀과 팥을 넣어 짓습니다. 거기에다 아궁이 숯불엔 제사 때나 맛보던 큼직한 민어조기가 짭조름한 냄새를 풍기며 노릇노릇 익어갑니다. 작은 아궁이 국솥에선 미역국이 끓는 것을 보니 누구 생일인가 봅니다.

나물 반찬에 김까지 구워 동틀 무렵 준비가 끝나면 가르마 반듯하게 쪽 찐 머리에 동백기름을 발라 머리카락 한 올 삐져나오거나 헝클어지지 않도록 단장한 할머니께서 내가 잠자는 방으로 건너와 깨워서 세수를 하고 들어오라 하십니다. 어머니는 깨끗이 치운 윗목에다 짚을 깔고 찹쌀팥밥과 미역국, 생선과 나물 등을 차립니다. 실타래와 장독에 떠놓았던 정화수도 들여와서 가운데 놓으면 할머니가 꿇어 앉아 두 손을 비비며 중얼중얼 무슨 말을 하는군요.

삼신할미에게 저의 복을 비는 말씀을 올리는 겁니다. 무슨 부탁이 그렇게 많은지 내가 다시 까무룩 잠들도록 계속합니다. 비나리가 끝나고 식구들이 모이면 아침상을 들이는데 삼신할미에게 치성을 드린 삼신밥은 물려서 그대로 오늘 생일인 저만 먹도록 하지요. 액막이와 건강, 장수와 복을 빌고 담은 밥이라 한 톨 남기지 않고 다 먹었습니다. 어머니는 이웃집에 음식을 나누시고 용케 알고 찾아오는 마을 거지 몫도 챙겨 두십니다.

요즘처럼 생일 케이크에 축하 노래도 없고 파티도 하지 않았지만 복 담아 먹은 생일밥 종일 든든하고 골목 나서면 조기 꼬랑지나마 자신 어른들 덕담이 푸집니다. 몇십 년도 더 지났지만 온종일을 신나게 해주었던 고맙고 따뜻한 할머니 비나리가 생생합니다.

"비나이다. 영험하신 제왕님네 이 늙은이 남은 수명 있거들랑 오늘 점지하신 아이에게 얹어 주시고 보고 듣고 맡는 기운이나 세상살이 맛보고 재는 요량 남았거든 보태 주이소. 저 건너 앞산이 북망산인 늙은이에게 재물 있어 무슨 소용이며 육신 아껴 뭣하겠소. 바라옵건대 들 때나 날 때나 무병 무탈하고 험한 손 안타게 도와 주이소." 고향에서는 삼신할미를 제왕님이라 불렀습니다. 할머니가 계시지 않을 때에는 어머니가 빌기도 했는데 내용은 조금 달랐지만 당신 복과 기운을 덜어서라도 아들에게 보태 주십사하는 비나리였지요.

몇 해 전 막내 아이가 볼이 부어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고 아내는 미안하다며 쩔쩔매고 있기에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아이 생일을 깜박했나 봅니다. 할머니나 어머니처럼 챙기지 못해 미안했지만 아이를 나무랐습니다. 엄마 아빠가 축하하고 행복하기를 빌어주는 날이기 전에 엄마 아빠에게 고마운 마음을 드리는 날이라 했지요.

세월이 흘러 생일 삼신밥을 차려 놓고 복을 빌어주던 할머니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부터 생일상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섭섭하다며 케이크에 촛불이라도 켜자는 것도 마다했습니다. 고맙다고 말씀드릴 분들이 이미 떠나고 계시지 않으니 생일을 굳이 챙길 필요가 있나 싶어서 그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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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요. 몇 해 전부터 생일상을 받아먹습니다. 아이들이 자라 생일을 챙기기에 처음엔 필요 없다 거절했는데 아이들 말을 듣고 이제는 기쁘게 받지요. 저들에게 아버지 어머니를 주신 날이니 어찌 고마운 날이 아니겠느냐 합니다. 카네이션 달아드릴 분 모두 안 계신 어버이날 아침에 아이들에게 못난 부모는 아니었는지, 생일상 제대로 받을만한 어버이였는지 되새겨 봅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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