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은 나무 품고, 나무는 사람 품지
키우고 수확하는 기쁨 느끼며
임대아파트 이웃 갈등 풀어내

'구경하세요! ♡ 엄마의 텃밭'

주택가를 걷다 앙상한 상추밭에 박힌 낡은 팻말을 본 적이 있다. 엄마의 텃밭이란 말에 왠지 마음이 훈훈해졌다. 여기에 구경하시라는 말까지 붙으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70~80대 어르신들은 도시화 이전 농경 생활의 부지런함이 몸에 깊이 배어 있다. 각박한 도시 환경이지만, 좁은 땅덩이 아니면 화분에라도 부지런히 작물을 가꾸는 이들이 많다. 수확이 많든 적든 무언가를 가꾼다는 그 자체가 위로가 되며 삶에 어떤 안정감을 주는 게 아닐까.

지난 1일 함안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함안 극단 아시랑의 연극 <엄마의 텃밭>을 보며 무언가를 가꾸는 일의 위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연극은 도시 속 작은 임대아파트 '풀잎마을'에 마련된 작은 텃밭과 그것을 가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텃밭을 일구는 이들은 가슴속에 각자 큰 아픔 하나씩을 품고 산다.

일찍 남편을 잃고 악바리로 자식을 먹여 살린 강막심 할머니와 사과 상자에 담겨 온 뇌물을 받고 물러난 전직 정치인 천만원. 교통사고로 몸을 다쳐 두문불출하는 남편 나무군의 신경질을 받아내면서도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지선녀. 이들이 가꾸는 텃밭에 불만을 쏟아내는 아파트 주민들.

함안 극단 아시랑 <엄마의 텃밭> 한 장면. /극단 아시랑

삶의 팍팍함에서 본의 아니게 뱉어내는 독한 말들은 서로 상처가 되어 돌아온다. 급기야 텃밭 폐지를 안건으로 입주민 회의가 열리게 된다. 악다구니 속에서 우연히 드러나게 되는 가슴속 상처들, 아픈 기억들. 주민들은 결국 서로 상처를 보듬게 되고 텃밭에서는 계속 작물이 자라게 된다.

<엄마의 텃밭>은 연극이지만 창의적인 소품 활용과 판타지 영화를 연상케 하는 전개로 눈과 귀가 즐거웠다.

우리 주변 어디선가 본 듯한 인물들과 또 그들의 이야기에 배우들의 잔잔한 연기가 덧붙여져 관객의 환호와 박수를 이끌어 냈다.

"살아 있다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인 것 같아요."

이 대사처럼, 공연장을 나서며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라고 생각해 본 연극 <엄마의 텃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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