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나라에서>를 낸 아드리안 토마스 사밋
진주서 보낸 일상 담은 그림일기 모아 책 출간

"아드리안 알아? 지민희 알아? 이번에 책을 냈어."

3월 초 진주 사는 지인이 넌지시 알려준 책, <너의 나라에서>(프로파간다, 2018년 3월). 스페인 사람 아드리안 토마스 사밋(29)이 그린 그림일기를 모은 일종의 독립출판물이다. 아드리안은 아내 지민희(36) 씨와 함께 진주에서 살고 있다. 진주는 민희 씨의 고향이다.

그날 바로 책을 주문했다. 며칠 후 도착한 책을 처음 펼친 순간, '악, 이게 뭐야! 발로 그렸나? 이 친구 그림에는 영 소질이 없구먼.' 그런데 읽어갈수록 묘한 매력이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드리안의 그림에 푹 빠져 기뻐하고 슬퍼하게 된다. 정말 못 그렸는데, 정말 잘 그린 그림이다! 아드리안을 직접 만나고 싶었다.

그리하여 지난달 24일 진주 칠암동 '소확행'이란 카페에서 이 부부를 만났다. 아드리안 그림일기 전시가 열리는 곳이다. 느끼한 스페인 남성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은 순식간에 깨졌다. 세상에, 이런 순둥이가 따로 없다. 이야기 중간 민희 씨를 배려하고 챙겨 주는 태도가 참 자상하다.

진주 카페 '소확행'에서 하는 아드리안의 그림일기 전시 모습. /이서후 기자

그는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가 그림일기를 쓴 이유는 그저 매일 민희 씨에게 선물을 하고 싶어서였다.

"결혼 전날 결혼 축하하러 집에 친구가 왔는데 그 친구가 그림 그리는 공책을 한 권 아드리안에게 선물로 줬어요. 그 공책을 다 쓰고 나서는 제가 계속 공책을 사줬어요. 그렇게 지금까지 그려온 거예요. 아드리안이 원래 낙서하는 거 좋아해요. 일기 말고도 뭐든지 다 그려요."

민희 씨 이야기다. 책 속에 처음으로 나오는 그림이 바로 선물 받은 공책에 처음 그린 그림일기다. 2016년 4월 23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림 많이 그렸어요. 수업 시간에 수업 재미없으면 그림을 그렸어요. 매일 이렇게 한 적은 없었어요. 민희한테 선물하려고 그리기 시작했어요. 민희 매일 그림일기 보며 행복해해요. 그림일기 보고 좋아하고, 웃고 그러면 나도 좋아요."

자신의 그림 일기 앞에선 아드리안./이서후 기자

조금 어눌한 한국어지만, 아드리안의 마음이 잘 담긴 말이다. 아드리안의 그림이 이런 식이다. 뭔가 좀 어눌한 그림인데,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확실히 알 수 있다. 민희 씨는 이를 '표현력이 좋다'고 설명했다. 그의 표현력은 특히 진주에서 소소한 일상을 담을 때 빛이 난다. 간단한 그림으로 일으키는 공감의 힘이 크다.

사실 아드리안의 전공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림일기로 드러난 그의 표현력을 볼 때, 그가 만든 영상도 아주 좋을 것 같았다. 역시나, 지난해 그가 만든 스페인 밴드 뮤직비디오가 2017년 베스트 스페인 뮤비 2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에도 그 밴드 뮤직비디오를 의뢰받아 만들고 있다. 이 영상에는 민희 씨 부모님이 계시는 하동 시골마을 풍경이 담겼다.

<너의 나라에서>를 보면 그가 얼마나 '사랑꾼'인지 알 수 있다. 민희 씨는 포털 사이트에 인물정보가 바로 뜰 만큼 인지도 있는 미술가다. 아니, 미술가라고 하기엔 할 줄 아는 게 꽤 많다.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출판업계에도 발을 담근 적이 있는, 다방면 예술가다. 그는 진주, 서울 등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아드리안은 이런 민희 씨와 하루만 떨어져 있어도 시무룩해진다. 그리고 그날부터 그리움이 시작된다. 민희 씨의 빈자리가 자주, 크게 그려진 까닭이다.

<너의 나라에서> 표지.

"책만 보면 저는 만날 밖에 나가 있고, 오랜만에 돌아오고, 집에 신경도 안 쓰는 것처럼 보인다니까요!" 민희 씨의 웃음 섞인 불만이다.

부부는 올해로 결혼 2년 차. 이제 민희 씨 뱃속에는 아이가 크고 있다. 아이가 들어서고서 아드리안은 나중에 민희 씨와 아이가 함께 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벌써 공책 4권 분량이 넘었다.

지난 3월 서울에서 시작한 아드리안의 그림일기 전시는 현재 진주 카페 소확행과 다원에서, 또 부산 소규모서점 샵메이커즈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번 전시가 끝나면 마지막으로 제주도에서도 전시를 열 계획이다. 책 뒤편에 실린 인터뷰를 보면 아드리안과 민희 부부의 자세한 사랑이야기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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