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중심에 자본 아닌 생명살림 두어야
생태계·환경문제 지속적인 노력 절실

서울에서 농부학교 학생들이 농촌 체험을 하러 우리 마을에 왔다. 서른여섯 명이 왔는데 예닐곱 명씩 여러 농가로 흩어져 일손을 도왔다. 도시에서 농촌 일손을 도우려고 찾아와 주니 반갑고 고마웠다. 단순한 체험을 넘어서 농촌을 살리는 것이 얼마나 절실한 일인지를 느끼고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 식구는 농부학교 학생들과 박하차를 만드는 일과 생강 심는 일을 했다. 여럿이 일하며 새참을 나누어 먹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림 같은 풍경'이라는 말은 이런 때 쓰는 말이 아닐까?

농부학교에서 오신 분 가운데 기수가 빠른 선배님이 있기에 물었다. 귀농학교 과정을 마치고 나서 농촌으로 삶의 자리를 옮기는 분은 얼마나 되느냐고. 실제로는 한 가정도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귀농학교'라는 이름을 쓰다가 이제는 '도시농부학교'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나라 농가 가운데 40세 미만 농가는 1% 정도밖에 안 된다. 점점 농사를 짓지 않는 논밭이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 5년에서 10년 뒤에 농촌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농촌에서 마을을 이루고 더불어 살아갈 수는 있는 것일까? 젊은이들이 농촌에서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힘을 가질 수 있을까?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이곳에서 젊은 농부들을 위한 주거, 지원, 정착 문제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하고 있지만 대책마련이 쉽지 않다. 정부에서도 다양하고 새로운 정책을 시도하고 있지만 젊은 농부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도시를 떠나 농촌에 와 사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도시에서 낙오한 사람쯤으로 치부하는 것도 시골로 오지 못하게 막는 큰 문제 가운데 하나다. 이처럼 현실을 생각하면 귀농 귀촌은 못할 짓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조금 더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고민을 해야 하겠다. 대책마련도 시급하지만 무엇보다 삶의 방향과 철학을 바꾸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구조를 직시하고 앞으로 삶과 지속가능성을 하나하나 따져보아야 한다. 나는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넘어 다시 농본주의로 돌아서야 한다고 본다. 여기서 농본주의라 함은 모두가 귀농을 하고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지금은 개인을 넘어 지구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할 때라는 말이다. 자본주의는 더 많이 모으고 소비하는 삶이라면, 농본주의는 지키고 살려내며 덜어내는 삶이다. 이제 우리는 애착하며 모으고 소비하는 삶에서 떠나 비우고 덜어내는 삶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속 가능한 삶과 지구인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을 지켜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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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별 가운데 지구에 태어난 인간으로서 최소한 예의는 갖추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만이 미래를 향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희망이다. 이것은 환경 단체나 생태학자들만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 내 맘대로 쓰고 버린 자원들로 인해 우리 후손들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할 형편이다. 부모로서 우리 후손들이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을 물려줘야 하는데, 시쳇말로 단물 다 빨아먹고 빈 껍데기만 주는, 쓰레기만 남겨주는 형국이다. 후손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농본주의로 삶의 철학을 바꾸어가는 것이다. 삶의 중심을 자본에 두기보다 생명살림에 두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지구인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우리도 함께 그 삶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일상 속 작은 습관에서부터 생태계와 환경 문제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어떤 이념을 넘어 온 세계를 평화롭게 하는 것은 삶의 방향과 철학을 바꾸고 그 삶을 살아낼 때 가능하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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