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19) 서평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모든 노동자 '평등'실현, 높은 국가 신뢰도 긍정적
지루한 일상의 연속 '단점'…사회안전망 확충 본받아야

백화점에서 발레파킹(대리 주차) 일을 한 적이 있다. 하루에 10시간 넘게 일하면서 받는 월급은 대기업 직원의 절반도 채 안 되었다. 어느 날 내 평생을 돈 모아도 사지 못할 외제차를 보면서 궁금했다. 이 차 열쇠를 건네준 저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일까? 차 앞유리 스티커를 보니 그 사람이 사는 곳은 평당 1200만 원이 넘는 펜트하우스이다. 가끔 이런 차를 갖고 싶다는 욕구가 치솟을 때도 있었다. 그 마음을 꾹 눌렀다. 절대 내가 허용해선 안 될 욕심이었다. 시기심이 들면 그 일을 계속할 수가 없다.

오전부터 사람들이 백화점으로 몰려들었다. 내가 밟는 선은 돈을 벌기 위한, 고되고 기약 없는 영토였다. 반면, 불과 1m 밖으로 지나치는 고객은 쇼핑을 위한, 안락한 시간을 만들고 있다. 나른한 아침에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무슨 걱정이 있을까? 그 선이 너무 가까워 내 정체를 잃을 때도 있었다. 아기를 데리고 나선 가족들의 모습을 보았다. 나도 언젠가 저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내 친구는 국어교육을 전공하고 학교에서 계약직 선생님으로 일한 적이 있다. 그녀는 학교에서 정규직들에 차별을 받았다. 심지어 학생도 정규직과 계약직 선생님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고 한다. 지금은 그 계약직마저도 할 수 없어 집에서 쉬고 있다. 마케팅을 전공한 또 다른 친구도 회사에서 해고당해 백수이다. 지금은 카드빚에 시달리고 있다. 친구는 빚 때문에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해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우리가 함께 놀던 학생 때가 그립다. 그때는 대학교 졸업 후에 이렇게 버거운 삶이 펼쳐지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마이클 부스 지음

빈부 격차, 차별, 비교, 시선, 포기, 경쟁, 박탈과 같은 단어가 이렇게 무거울 줄 몰랐다. 이런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운 곳이 있을까?

마이클 부스의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책에서 희망을 보았다. 북유럽에 사는 사람들은 배관공, 의사, 교사, 정치인, 일용직 노동자가 모두 비슷한 연봉을 받는다. 그들은 서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북유럽 사람은 사는 곳, 자동차, 입는 옷, 아이템이 다 비슷하다. 장기적인 실업수당이 있기 때문에 돈이 없어서 원하는 일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미국이나 영국의 폭동이 날로 증가하는 반면 북유럽 사람은 국가에 대해 불만이 거의 없다. 범죄율도 세계 최저수준이다. 정치에도 큰 관심이 없다. 자신들이 내는 임금의 70%가 넘는 세금의 쓰임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 '나라에서 알아서 세금을 잘 쓰겠지'라고 여기며 국가를 신뢰한다. 자신들이 내는 세금의 혜택을 충분히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행복 순위 1, 2위를 다투는 이 나라 사람들은 과연 완벽에 가까운 삶을 사는 것일까?

작가는 북유럽 국가의 단점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밤늦게까지 영업을 하는 가게는 거의 없으며, 관공서, 은행, 음식점의 직원은 불친절하다. 음식 배달도 하지 않는다. 병원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몇 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 TV를 틀면 10년 전 미국 드라마를 재방송하고 있다. 블록버스터 영화도 없다. 사회적 성공이란 개념도 없다. 모두가 보통의 삶을 지향한다. 어떻게 보면 따분하고 지루한 생활의 연속이다.

솔직히 나도 이런 나라에서 살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럼에도 왜 이 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일까? 누구나 차별 없이 보통 이상의 삶을 보장받는 것이 이토록 중요한 것이었을까?

나는 대학생 때가 가장 행복했다.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어울리며 PC 방, 당구장, 호프집을 전전하며 맘껏 놀았다. 꿈은 컸고 경쟁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지도 않았다. 그때 나에게 '가장 행복한 나라가 어딜까?'라고 누가 물어봤다면 '대한민국'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국가라고 해서 다 불행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떤 단면을 보면 자본주의도 좋다. 자본주의는 사람들에게 큰 꿈을 꾸게 하며 도전을 격려한다. 우리 사회의 빠르고 편리한 시스템, 흥미진진한 문화와 오락거리도 분명히 매력적이다. 북유럽의 진취적인 젊은이들도 조국을 떠나 영국이나 미국으로 건너가는 일이 많다고 한다.

나는 북유럽의 사민주의와 발달한 자본주의 장점이 섞일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친구들에게 자본주의는 게임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와 게임은 우리에게 흥미로운 미션을 준다. 자본주의가 게임과 다른 점은 사람들이 미션에서 실패하면 게임처럼 다시 일어서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게임에서 실패하면 간단히 리셋하면 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실패는 주위의 잔인한 질타와 좌절로 이어진다.

우리 사회도 북유럽처럼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고, 누구에게나 따뜻하고 너그러운 시선을 보낼 수 있다면 게임처럼 재미있고 더 멋진 사회가 될 것이다. /시민기자 황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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