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를 졸업하고 조그마한 회사에 다니는 김모(여)씨는 엄격한 집안분위기 탓에 20대 초반이 되도록 남자친구 한번 사귄 적이 없었다. 평소 성격도 소심한 편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도 적었던 그녀에게 인터넷 채팅은 바깥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듣는 작은 통로이기도 했다.

어느날 그녀는 채팅으로 한 남자를 알게 됐다. 남자의 인간됨이 따뜻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몇차례의 대화가 오간 후 남자를 만나 남자의 친구들과 어울려 강원도까지 가서 놀게 됐다. 하지만 그녀는 늦더라도 집에 가야한다는 생각엔 변함없었다. 남자는 반드시 집에 데려다주겠으나 너무 취했으므로 자고 가라고 했고, 그녀가 묵을 방을 확인한다면서 그녀의 방으로 침입, 구타와 함께 성폭행했다. 그녀는 집에서 알게될까 혼자 노심초사하면서도 남자가 미안했느니, 좋아서 그랬느니 하는 말을 믿고 지속적으로 관계를 이어왔다. 적어도 그녀로 하여금 카드를 만들게하고 그 카드로 온통 빚을 지게한 뒤 종적을 감출 때까진 그랬다.

채팅으로 만나 성폭행으로까지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 일반적인 판단으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만나는 것 자체가 나쁘다’싶지만 여러 가지 여건이 맞물리면 다른 어떤 만남보다 호감을 갖는 것이 채팅이다. 문제는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음에도 애써 ‘애정의 표현’으로 믿고 싶어하는 경우다. 실제 김씨의 경우도 남자에 대한 증오와 일말의 동정이 교차하는 듯했고, 남자가 용서를 구하면 문제삼지 않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이런 땐 상담이 무척 어렵다. 성폭행을 당한 후에도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경우 법적처리 등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여성 이모씨도 채팅으로 만나 성폭력을 당했는데 그녀는 일이 벌어지자마자 곧바로 신고를 해와 병원에서 진단서도 끊고, 지속적 상담 등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채팅에 열중하는 심리적 요인은 직접적인 만남보다 익명성이 보장된 사이버상의 만남이 더 부담없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호기심은 사춘기일수록, 대인관계가 소극적인 사람일수록 더 심각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채팅으로 주고받는 달콤한 말의 이면에 도사린 의도를 알고 채팅에 임하는 것이 좋고, 또 부득이 성폭행을 당했다면 즉각 대처하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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