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수와 함께하는 토박이말 맛보기

반갑습니다.

저는 참우리말, 토박이말을 살리는 모임 사단법인 토박이말바라기 두루빛(총무) 이창수라고 합니다. 토박이말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손수 만들어 써 오는 말이나 그 말을 바탕으로 해서 새로 만든 말을 가리키는 말로 '순우리말', '고유어'라고도 합니다. 여러분께 토박이말 널리 알려 드리려고 제가 이레마다 두세 개씩 맛보여 드리고 있는 토박이말 맛보기 가운데 맛있는 토박이말을 골라 모은 '토박이말 맛보기'를 싣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토박이말을 맛보시고 맛있다고 느끼시는 토박이말은 둘레 분들께도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넉넉한 토박이말로 막힘없이 생각과 느낌을 나누는 모두가 행복한 나라를 함께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시위잠

뜻: 활시위 모양으로 몸을 웅크리고 자는 잠.

3월 17일 제가 나온 높배곳(고등학교)에 어버이가 되어서 다시 갔다 왔다는 짧은 글을 많은 분들이 봐 주셨습니다. 저도 남들처럼 하루 하루를 살았고 그렇게 나이를 먹었음을 새삼 느꼈습니다. 저를 가르쳐 주셨던 스승님들은 거의 물러나시고 젊음으로 저희를 이끌던 분들께서 다 윗분들이 되셨더군요.

아침부터 새벽까지 책과 씨름을 하던 동무들도 떠오르고 끼니를 걸러 가며 긴긴 하루를 버티다가 아버지 어머니 계시는 쪽을 보며 눈물을 훔치던 일도 생각났습니다. 차가운 방에서 얼굴이 시려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시위잠을 잔 날도 참 많았습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뭐든 사 먹지 왜 굶어?", "일찍 일어나 밥을 해 먹고 도시락을 싸 오면 되지. 게을러서 굶었네"라고 말이지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때는 그럴 돈도 없었고 손수 다 하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열소리

뜻: 멋모르는 어린 소리.

4월 1일 밝날(일요일)에는 오랜만에 여섯 언니아우들이 다 모였습니다. 또래들보다 조금 늦게 군대를 가는 조카를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조카 여섯 가운데 넷은 갔다 왔고 하나는 군대에 가 있고 마지막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제가 잘하는 일과 아랑곳한 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간다니 대견했습니다. 열소리를 하던 녀석들이 이렇게 자랐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들이 자란 만큼 저도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 서글프기도 했습니다.

맛있는 낮밥을 먹고 잘 다녀오기를 바라는 말과 잘 다녀오겠다는 다짐을 주고받은 뒤 헤어졌습니다.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진달래 구경을 저만 실컷 하고 온 것이 아쉬웠습니다. 저희 집 식구들은 다들 바빠서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시큼하다

뜻: 맛이나 냄새 따위가 꽤 시다.

4월 7일 엿날(토요일)에는 마침배곳(대학원) 배움을 돕고 와서 혼자 낮밥을 먹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가든하게 꼬불국수를 끓여 먹을 생각을 하고 물을 얹었습니다. 오랜만에 무도 삐져 넣고 얼려 놓았던 가래떡도 넣어 맛있게 끓였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김치가 빠지면 안 되지 싶어서 찾으니 없었습니다. 아쉬운 대로 파김치를 곁들여 맛있게 먹었습니다. 하지만 파김치가 좀 더 시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큼하다'는 '시다'의 '시'에 '큼하다'를 더한 짜임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같은 짜임으로 된 '달큼하다', '매큼하다'의 뜻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말모이(사전)에 없는 '짜큼하다', '쓰큼하다' 같은 말도 만들어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 걸 배울 수 있는 길을 얼른 열어 주고 싶습니다. 여러분 힘과 슬기를 보태주시기 바랍니다.

염통

뜻: '심장'을 뜻하는 토박이말.

4월 10일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가장 무게를 둔 일은 토박이말날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광화문 널마당(광장)에 서서 무지개달 열사흘(4월 13일)이 토박이말날이라는 것을 알렸습니다.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많았지만 저를 찍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가는 분도 있어 봄볕을 쬐며 서 있는 보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울을 오가면서 본 우리말과 글을 밀어낸 가게와 일터 이름들이 저를 슬프게 했습니다. 그걸 보며 "손톱 밑에 가시 드는 줄은 알아도 염통 밑에 쉬 스는 줄은 모른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먹고 사는 게 바빠서 우리말과 글이 쪼그라드는 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는 서울이라는 곳에서 토박이말을 살려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도 안타까웠습니다.

오구작작

뜻: 어린 아이들이 한 곳에 모여 떠드는 모양.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때는 아무래도 낮밥을 먹는 때와 그 뒤에 노는 때입니다. 낮밥 먹을 때를 알리는 종소리가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오구작작 떠드는 소리가 들립니다. 밥 먹는 때새(시간)도 아까워서 밥을 빨아들이듯이 먹고 놀러 나간 것이죠.

그렇게 놀고 싶은 아이들인데 마음껏 놀게 해 주지 못해 마음이 아픕니다. 이 아이들의 아들, 딸은 그렇게 마음껏 놀 수 있게 해 주고 싶습니다. 배움 알맹이를 쉬운 토박이말로 바꾸는 일을 무엇보다 먼저 하려고 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힘과 슬기를 보태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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