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열망에도 6월 개헌 끝내 무산
서울 중심 정치권, 분권 안중에 없어

제가 대학에 다녔던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사회구성체 논쟁이 활발했습니다. 맹렬했습니다. 거의 전쟁 수준이었죠. 누구와 목숨 걸고 싸울 것인지 따지는 문제였으니, 어쩌면 당연했습니다.

'식민지반자본주의'니,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니 요즘은 생소해진 용어가 많았습니다. "한국사회는 이런 저런 모순으로 인해 끊임없이 갈등하고 대립하며, 그 모순이 워낙 근본적이어서 투쟁이나 혁명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논리였습니다. 논쟁의 핵심은 근본모순을 한국과 주변의 정세, 분단이나 미국의 실질적 지배와 같은 민족모순으로 보느냐, 자본가와 노동자 간 계급모순으로 보느냐였는데요.

'NL(National Liberation·민족해방)', 'PD(People's Democracy·민중민주)' 논쟁이 지금도 계속되는 걸 보면 근본모순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반증 아닐까요.

민족모순을 분단모순으로, 계급모순을 '부자와 빈자의 양극화'로 풀이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모순 속에서 살고 있음을 피부로 실감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 27일 남북 정상의 만남과 포옹, 장시간 진지한 대담에 많은 분들이 감격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요.

저는 한국사회 근본모순 요인이 하나 더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앙과 지방', '서울과 지역'의 모순입니다. '중앙 종속', '지역 소외'라는 말에 압축되듯, 이 나라 돈과 권력, 사람이 점점 더 서울에 집중되고 있고, 그 정도가 법과 제도, 정치로는 도저히 개선할 수 없을 만큼 깊어지고 고착돼갑니다. 그래서 근본모순이라는 것입니다.

대표적 사례가 이번 6·13지방선거 동시개헌 무산이 아닐까 합니다. 정부형태 개편과 국민기본권 강화 같은 개헌안 뼈대가 있었지만, 지역시민은 지방분권 강화의 획기적 계기라는 점에서 특히 개헌에 기대를 걸었습니다.

<부산일보> <매일신문> <강원도민일보> 등 대부분 지역신문이 '분권개헌'을 신년기획으로 다뤘고, <경남도민일보> 역시 지방분권 열망으로 '이제는 분권이다'라는 연중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고대했던 지방선거 동시 개헌이 끝내 무산됐습니다. 원인에 대해 '자유한국당의 반대'니 '드루킹 정국'이니 말이 많지만, 저는 '서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와 정당, 국회 등 개헌을 결정할 주체가 모두 서울에 있고, 서울의 돈과 권력·사람을 지역과 나눌 생각이 없는 거죠. 이들은 지난해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놓고, 1년이 넘은 지금까지 '대통령제'니 '이원집정부제'니 중앙의 권력구조를 놓고 싸우고 있습니다. 분권은 안중에 없는 거죠. 이들은 동시개헌 무산 이후 개헌 또한, 여야 간 정부형태 타결 여부에 달려있다고 강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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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모순'이란 용어를 〈자본론〉에 언급했던 마르크스는 해소 방안으로 투쟁과 혁명을 제시했습니다.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의 대거 봉괴에 따라 그 가치가 급락했지만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이대로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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