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쌀밥 꼭 닮은 활짝 핀 이팝나무
남과 북 더는 굶주리는 사람 없길

세상이 온통 환해진 느낌입니다. 왠지 기분이 좋아집니다. 둘러보면 주변 사람들 표정도 비슷해 보입니다. 이유는 두 가지쯤 됩니다. 남북 정상회담 소식 그리고 출·퇴근길에 마주하는 환하게 핀 이팝나무 꽃들 때문입니다.

지난 금요일은 종일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두 정상이 맞잡은 손, 도보다리 대화 상황, 화기애애한 만찬 소식 떠올리며 냉면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온몸을 꽁꽁 에워싸고 있던 '멸공, 반공' 밧줄이 풀려나가는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집 뒤 대밭 사이에 방공호 파면서 벌벌 떨었던 옛 기억도 떠올랐습니다. 도화지에 북한군, 북한 사람들 모습 그리면서 뿔 달았던 생각에 피식 웃음도 났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참으로 오랜 세월 속으며, '저주'하며 살아왔습니다.

출·퇴근길에 보이는 가로수에 남북정상회담을 축하라도 하듯 하얀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입하 무렵 피어서 '입하나무'로 부르다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설이 있는 이팝나무입니다. 이팝나무 유래에는 또 다른 설이 있습니다. 조선 시대. 이밥에 고깃국 먹고 비단옷 입으며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 사는 것이 소원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밥 즉 흰 쌀밥 배불리 먹는 것은 '이씨 조선'에서 벼슬을 해야 가능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이씨 조선'에서 먹을 수 있는 밥 즉, 이밥이 변해서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설입니다. 이 설이 더 유력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팝나무는 딱 이맘때쯤 피어납니다. 하얀 꽃이 나무 가득 달립니다. 멀리서 보면 새하얀 쌀밥을 뿌려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이팝나무 꽃 피는 시기가 옛날엔 '보릿고개' 무렵이었습니다. 이 시절엔 굶어 죽는 이가 나올 정도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러니 배고픔 참으며 논밭에서 일하던 사람들 눈엔 이팝나무 꽃이 쌀밥이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절로 들었을 듯합니다.

농부님들은 이팝나무 꽃 보고 한 해 농사의 좋고 나쁨을 가늠해보기도 했습니다. 꽃이 많이 피고 오래가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습니다. 반대로 이팝나무 꽃이 제대로 피지 않으면 흉년이 든다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나무 가득 하얗게 매달린 이팝나무 꽃 보면서 문득 북한 사람들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약간 감상적인 생각이긴 합니다만. 우리네 옛날 그 시절처럼 지금도 쌀밥에 고깃국 원 없이 먹어 보는 것이 소원이진 않을까. 굶주리는 사람들은 없을까. 어서 빨리 통일이 되어 적어도 절대 빈곤으로 밥 굶는 상황은 면해야 할 텐데….

북한 사람들은 지금도 쌀밥을 이밥이라 부르는 모양입니다. 이밥이란 말은 군대에 복무하던 20대 때 처음 들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우리는 이밥에 고깃국 먹었소!' '너네들은 이밥 먹었나?' 북한군 초소에서 들려온다던 말입니다. 너무 멀어 들리진 않았지만 '이밥에 고깃국'이 얼마나 간절했던지는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북한 상황은 그리 나아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남북정상회담 소식 접하는 북한 사람들 표정도 짐작이 됩니다. 머지않아 정말로 '이밥에 고깃국'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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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생각해보면 남북한 모두 배고프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남쪽은 '정신적 배고픔'에 시달리고, 북쪽은 '절대적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진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이제라도 담대함으로 하나 되어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통일농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실천할 때가 왔습니다. 엉킨 실타래부터 풀어나가야 하겠습니다. 밭도 갈고, 거름도 주어야겠습니다. 이곳저곳 보이는 이팝나무 꽃들이 올해는 나무 가득 제대로 피었습니다. 논농사, 밭농사, 통일농사도 잘되기를 손꼽아 빌어봅니다. 활짝 핀 이팝나무 꽃처럼.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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