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이 품고 있는 이야기] 산단공 경남본부(창원시 성산구)
창원지역 공공기관 건물 1호…박정희 대통령 청사 건립 관여
기와지붕에 전통 목구조 형식 '1970년대 관공서 양식'서 탈피

'창원지역 내 공공기관 건물 1호'는 경남도청사도, 창원시청사도 아니다. 경남도청사는 지난 1983년 7월, 창원시청사는 1980년 4월 문을 열었다. 이보다 앞선 1976년 6월 허허벌판에 청기와 지붕의 건물 하나가 들어선다. 지금의 '한국산업단지공단 경남지역본부(창원시 성산구 외동 851-7)'다.

'한국산단공 경남본부'는 도내 산업단지를 개발·관리하고 기업활동을 지원하는 기관이다. 이곳 뿌리는 1970년대 국가 추진 '창원기계공단'으로 거슬러간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창원공단을 설계할 때 주거지역의 도시계획도 동시에 실시하는 것이 좋겠어. 울산공단을 건설할 때 공장지역만 덩그러니 결정해놓으니, 후에 울산시가 도시계획을 다시 한다고 골치를 앓고 있지 않나."

주거·행정지구 계획과 맞물린 창원국가산업단지 조성공사가 1973년 11월 시작됐다. 이를 관리하는 곳이 지금의 '한국산단공 경남본부'다. 애초 1974년 '한국기계공업공단'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당시 공단 사무소는 외동 853-5번지(현 S&T중공업)에 마련됐다. 하지만 사무소는 목조 건물에다 좁은 공간 탓에 제구실을 못 했다. 이에 공단은 청사 건립 계획에 들어갔고, 청와대가 직접 신경을 썼다.

한국산업단지공단 경남지역본부.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1978년 입사해 지난 2010년 정년퇴직한 박연길 씨는 이렇게 전했다.

"창원국가산단 건립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분기에 한 번씩 이곳을 찾았다. 그만큼 창원국가산단에 애착을 두며 직접 진두지휘한 것이다. 이에 공단 건물도 청와대와 유사한 형태로 했다. 당시 청와대 모양으로 짓겠다는 시도를 누가 할 수 있었겠는가? 이는 곧 청와대가 설계와 시공까지 직접 관여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중화학공업의 시작과 미래-동남공단 이십년사(1996년 발행)>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청사 설계에 있어서 박 대통령 각하께서는 한국건축의 전통적인 고유미를 십분 반영하도록 분부하셨는데, 그 뜻에 따라 한양절충식의 지붕과 처마를 설계하였으며, 준공 후 1976년 여름에 창원종합기계공업기지를 시찰하신 각하께서는 큰 영애와 함께 청사의 조형미와 실용성에 대하여 극히 만족해하시면서 청사의 보존관리에 소홀함이 없도록 지시하셨다.'

김임곤 현 전문위원은 어릴 적 이곳을 찾았던 기억을 전했다.

"청기와 건물에다 헬기장도 있었다. 또한 주변 방위산업체가 많아 이곳에 탱크도 있었다. 친구랑 구경 왔다가 겁이 나서 사진 한 장 찍고 얼른 도망갔던 적이 있다."

1974년 2월 박정희(오른쪽) 대통령이 청사 건립 현장을 방문해 최종명 공단 이사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산단공 경남본부

청사 위치 또한 당시 청와대가 낙점했다고 한다. 이곳은 현재 지도상으로 보면 창원지역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면서 중앙대로 시가지, 창원광장, 경남도청, 그리고 그 너머 정병산을 마주하고 있다. '기가 세다'는 표현도 나오지만,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배은희 현 경남지역본부장 얘기다.

"풍수지리에 해박한 분이 있다. 한 번씩 여기 올 때마다 '천하의 명당자리다. 기가 발현하고 모든 기운이 용솟음치는 곳'이라고 말씀하신다. 나라에서도 건립 당시 풍수적으로도 고려하지 않았겠나."

이곳은 그동안 명칭이 몇 번 바뀌었다. '한국기계공업공단' 이후 '창원기계공업공단' '한국산업단지공단 동남지역본부'로, 그리고 지난 2015년 7월 지금의 '한국산업단지공단 경남지역본부'로 변경됐다.

'산업화' 상징이다 보니 40년 넘는 세월 동안 대통령들 발걸음도 줄을 이었다. 박정희 대통령뿐만 아니라 1980년 4월 최규하 대통령, 1980년 12월 전두환 대통령, 1988년 1월 노태우 대통령, 1993년 3월 김영삼 대통령, 1997년 4월 김대중 대통령,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이 방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전인 2015년 3월 찾은 바 있고, 박근혜 대통령은 1976년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방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국정 운영에서 '경제·산업'을 특히 강조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유일하게 발걸음하지 않았다.

대통령 방문이 워낙 잦다 보니, 여기 직원들도 나중에는 'VIP 맞이'를 일상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대통령 방문 때는 우리 직원들도 정예 멤버 말고는 모두 나가 있어야 한다. 청와대 경호실에서 주관하기에 경찰도 우리 근무복을 입고 들어오고는 했다. 로비 청소를 워낙 깨끗하게 해서 미끄러지는 사람도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헬기를 타고 오니까,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나무가 보기 좋게 빼곡히 심겨 있어야 했다. 어떨 때는 급하게 보리밭에서 보리를 캐고 와서 심기도 하고 그랬다. 그래도 번거롭다는 생각보다는 보람과 자부심을 느꼈다." (박연길 씨)

▲ 현재 한국산업단지공단 경남지역본부는 지상 9층이지만 1976년 완공 당시는 지하 1층, 지상 2층이었다. /산단공 경남본부

박병규 현 기획총괄팀장은 노무현 대통령 방문 시절 얘길 전했다.

"노 대통령도 해사 졸업식 이후 경남지역혁신협의회 회의 참석차 이곳에 들렀다. 경남도 주관 행사였는데, 도청에서 하면 관 분위기가 너무 난다고 해서 우리 청사 6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노 대통령은 청사 방문 후 로템 공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당시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소식을 전달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공단은 대통령 방문 때 산업단지 현황 브리핑을 해야 했다. 1970년대 최종명 초대 이사장은 특히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고 한다.

"17~18장 되는 차트를 하나하나 손으로 써야 했다. 한자 하나 틀리면 도려내서 다시 적고 그랬다. 공화당 특보 출신이었던 최종명 이사장은 며칠 밤새워 가며 브리핑 연습을 했다. 실제로 매우 잘했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총애를 받기도 했다." (박연길 씨)

"최 이사장은 이른바 '끗발'도 좋았다. 기계공단 수출을 위해 뱃길이 필요했다. 최 이사장이 정부에 건의하자 적현부두가 일사천리로 만들어졌다." (김임곤 전문위원)

청사는 1976년 완공 당시 우선적으로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건립됐다. 그러다 1992년 3월 지하 1층, 지상 7층(대지 5000평, 연건평 2693평)으로 증축됐다.

<경남건축사회 50년사>는 차건축사사무소 차동명 씨가 설계한 것으로 기록해놓았다. <경남건축사회 50년사>는 청사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기와지붕에 전통 목구조 형식을 콘크리트조로 번안한 형태다. 최상층은 원기둥과 인방보가 드러난 구조에 깊은 처마지붕을 얹어서 전통구조 양식미를 드러내고 있다. 1970년대 관공서 건물에 전통양식을 이식하는 과정에 나타난 과도기적 건축양식이다.'

신삼호 건축사는 이렇게 평가했다. "전통건축을 현대화한 하나의 사례로 볼 수는 있지만, 건축사적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과도기적 상황에서 나온 하나의 유형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40년 넘게 도심에 자리하고 있는 기와 형식 건물은 사람들 눈길을 계속 사로잡고 있다. 그리고 청사 입구 상단에 여전히 남아 있는 '조국 근대화의 기수'라는 박정희 대통령 친필 휘호는 이 건물의 지난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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